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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지 May 23. 2024

일기




눈 뜨자마자 다시 잤고 또 눈 뜨자마자 다시 잤고 또 눈 뜨자마자 다시 잤는데도 오전 일곱 시 삼십 분 이였다 쫄쫄 굶다가 점심에 학식을 먹었는데 쌀밥을 너무 오랜만에 먹어서 돌쇠처럼 먹었더니 오늘은 수업 중에 졸아버렸다(내 등록금!) 수업이 끝나고 과외를 했다 과외가 끝나고 버스를 타고 집에 도착하니 지금 이 시간이다 이렇게 쓰면 하루가 별 거 없는데 이런 별 거 없는 삶이 반복되다가 백 살이 된다니 정말 믿을 수가 없다.



스무 살 스물 한 살 스물 두 살 스물 세 살 스물 네 살 스물 다섯 살 스물 여섯 살은 지나가 버렸고 스물 일곱 살은 지나갈 것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습관 중 하나는 복선을 되짚는 것인데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오늘 영어 과외를 하는 학생이 2023년 고1 9모 지문 중 ‘Quarterback’이 나오는 문제를 풀고 있었다. 난 단어 하나만 보고 지문의 내용을 알 수 있었다. 이런 결과를 가져온 인생의 복선 중 하나는 내가 영어 학원으로 이직을 한 것이다. 그 전 영어 학원에서 원장에게 수모를 당해서 이직을 결심했기 때문이다.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 영어교육과를 복수전공 했기 때문이다. 국어교육과를 가고 싶었는데 윤리교육과에 합격했기 때문이다. 국어국문학과를 가고 싶었는데 국어교육과로 수시원서 접수를 했기 때문이다. 문예창작과를 포기하고 국어국문과를 가고 싶어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



모든 복선은 운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만든 거라는 걸 깨달았다.



어떤 날은 기운 차는 반면 어떤 날은 무기력하고 어떤 날은 해보겠다 하는 반면 어떤 날은 나가 죽고 싶고 어떤 날은 젊음을 느끼다가 어떤 날은 늙어가는 것을 체감하고 어떤 날은 인스타 스토리에 명랑을 전시하고 어떤 날은 그런 내 자신이 거추장스럽고.



으쌰으쌰 할수 있어 라는 마음가짐을 전시하려고 노력한다 그렇게 해야만 얻어지는 기운이 있기 때문이다 으쌰으쌰 오늘 하루 좋았어 다들 고생했어 라고 말하지 않고 비관적으로 생각하며 난 아무것도 될 수 없을 거라고 맘 먹으면 그건 진짜로 내가 되어 버리니까



오늘도 복선이 된다



믿을 수 없지만 믿어야 한다 내가 행복해질 것을



그런 신념이 하나의 길이 되어 나를 어딘가로 또 데려가겠지 그 길에서 만난 사람들을 보고 인사해야지



결말을 모르는 소설을 다 읽고 나면 알겠지 결말로 가는 과정 중 만난 그 사람들에게서 해석의 여지를 찾겠지 나의 인생을 느릿느릿 읽겠다.



남의 일기장 보는 건 어땠니


즐거웠니?


이게 바로 내가 믿는


이야기의


힘이야!




-2024.05.23 잊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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