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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지 Jul 09. 2022

우울증에 걸린 철학자



 고뇌하는 사람들은 고뇌하다가 인생을 허비한다. 그러나 고뇌만이 그들이 사는 이유였다. 오늘 밥을 뭘 먹을 지에 대한 생각보다는 삶이 왜 이렇게 거지같은 지에 대해서 고뇌하는 것이 더 즐거웠고, 돈을 얻으면 써야 하니까 돈을 버는 것보단 길거리의 거지가 더 자유로워 보였다. 고뇌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기대도 하지 않으며 산다. 고뇌하는 사람들은 오직 자기 자신만 생각한다. 그것이 유일한 즐거움이다. 그래서 고뇌하면서 세상을 우러러 본다. 발 아래에 인간의 인격을 깔아 놓는다. 그렇다. 그들은 인격을 깔보고 본인이 모든 것을 정죄할 수 있다고 믿는다. 현대의 프로타고라스이다. 제2의 프로타고스 제3의 프로타고스. 인간은 만물의 척도이다. 여기서 인간이란 그들에게 자기 자신 뿐 나머지는 모두 번식기에 짝짓기 하며 자손을 만드는 짐승에 불과하다. 그래서 고뇌하는 사람들을 곁에 두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 그들은 언젠가 자기 자신만이 절망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며 모든이의 우울을 한데 모아 짓밟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이다. 고뇌하는 자들은 파멸의 길로 간다. 궁극적인 이상은 자기 자신일 뿐인 그들은 결국 자신이 타인과 똑같다는 점을 깨닫기 때문에 절망한다. 신을 닮았다고 생각하지만 작은 현상들 앞에서 무릎을 꿇는다. 머피의 법칙도 해결하지 못해 울적해하고 그들의 눈물만이 뜨겁고 깊이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소피스트의 범주에도 끼어들지 못하면서 자신들이 소크라테스인냥 주변인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강요한다. “왜 그렇게 생각해?” “너는 지금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 여러 가지 말투로 공격하는 고뇌하는 자들은 끝내 그 물음의 최종 목적지가 자신들을 향할 것이란 걸 깨닫지 못한다. “난 왜 이러지?” “난 왜 이렇게 불행하지?” 그래서 고뇌하는 자들은 인생을 허비한다. 그 어떤 철학자도 난 왜이러지 라는 물음에 멈춰 파멸하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고뇌하는 자들은 예술가도 아니고 철학자도 아니다. 예술가는 작품을 남겼지만 고뇌하는 자들은 머릿 속 부유물, 정확히 말해 찌꺼기만을 흩뿌려댈뿐, 아무것도 남기지 못하기 때문이다. 현대인들의 특성 중의 하나인 고뇌는 자기 자신이 남보다 우월하다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그렇다면 겸손이라는 특성은? 그것 또한 자기 자신이 남보다 우월하다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내가 이렇게 겸손하기 때문에 자신의 성질은 부드럽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진짜 인간이란 그렇다면 무엇일까. 고뇌하지도 말아야 하며 자존감을 느껴서도 안되는 걸까. 아니면 모두 다 같이 망해야 하는 걸까. 이미 결론은 나와있다. 우리 모두는 망했다. 망한 존재로서 동정심을 느끼며 위로하며 살아야한다. 우리 모두는 우울하다. 우리 모두는 우리 모두가 정답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종교적인 회귀는 일시적일 뿐이다. 어떤 고뇌하는 이는 좌절하는 자신을 사랑하는데 이는 한낯 자위질에 불과하다. 이 세상에 사랑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다. 모든 추상은 인간의 개인적인 주관에 불과하다. 이 점에서 플라톤의 이데아의 불완전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덕 또한 그렇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예찬할 수밖에 없던 지성인들은 결국 미쳐서 흄과 같이 감정이 이성보다 낫다고 말하기에 이른다. 모든 주관을 인정해버린 것이다. 다른 말로 주관 앞에 무릎 꿇은 것. 칸트나 데카르트 또는 이의 명맥을 같이하는 현실을 고려했다고 자신있게 말하는 실존주의자들 또한 인간의 기능을 긍정함으로써 철학의 한계를 수면 위로 등장시켰다. 철학이란 것은 없다. 그래서 사상(思想)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도덕이나 윤리를 배우는 것 또한 타인과 조화롭게 지내며 로크가 주장한 백지상태로 회귀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그렇다고 홉스를 찬양하는 것은 아니다. 사랑이 없으면 증오도 없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無라는 허무주의자와도 다르다. 우리는 이미 태어나버렸기 때문에 실재한다. 그렇다고 실재성에 의미를 덧붙일 수는 없다. 누군가가 인간을 조종하는 것도 아니며, 인간 내부에 그러한 힘이 존재하지도 않다. 결국 철학이란 인간의 주관을 적절히 체계적으로 있어보이게 하는 방어적 장치일 뿐이다. 그래서 고뇌하는 인간의 인생은 덧없다. 고뇌하지 않는 인간의 인생은 더욱 덧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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