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을 Jul 18. 2023

80대를 기다린다!

[영화 리뷰] 작은정원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산다는 말이 있다.

아름다워 보이는 그 말을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인생의 절정은 10대와 20대에 있으며, 나머지는 그냥 주어진 덤으로 취급하는 말 같다. 마치 남은 날까지 설렐 일이 하나 없어서 자꾸만 추억을 꺼내어 곱씹고, 곱씹으며 살아간다고 하는 것만 같다. 과장하면 현재가 아닌 과거에 살게 될 거라는 악독한 주문처럼 느껴진다.


30대 후반에 접어든 내 생각은 전혀 다르다.

10대보다는 20대가 좋았고, 20대보다는 단연 30대가 좋았다.

다가올 40대, 50대도 어떤 식으로 보내게 될지 기대되고 설렌다.


나이가 들면서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고들 한다. 그렇다면 시간이 엄청 빠르게 흐를 80대의 하루에는 정말 중요한 것만 남지 않았을까? 눈 깜짝할 사이에 흘러버린 시간 속에서 가슴을 울리는 무언가는 훨씬 더 가치 있는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노년에 대한 호기심이 늘 있었다. 어떤 생각을 하고 하루를 보내는지 궁금했는데, 그를 알 수 있는 어르신이 주변에 없었다.



아기자기한 포스터에 예고편을 보고는- 그날 바로 보러 갔다.

평균 나이 75세의 할머니들이 모여서 영화를 찍었다. 배우는 물론이고 감독, 연출까지 맡아서 하나의 영화를 함께 만드는 과정이 영화 전반부에 담겨있다. 후반부에는 각자의 휴대전화로 직접 영상을 찍는다. 시나리오가 있는 것이 아닌 할머니들 본인의 일상, 대화, 생각을 찍는 과정이 고스란히 영화에 녹아나 있다.


휴대전화로 사진 찍는 것도 어려워했던 할머니들이 셀카를 찍고, 영상으로 자신 얼굴을 남겼다. 어색하게 웃음 지으며 이름을 말하기도 했고, 또 아무에게도 내비치지 않았던 속마음을 터놓기도 했다. 그녀들이 처음부터 용기가 있었던 건 아니다. 나이 많은 모습이 커다랗게 나와서 좋을게 뭐가 있냐며 부끄러워하고 꺼리기도 했다. 하지만 용기 내 카메라 앞에 섰고, '작은 정원'이라는 이름으로 묶여 작품이 되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따뜻했다.

영화에서 가장 많이 나온 말은 단연 '언니~'가 아닐까? 여덟 명의 할머니가 모였는데, 서로가 서로에겐 그저 언니와 동생이었다. 누구누구의 엄마가 아닌 서로 이름으로 불리는 사이.


그녀들은 소녀와 다름이 없었다.


비를 맞으며 핀 꽃을 보고 어찌 그리 예쁘냐며 찍기 바쁜 소녀.

작은 농담에도 꺄르르 웃는 소녀.

자녀와의 통화에 눈시울이 붉어지던 소녀.

세상에 내 작은 흔적이 남길 바라는 소녀.

인생을 담아 사무치게 시를 낭송할 수 있는 소녀.



오손도손 아지트에서 만나 새로운 무언가를 창작하려는 소녀들의 수다가 마냥 즐거웠다. 나도 함께 껴서 '언니~ 언니~'라고 부르며 어울리고 싶었다.


그들을 보며 상상해 본다.

작은 것에 감탄하고 감사할 줄 아는 나를.

지금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에 도전하고 있을 나를.

아름다운 사람들과 즐겁게 살아가고 있을 나를.


80대도 역시 기다려지는 이유가 생겼다..!

매거진의 이전글 반대가 끌리는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