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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지 Aug 28. 2023

나는 오늘 닭을 죽였다.





 새벽 열두시 반을 조심해라. 닭을 튀긴 비닐봉지가 문 앞에 놓일 수 있다. 주문한 손가락은 내 의지를 거부하고 말았다. 야식은 건강에 좋지 않으며 분명 해야 할 일을 미루고 또 보상을 주는 자본주의적 행태를 고발하겠다고 뇌 속에서 소리를 질렀지만 나는 기름진 껍데기를 바삭하게 씹으며 무시할거다. 이 정도 잘못도 못하니? 어느 정도의 죄책감은 가지고 살자. 항상 정도의 길을 갈 수는 없는 거라고. 어떤 멍청한 자아비대증 환자들처럼 사람을 죽이진 않았으니까 다행인 거 아니냐고 나는 내게 다그쳤다. 그러나 요점은 그게 아니다. 요점은 내가 치킨을 먹는 게 잘못되었다는 게 아니라 네가 할 일을 다 했냐고 묻는 말에 대답을 할 수 있냐는 거다.


 오 젠장 사실은 닭을 죽인 것이 아니라 내 안의 양심을 죽인 것이 되었어. 오 젠장 다니 캘리포니아 노래는 블루투스 스피커에서 나오고 나는 캘리포니아에 갈 수가 없네. 롹음악을 들으며 나는 춤을 췄어. 캘리포니아 RIP를 외치며 내 안녕을 고한 거야. 위장아 잘 살아라. 나의 위장아 밤에 뒤틀리지 말아 줘! 위염아 식도를 타고 올라오지 말아 줘! 헛헛한 건 일요일 밤만으로 족해! 나는 나를 너무 사랑하지만 동시에 우울해! 나는 젊지만 곧 늙어! 나는 꿈이 있지만 아직 못 이뤘어! 나는 사랑했지만 전부 헤어졌지! 어쩔 수가 없어! 닭은 튀겨졌지. 나는 기름진 손으로 닭을 먹겠지! 배달은 아직 오지 않았다. 이 닭을 기다리면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하지? 결국 나의 죄책감을 튀겨버린 닭이 온다면 나는 그 닭을 보고 무슨 감정을 느껴야 하지?


 친한 동생이랑 전화를 했다. 언니 조금 더 현실적인 사람이 되었네. 아니야 어쩌면 나는 현실을 종이 안에 가두려고 노력하고 있을지도 몰라. 현실은 현실. 이 하얀 배경 속에 갇히는 글자는 내 것이다! 내 것! 이 글자만은 나를 가둘 수 없어! 이 글자만은 내 세상이야! 아무리 현실은 나자빠 뒹굴고 있는 판때기 같다고 해도! 나는! 이 글자로는! 닭을 분해하고 조립하고 사랑하고 상징으로 치환해서 무언가를. 표현하고 있어. 아무도 읽어주지 않는 내 글로. 나는 갈망을 표현하고 있어.


 닭은 배달이 될 것이고 나는 월요일을 맞이하게 되겠지. 닭은 튀겨지고 나는 돈을 벌게 되겠지. 나는 그 돈으로 닭을 사 먹는 것이다. 오. 이렇게 쓰면 어때. 나는 배달되고 나는 튀겨지고 나는 먹히고 있다. 나에게. 나에게. 나에게. 현실을 사는 나에게! 이런 빌어먹을! 가지고 있는 건 삶에 대한 애착과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다는 처절함과 달로 가버린 우울 비행사 밖에 없다네. 그 달에는 치킨이 배달될까!


 결국 나는 또 글을 쓴다. 이 글은 일기다. 나는 글을 쓴다. 나는 글을 쓴다. 나는 글을 쓸 거다. 나는 글을 쓰고 말 거다. 나는 살아나갈 거다. 나는 닭처럼 살 거다. 닭은 태어날 때 갇히게 태어나지 않았다. 닭은 초원을 뛰놀았어야 했다. 닭은 튀겨지지 말아야만 했다. 튀겨진 닭을 먹고 나는 닭의 꿈을 꿀 거다. 그 꿈에서 닭은 내게 말하겠지. 너만은 튀겨지지 말라고. 나는 울고 싶어졌다. 맛있는 닭을 먹고. 나는 절대로 도망가리라. 나는 월요일에 지지 않겠다고 명심한다. 닭을 위해서.

 나는 오늘 닭을 죽였다. 그 닭의 명예를 지키려면 어쩔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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