나는 여행업에서 일을 했다. 2박3일, 3박4일, 3박5일 등등 기간에 맞추다 보니, 상품 구성이 빡빡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일까 내가 꿈꾸는 여행은 여유로움이었다. 그냥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그런 여행...
어느 여행 설명회 중 마지막 하이라이트는 럭키드로우였다. 최고 상품은 베트남 나트랑의 어느 리조트 숙박권이었다. 당첨을 꿈꾸며 명함을 커다란 상자에 집어넣었다.
운 좋게 당첨이 되었다. 몇 달이 지나고 숙박권 유효기간이 다되어갈 때쯤에 와이프와 나는 떠날 수 있었다. 와이프와 나는 여행스타일이 비슷하다. 많이 움직이는 것을 싫어한다. 하지만 와이프는 직업병인지 어느새 나트랑의 구석구석을 조사해서 맛집과 가볼 만한 곳을 알아두었다.
이른 아침에 산책 겸, 리조트구경 겸 잘 닦인 산책로를 걸었다. 직원들의 다정한 인사말과 처음 보는 외국인이 러닝을 하며 건네는 인사를 주고받으며 작은 해변을 걸었다. 작은 물고기들이 해변옆의 바위틈에서 유유히 헤엄을 치고 있었다.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았다. 와이프와 의논해서 수영장으로 향했다. 선베드에 누워 점점 강해지는 햇빛을 느끼다가 수영장에 몸을 던졌다. 한참을 이렇게 저렇게 수영을 하다가 와이프가 준비한 튜브 위로 올라갔다. 힘을 빼고 팔과 다리를 한껏 늘어뜨리고 - 아! 한 손에는 하이네켄 병 하나를 들고 있었다 - 물에 둥둥 떠있는 여유로움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남아있다.
시간이 한참 흐른 것 같은데 수영장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선크림을 발랐어도 탈것 같은 강한 햇볕이었다. 와이프는 한껏 베트남 모자를 눌러쓰고 잠을 자는 것 같다.
전쟁 같았던 며칠 동안의 줄다리기(손님과 나, 거래처와 나)를 끝내고, 아무 걱정도 생각도 고민도 안 하고 물 위에 둥둥 떠있는 지금의 이 기분은 아무리 강한 햇볕이 내리쬔다 하더라도 방해하지 못할 것 같다. 고가의 호텔이 아니라면 한국에서는 이렇게 여유롭게 물에 둥둥 떠있기는 힘들겠지? 그리고 한 손에 하이네켄을 들고 있을 수도 없을 거야.. 이 기분에서 나오고 싶지 않아 그럴싸한 핑곗거리를 찾아본다.
수영장이라는 곳은 내게는 무척이나 낯선 곳이다. 어릴 적 부모님 손을 잡고 간 수영장, 초등학교 때 가본 수영장이 전부인 것 같았다. 오랜만에 떠올려본 기억은 바글바글이었고, 워터파크 등을 떠올려도 바글바글이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인지, 삶에 조금씩 지쳐가면서인지 조금씩 사람들 속에서 멀어지려 하는 것 같다.(그래도 가끔씩은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곳이 그리워지기는 한다.)
얼마의 시간이 또 흘렀고, 심심하다는 와이프의 말에 튜브를 건네줬다. 튜브 위에 올라가기 위해 낑낑 애를 쓰는 모습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지금 우리를 찾는 사람도 없고, 어디를 가야 하는 약속도 없다. 몇 병인가 쌓인 하이네켄 병 덕분인지, 편안했던 기분 덕분인지 알 수 없는 기쁜 마음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올라왔다. 그리고 해서는 안될 짓을 해버렸다.
모든 남편들이 그랬을 테지만 나도 모르게 와이프를 물속에......
나는 그날 많은 후회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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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짜오~
그리고 와이프가 싫어하는 짓은 하는 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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