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보다 인생에 대하여 깊은 생각을 할 필요가 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출근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 저기 있는 사람들도 열심히 사는데 나도 열심히 살아야지 ‘라고 생각하는 것은 좋으나 왜 그렇게까지 살아가야 하느냐에 대해서는 대답하지 못한다. 단지 막연하게나마 '그렇게 열심히 사는 게 인생이니까?'라고 생각할 뿐이다.
왜 새벽에 일어나야 하지? 왜 우리는 매일같이 일을 해야 하지? 왜 우리는 하기 싫은 일 때문에 고통받아야 하지? 단순히 희망과 열정이나 힐링을 말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근본적 물음에 대한 답을 제시하지는 못한다. 그들은 그저 힘든 일이 있어도 다른 곳에서 행복을 찾으면 된다는 무책임한 말들만 늘어놓을 뿐이다.
혹은 나보다 힘들게 살거나 못한 사람이 있느니 그들을 떠올리며 위안 삼으라고 말하는데 이 말은 정말 무책임하고 이기적이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파렴치하기 짝이 없는 말이다. 다른 사람과 비교우위에 서야만 나의 존재가치를 지닌다면, 첫째로 다른 사람을 짓밟는 건 당연한 일이 되고 두 번째로는 자연히 사람을 평등하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등급제로 대하고 있다는 뜻이며 세 번째로는 인간사 새옹지마라 내가 나보다 낮게 여긴 사람이 나보다 잘나 지면 그 자괴감은 더욱 커질 것이다. 네 번째로는 정말 형편이 좋지 않은 사람은 아무런 행복도 느낄 수 없는 무가치한 인생이라는 뜻이 되고, 마지막으로 나보다 잘난 사람을 떠올리면 바람 앞의 촛불처럼 처량할 뿐이라는 사실을 인지하므로 위와 같은 말은 극단적으로 정말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는지는 알아도 왜 살아가는지는 모른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어떻게 살아가는지는 배울 수 있어도 왜 살아가는지는 배울 수가 없다. 우리가 지닌 실존의 문제는 여기서도 드러난다.
사람들에게 왜 살아가느냐고 묻는다면 아무리 그럴듯한 이유를 된다 한들 근원을 들여다보면 '그냥 살아있으니까 살지 왜 사는지는 모른다'가 결론이다. 이렇게 우리들은 죽음에 가까워지는 시간을 대가로 노동을 하여 돈을 받아 생활하는데, 이는 마치 내 존재에 대한 개인적 추구를 하지 않는 대신 그 대가로 돈을 받는 것과 같다.
물론 현대 사회에서 돈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하지만 우리가 인지하고 넘어가야 할 것은 확실히 해야 한다. 내 물건이나 내 소유의 무언가를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은 싫어하면서 왜 우리는 내 시간을 다른 사람을 위해 헛되이 쓰는데 관대한 지에 대해서 말이다.
정말 신기한 현상은 다른 사람이 내 몸을 상하게 한다던가 혹사시키려 한다던가 혹은 노예처럼 부리려 하면 투쟁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정신과 시간을 다른 사람이 상하게 하고 혹사시키려 하고 노예처럼 대하려 하는 것에는 거부감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회에서 다른 사람 눈치 보고 정치하고 아부하고 시키는 대로 하고 내 의견이라고는 묵살당하고 다른 사람이 내린 의사결정의 노예가 되는 데는 거리낌이 없다. 물론 이것이 어쩔 수 없는 사회현상이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내가 왜 그런 정신과 시간의 노예가 되었는지는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는 모든 비참한 책임을 스스로 짊어지겠다는 무언의 굳은 약속을 스스로와 체결해야 한다. 내가 나 스스로 그런 상황을, 내가 내 양심에 비추어 가슴에 손을 얹고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 이 모든 것을 감내하겠다는 굳건한 선언이 이루어져야 한다. 즉, 삶에 책임을 질 수 있을만한, 살아가는 의미를 찾아내야 한다.
사람은 새벽에 일어나야 하는 타당한 이유가 있다면 반드시 새벽에 일어나게 되어있다. 총탄이 날아다니는 전쟁터에서도 반드시 해야 할 의무를 다하고자 마음먹는다면(동료를 지키고 국가를 수호하는 일등) 인간은 초월적인 힘을 내고 심지어는 자신의 목숨을 불살라 그 의무를 수행한다. 만일, 새벽 4시에 일어날 때마다 10만 원씩 준다고 가정해보자. 돈이 웬만큼 많지 않은 이상 알람을 맞춰 일어날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아니 그것보다 더한 보상이 기다리고 있다. ’ 당신의 삶의 이유와 의미를 실현하는데 새벽 4시에 일어나는 일이 필요하다면, 당신은 기꺼이 일어날 것인가? 그 대가는 바로 가슴 뛰는 삶이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내가 그 행동을 할 정당한 의미를 갖느냐의 문제이지 온갖 감언이설로 나의 모든 행동을 정당화하는 방식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