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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을 Dec 22. 2023

세상이 염세적으로 보인다면? 진짜 어른을 만나보시길!

[영화 리뷰] 어른 김장하

‘다음 소희’ 정주리 감독의 추천 영화였다. 소개와 ‘어른 김장하’라는 제목이 인상적이어서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우연히 독립 서점이자 영화관인 무사이에서 상영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한가로운 오후, 영화를 보지 못 할 이유는 없었다. 그렇게 극장에 홀로 앉아 김장하라는 어른과 만났다.


‘어른 김장하’는 다큐멘터리로 김장하라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여든 살을 앞에 두고 계신 어르신은 진주에서 50년간 한약방을 운영하셨다. 하지만 영화는 김주완 작가의 시선으로부터 시작된다. 김주완 작가는 신문기자로 일했던 분이었다. 주로 사회의 어두운 면을 파헤치는 일에 몰두하다 회의감을 느꼈다고 했다. 끊이지 않는 비리, 취재 후에도 별로 달라지지 않는 현실…. 읽는 것만으로도 괴로워 뉴스를 외면하기도 하는 나는 그 감정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것은 김주완 작가의 시선을 돌리는 계기가 되었다. 사회의 어두운 면이 아닌 밝은 면, 특히 좋은 영향을 끼치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알리는 것에 가치를 느꼈다. 그러다 김장하 선생을 알게 되었다. 평생 나눔을 실천해 온 인물로 무척이나 취재하고 싶은 대상이었지만, 선생은 어떤 인터뷰에도 응하지 않았다.


희끗희끗한 머리의 김주완 작가가 역시나 머리가 희끗희끗한 김장하 선생의 뒤를 쫓는다. 어떻게든 인터뷰를 해보려 한약방을 무작정 찾아가기도 하고, 불쑥 질문을 던져보지만- 내뱉는 순간 자신의 칭찬이 되는 말에는 입을 꾹 다무는 김장하 선생. 그는 포기 하지 않고, 김장하 선생에게 은혜를 입은 사람들을 취재하기 시작한다. 영화 내내 할아버지(김주완 작가)가 다른 할아버지(김장하 선생)의 발자취를 찾아내려 뒤쫓는다. 그리고 관객인 나는 귀여운 할아버지들의 뒤를 따라 ‘어른’이라는 단어를 엿보게 된다.


결론부터 말하면 김장하 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은 사람을 도운 사람이다. 그저 도왔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한약방으로 벌어들인 많은 돈을 타인을 위해 써왔다. 100억 원이 넘는 사재를 들여 명신고등학교를 설립하고, 모든 시설을 완비한 후에 국가에 기부채납했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수많은 학생을 위해 남몰래 장학금을 주었다. 그뿐만 아니라 지역 신문, 지역의 역사와 관련된 문화재 보존, 여성평등기금을 조성하고, 극단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지원했다.


상상도 못 한 곳에서 드러나는 그의 나눔은 영화에 드러난 것이 빙산의 일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그렇게 많은 사람을 도운 김장하 선생은 차도 없이 낡은 양복을 입고 검소하게 살고 있었다.


‘아픈 사람에게서 얻은 돈이라 사회를 위해서 쓰는 것이 당연하다’고 하는 그의 말을 듣고 왠지 먹먹했다.


돈이 세상의 전부는 아니지만, 대부분을 바꿔놓을 수 있을 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나는… 그 어른 앞에서 한없이 작은 아이가 되었다. 수수한 차림에 소박한 걸음걸이로 걷는 할아버지를 보고, 눈물이 맺혔다. 그리고 활짝 웃는 모습에 따라 웃었다. 가끔은 혼잣말도 내뱉다 홀로 영화를 보게 다행이라 안도하며 또 웃었다. 보는 내내 마음을 따뜻하게 했던 영화는 아주 작고 사소하더라도 계산 없이 누군가를 도와주고 싶다고 마음이 들게 했다. 그게 이 시린 겨울에 따스함을 전해준 김장하 할아버지께 조금이라도 보답하는 길이라는 생각과 함께.


세상이 염세적으로 보인다면, ‘어른 김장하’를 추천한다. 상상도 못 할 만큼 커다란 품을 지닌 어른과의 만남이 분명 위로가 되어줄 테니까.



영화 포스터
부산 화명동 독립 영화관 무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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