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페네 Jan 02. 2022

행복의 간사함

행복의 속성들 중 가장 간사한 요소는 사람으로 하여금 행복에 빨리 적응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우리가 맛있는 음식점에 갔다고 생각해보자. 처음에는 그곳의 음식이 맛있어 정신없이 먹겠지만, 다시 방문하고 또다시 방문해 그 맛에 익숙해지면 어느새 질려버려 다른 음식을 찾거나 더 맛있는 음식을 바라게 된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행복의 속성은 이것과 다르지 않다. 


즐겁고 좋은 것에는 어느새 익숙해지기 마련이라 우리는 항상 새로운 자극을 찾게 되어 있다. 그래서 돈과 권력이 많다고 그것에 완벽하게 비례하여 계속해서 행복해지지는 않는 것이다. 돈이 정말 많으면 같은 밥을 먹어도 남들보다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고, 남들보다 더 좋은 옷이나 집 같은 물질적인 것들을 해결할 수 있는데 행복의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이 세상에 있는 최고의 음식들을 맛본다면 더 맛있는 음식은 어디서 찾아야 할까. 더 이상 탑승하기 편한 자동차는 어디서 구해야 할까. 더 높은 집은 어디서 사야 할까. 어느새 질려버려 다른 자극을 찾아야 하는데 찾을 수 없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것이 바로 가진 것을 당연하게 여긴 사람들이 사소한 일들에서 행복을 그다지 느끼지 못하는 이유이다. 행복이 당연해졌기에 거기에 적응하였기 때문이다.


사랑 또한 마찬가지이다. 처음 연인이 되었을 때는 없으면 죽고 못 살 정도의 기분을 느끼지만 시간이 지나고 해가 바뀜에 따라 서서히 익숙해져 더 이상의 두근거림은 느끼지 않게 된다. 몇몇 사람들은 이렇게 당연해져 버린 무미건조함을 견디지 못하고 헤어지기도 한다. 혹은 안 익숙한 척, 행복한 척을 하는 경우도 많다.


마약을 하지 않는 이상 사람이 느낄 수 있는 행복은 한계가 있고 그 행복이 지속되면 어느 순간부터는 당연한 것이 되어버려 더 이상의 행복을 느낄 수가 없게 된다. 만일 그가 행복을 느낀다 하더라도 그것은 비참했던 과거와 비교하여 지금 내 상황이 낫다며 상기시키는 것들일 뿐이다. 낮은 연봉을 받던 사람이 높은 연봉이 통장에 찍히면 당시에는 기쁠지 몰라도 그 현상이 몇 년 지속되면 어느새 높은 연봉에 익숙해져 왜 더욱더 많은 돈을 벌지 못하냐며 고민하기 일수이다.


사람들이 계속해서 새로운 자극 혹은 무언가를 원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들은 이미 당연해진 것들이라 욕망의 대상이 아니게 되었기 때문이다. 더 좋은 것들을 가지고 싶고, 더 나은 것들을 가지고 싶고, 지금의 생활이 당연해져 무미건조하다고 여기기에 내가 가진 것을 돌아보지 않는다. 설령 돌아본다 한들 처음 가졌을 때의 두근거리는 마음을 느끼는 일은 불가능하다.


사람은 자신의 결핍이 충족될 때의 상황을 항상 긍정적으로 그리게 되어 있다. 예를 들어 돈이 없는 사람은 돈만 많으면 행복할 것이라 여기지 그 돈을 얻기 위해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시간을 들이고 어느 정도의 노력과 운이 따라야 하는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이 그것을 얻기 위해 무엇을 희생해야 할 지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운 좋게 그냥 얻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자신의 망상에 행복을 두는 경우도 많다. 


설령 원하는 것들을 얻었다 한들 행복해지기란 쉽지 않다. 세상에 그 어떠한 것이든 그냥 주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높은 실력을 보유하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시간을 투자했다는 의미이고, 자신의 가치를 높였다는 의미는 자신의 가치와는 상관없는 일들을 하지 않았다는 뜻이 된다. 남들이 놀 때 일을 하고 남들이 술을 마실 때 에너지 드링크를 마시며 노력했기에 자신의 이상을 성취했지만, 성취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했기에 성취에 대한 대가는 오로지 일만 했다는 추억뿐이다. 


그렇다면 금수저로 태어나면 되지 않겠냐고 하겠지만, 위에서 설명했다시피 모든 것은 익숙해지게 되어있다. 따라서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이 누리는 모든 것들을 당연하게 여긴 사람이 그것들에 행복을 느끼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그들도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들에 결핍되어 있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또한 주변의 부자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제대로 된 집안의 아이들은 그 부를 물려받기 위해 엄청난 교육을 받는다. 부자라서 아무 생각 없이 사는 것은 드라마에서나 벌어지는 판타지일 뿐이다.


부유한 사람이 과연 그 부가 사라질 때에도 자신의 곁에 남아있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부나 권력으로 자신을 판단하지 않고 오로지 사람대 사람으로 자신을 대할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그래도 돈은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낫다면 부를 지키기 위해 온갖 사기꾼들과 시종 잡배들과 맞서야 한다. 부나 권력은 그것을 지킬 그릇이 되지 않으면 깨지게 되어있다. 그들도 같은 사람이기에 이미 가진 것은 당연하고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원하며 더 큰 소유를 원한다.


따라서 사람은 그가 어느 위치에서 무엇을 가지거나 누리고 있는지 관계없이 행복 앞에서 통탄할 절망을 느끼게 된다. 행복을 이리저리 찾으러 온데간데 뛰어다니지만 결국 찾아내지 못해 절망하여 비참함에 굴복한다. 하지만 철저한 사색을 통해 엄밀한 정의의 행복을 누릴 방법이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행복은 특정 상황에서 '기쁘다'라고 느끼는 감정일 뿐, 결코 그것은 지속되거나 혹은 유지되거나 하지 않는다. (기쁨은 기쁨이라는 단어가 있기에 기쁨이라 정의하지 기쁨이 행복이었으면 행복이라는 단어는 기쁨과 같았을 것이다 하지만 두 개의 단어는 별개이다. 즉, 다른 의미를 지녔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너무나도 바쁜 나머지 충분한 시간과 여유를 가지고 생각할 틈이 없다.


2022년에는 글을 하나씩 작성하며 삶의 비참함을 철저히 분석하여 마주해보고 일시적인 감성적 기쁨이 아니라 명확하고 불변한 행복을 어떻게 추구할지 서술할 생각이다. 

작가의 이전글 죽음과 허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