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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전원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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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진 Jul 21. 2021

달콤살벌 구멍가게


주막거리에는 도로를 마주 보고 가게가 두 군데 있었다. 그중 길을 건너지 않아도 되는 가게를 주로 애용했다. 길이 가까운 것 외에도 여러 이유가 있었다. 주인아주머니가 음식 솜씨가 좋아서 한쪽에서 막걸리와 안주를 같이 팔았는데, 가끔 바삭한 전이나 닭 요리를 얻어먹을 수 있었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는 같은 집안사람이라는 것. 아주 아주 먼 친척쯤 되는 것 같았다. 

가게에는 네 남매가 있었는데 모두 나보다 나이가 많은 언니 오빠들이었다. 종종 아주머니를 대신해 가게를 보곤 했다. 

"아줌마!"

과자 한 봉지를 사고 나가려는데 나를 불렀다. 돌아보니 눈이 참 큰 가게의 넷째 언니가 검정 봉지를 들고 있었다.

"엄마가 아줌마 오면 이거 전해주랬어."

봉지 안에는 수상하게 생긴 물건이 들어 있었다. 나중에 엄마를 통해 이 정체불명의 물건이 수박 껍데기로 담근 장아찌라는 걸 알았다. 

"아줌마, 잘 가!"

언니의 친구였던 가게의 막내딸은 나를 아줌마로 불렀다. 이건 절대 놀리는 게 아니다. 별명도 아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이전에 글에서 우리 동네에 경주 이 씨 가문이 모여 살았다는 내용을 적었다. 주막거리 가게와 우리도 같은 혈족이었다. 고조할아버지나 그 윗대에서 계통이 갈라진 것 같았다. 아무튼 자녀가 자녀를 낳고, 자녀가 자녀를 낳고 하면서 아래로 항렬이라는 게 생긴다. 그 항렬이 우리가 한 대 위였으니 우리 집 쪽 어른들이 장가를 늦게 갔던지 아이를 늦게 낳던지 했나 보다. 

그 바람에 나는 가게 주인아저씨와 항렬이 같았고, 아저씨 아이들은 나보다 항렬이 하나 아래였다. 나이는 많았지만. 가게 아주머니는 우리 가족에게 아줌마라고 부르라고 철저하게 교육을 시켰다. 그러다가 우리 집 큰언니가 학교를 들어가면서 호칭이 정상적으로 바뀌었다. 놀림을 받은 듯했다.

"너는 왜 쟤네한테 아줌마라고 불러?"

"야, 얘랑 너랑 같은 반이잖아. 왜 아줌마라고 하냐?"

한 학년에 한 반이 전부이니 호칭을 "○○야"로 바꾸지 않았다면 놀림은 6년 내내 계속됐을 것이다. 


이처럼 예의를 중시했던 가게 아주머니는 인심이 후했다. 반찬뿐 아니라 다른 것도 주셨는데 놀랍게도 생물의 특정 부위였다. 

구멍가게에서는 진짜 닭을 팔았다. 가게에는 한 번씩 닭 화물차가 와서 생닭을 가게 안쪽에 있는 닭장에 넣고 갔다. 닭 주문이 들어오면 아주머니는 그 자리에서 오늘 잡을 닭을 골랐다. 

꽥꽥꽥. 퍽퍽. 

근처를 지나가다 보면 닭 잡는 소리가 길가를 넘어오기도 했다. 사가게 앞에는 큰 통나무가 있었는데 간이 의자가 아니고 닭 잡는 도마였다. 아주머니는 거기에 깃털을 뽑은 닭을 올려놓고 중식도 같은 칼을 퍽퍽 내리치며 닭을 분해했다. 맨손으로 내장을 끄집어내고 목을 잘랐다. 찾으러 오라고 하는 시간보다 일찍 가면 아주머니는 닭을 자르거나 닭피가 흥건한 통나무에 물바가지를 붓고 있었다. 허걱!

닭을 팔고 남은 부위는 모아다가 나눠주곤 했다. 주로 닭발이나 닭근위 특수 부위였는데 내 동창은 내장을 받아갔다. 초등학생 때부터 오토바이를 기가 막히게 타던 동창은 학교가 끝나면 페인트 통을 옆구리에 매단 오토바이를 타고 구멍가게를 찾아왔다. 닭 내장을 얻어다가 동물을 먹인다고 했다, 으. 또 다른 친구의 엄마는 이 가게에서 잘라진 닭을 사다가 튀기고 양념을 발라 장사를 했다. 


야채나 과일, 쌀 등은 팔지 않고 (사방 천지에 있을 만큼 동네에 흔했으니) 과자나 아이스크림은 몇 종류 안 되고, 막걸리 한 사발과 안주, 생닭이 주요 취급 품목이었던 곳. 다소 이상해 보이지만 위치가 주막거리인 만큼 옛 주막의 정취가 남아 있던 것 같다. 아니면 시대를 앞서간 편의점이라고 해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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