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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쌤 Apr 25. 2024

계단 말고 엘리베이터 짜증!

나만 이 모양?

[작전명:계단] 6화

:FEAT. 임영웅 '계단 말고 엘리베이터'



"이직합니다. 다 선배 덕분입니다."

"내가 그랬었나? 사실 그 길이 답이긴 하잖아!"


눈물로 콧물로 힘들다 뭐 하다 말이 많던 후배들이 이직을 선언한 날입니다. 늘 존경한다고, 선배처럼 되고 싶다고 이야기했던 이들이 초고속 승진하여 앞서간 날이기도 합니다.





"터벅터벅 그 걸음으로
어느 세월에 내게 오나요
저 푸른 하늘 새들처럼
날개를 달고 와야죠
이리저리 돌아보면서
어느 천년에 내게 오나요"


 오늘따라 이 노래 너무 짜증 나는걸요! 현타가 와서요.



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들은 날개도 있는데 저는 아무것도 없고 무겁기까지 해서요. 계단이 답이라 생각해서 꾹 참고 걸어 올랐는데, 알고 보니 자가용 타고 갈 수 있는 길이 있는 곳이었고, 심지어 엘리베이터도 있었다는 것을 오늘에야 알아버려서요. 그런데 이러한 이내 맘도 몰라주고 세상은 저에게 노랫말처럼 이렇게 말하니까요.


"어느 세월에 내게 오나요, 어느 천년에 내게 오나요"

하 =3 




요즘은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라, 잘하는 게 좋은 세상이라죠? 성과가 중요하니까요.  아마도 저는 후자였나 봅니다. 알면서도 그저 열심히 살면서 언젠가 세상이 좋아지겠지 생각하는 그런 사람말이죠.


그런데... 

무언가 성과가 보일만 하면 세상은 답을 해 주는 것 같습니다. 


"응, 아니야!"

"너 뭐 하냐?"

"어느 천년에 내게 오나요"

"어느 세월에..."

 

알고는 있는데 노래까지 이렇게 들리니 미쳐버릴 같습니다. 처음 있는 일도 아니어서요.




다행히 일 폭탄 말고 휴가로 이틀이 주어졌습니다. 세상이 완전 등을 진 것은 아닌 게 다행이네요. 오랜만에 마음도 시끄럽고 '작전명:계단' 수행을 위하여 계단 앞에 섰습니다. 머리도 속도 매우 시끄러워서 그냥 '집 가고 싶다' 마음이 컸지만 그냥 올라갔습니다.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발이 닿지 않는 수직면 구멍에서 씩씩하게 피어오르는 풀더미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백률사 초입, 매일 오르는
그 나무계단인데도
오늘에서야
발 닿지 않는 수직면에
얇게 붙은 풀더미가 눈에 들어왔다

-손진은의 '계단의 깊이' 中 -


매일 지나치며 보았을 법한데 오늘에야 들어온 세 잎의 풀더미는 흙더미라고 해봤자 요 맨치라도 될까 싶은 곳에서 기어이 씩씩하게 피어나고 있었어요. 물론 이름도, 정체도 알 수 없어 미래에 무엇이 될지는 알 수 없는 몸부림이었지만 얇게 붙어있는 그 풀더미에 자꾸만 마음이 갔습니다. 그 녀석 덕분에 옆에 있는 녀석도 보이고, 위에 계단에 있는 놈도 보이고, 그 위 계단에 핀 녀석들 사이 꽃도 보였습니다.


귀찮아서가 아니라, 지쳐서가 아니라 그냥 그 녀석들 앞에 멈춰 서 졌어요. 씩씩하기가 힘들어졌거든요. 애써 붙잡고 있었던 마음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래서 노래를 다시 틀었습니다.


"어허야 내가 내가 간다
그리운 내 님 곁으로
늦기 전에 더 늦기 전에
계단 말고 엘리베이터"



 차를 타고 올라갈 수 있는 길이었다면 이 녀석들을 만날 수 없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쉽게 쉽게 올라가면 힘이 들지도 않고 좋을 수도 있지만 그게 또 답이 아닐 수는 있잖아요. 그래서 계단을 선택해서 꿋꿋하게 걷고 있던 것인데 왜 흔들리냐는 핀잔을 들은 기분입니다. 


벚꽃이 다 져버려서 정상에서 보면 이제 푸릇푸릇하기만 한 산 같지만 계단으로 올라가다 보면 여전히 아찔한 봄꽃들이 '아직 봄이거든!"이라 속삭였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면 알 수 없지 않냐는 듯 오늘따라 녀석들이 진심으로 다가왔습니다. 



사실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계단 말고 엘리베이터를 타야 하나? 엘리베이터 놔두고 계단을 왜 올라야 하나?  

빗방울과 바람의 경작이었을 것이다
한방울 튕길 때마다
흙 알갱이 겹겹이 올라붙고
부지런한 바람이 입주자들 실어날랐을

-손진은의 '계단의 깊이' 中 - 


하지만 계단 사이에 피어난 그 녀석들 덕분에 의심의 일부를 덜 수 있었습니다. 나의 하루하루는 빗방울과 바람의 경작이요. 흙 알갱이가 겹겹이 쌓이고 있는 중이라고. 그리고 남들이 보기에는 미미한 새싹 같아도 몇 년 후에는 뭐가 될지 모르는 단단한 아이가 되어가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하기로 했어요.



어쩌면 계단 말고 '출입금지' 지역을 내려가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날이기도 했습니다. 엘리베이터를 탔다면 보이지 않았을 곳이기도 하지요.



한 계단, 한 계단...

뭐 별 거 있겠냐 하시겠지만 마음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엘리베이터 타고 꼭대기 층에서 여유롭게 웃고 있는 이들이 많다는 것은 압니다. 그리고 이 순간 나는 계단, 그들은 엘리베이터 앞. 다른 위치에 서 있지만 한숨 쉬지 말자고요.


계단 하나하나가 줄 녀석들의 힘을 믿고 단단해 집시다. 분명 강한 심장을 가지게 될 것이고, 쉽게 무너지지 않을 깡다구가 생길 테니까요. 우리는 계단 수직면에서 피어난 녀석들만큼 씩씩해지고 있는 거니까요.


계단 말고 엘리베이터는 필요하면 타면 되는 겁니다. 어깨 펴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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