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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지 Apr 24. 2024

화성에서 온 편지




안녕.

잘 지냈니.


나 화성에 왔어. 여긴. 많이 붉지 않아. 생각한 것보다 더 재밌는 삶이야. 사람들에게 가끔씩 지구를 기억하냐고 물으면 사람들은 지구라는 곳은 너무 먼 곳이 아니냐고 되물어. 이 곳 사람들은 이미 너무 화성에 익숙해졌어. 그렇지만 웃기지 않니. 나만이 화성에서 지구를 잊지 않기 위해 매일 너에게 편지를 쓰고 있다는 거 말이야.


죽으면 천국에 갈 줄 알았는데 다들 화성에 오게 된다는 사실을 지구 사람들은 알고 있을까. 매일 매일 편지를 쓰면서도 지구를 잊어가고 있어. 이 곳은 시계도 없지만 난 무언가가 흘러가고 있다고 느껴. 엔트로피가 있긴 있나봐.


내 시체를 발견했겠지. 슬펐니? 많이 슬펐니? 심장이 갈기갈기 찢어질 정도로 힘들었니? 너도 죽고 싶어졌니? 너도 죽고 싶어졌다는 게 오묘하게 위로가 된다는 게 이상해. 그렇지만 절대로 죽지마. 죽어버린 내가. 화성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웃기지만 말이야.


화성에 오면 자신이 왜 죽고 싶어 했는지에 대해서 다들 잊어버리나봐. 추측컨대 이 곳은 스스로 생을 포기한 사람들이 오는 것 같아. 척박한 행성에서 스스로 땅을 일구고 힘을 합쳐서 살아야 하지. 지구에서의 난 이런 유대를 항상 바랬어. 여럿이 모여 한 번씩 포옹하고 오늘도 수고했다며 어깨를 쓸어 담는. 이런 가벼운 접촉만 있었어도 내가 화성에 있진 않았을 거야.


사실 너의 이름을 잊어버렸어. 그렇지만 내가 사랑했다는 사실은 알아. 그래서 계속 쓰기로 했어.



지구 사람들이 그토록 궁금해했던 외계인이 사실은 지구 사람들이라는 비밀을 얼른 알았으면 좋겠다가도 좀 더 늦게 알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어.



난 가끔 불현듯 네 목소리를 들어. 이런 말들을 해줬던 것 같아.



그런 밤만 잘 버티면 된다고.



이곳엔 밤도 낮도 없는데 나는 더 이상 버틸 필요가 없는데. 너는 이 곳에 최대한 늦게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 밤만 잘 버티고 우리 최대한 늦게 보자.


화성은 더워. 매일 매일 여름… 어때 오기 싫지?


네가 보고 싶지만 너를 보고 싶지 않아.


가능하다면 네게 영생을 주고 싶다.


난 이제 가야겠어.


잘자. 내일도 편지 할테니까.


우리 언젠가 봐.



- 화성에서, 너의 친구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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