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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지 Apr 08. 2023

딸기 잼 살인사건






딸기 잼 살인사건




 네가 알레르기가 있다고 한 게 무화과였나, 복숭아였나.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딸기는 아니었다는 건 확실하다. 네 집으로 가는 길에 딸기잼을 샀다. 설탕에 오랫동안 끓이기만 한 잼은 왜 이렇게 비싼 걸까. 너는 왜 아침을 거르는 걸까. 한국인은 밥만 먹고 산다는데 너는 왜 밥을 안 챙겨 먹을까.

 오랫동안 너의 비밀번호를 기억하고 있다. 지나가는 말로 한번 말한 6279. 27살에 입주하게 되어서 작은따옴표 사이에 넣었다는 네 나이. 언젠가부터 너는 늙는 게 두렵다고 말했다. 눈을 뜨면 80살 노인이 돼 있을 것 같다고. 그때마다 나는 너에게 단것 좀 먹으라고 말했다.

 단 것 좀 먹으라고.

너는 배가 부른 느낌이 싫다고 했다. 나는 너랑 닭갈비에 볶음밥, 놀이공원에서만 파는 솜사탕, 백화점에 입점했다는 구슬 아이스크림, 주름살 박힌 채 등산하고 먹는 닭백숙, 이빨이 닳아서 부드러운 것만 먹게 될 때 약과도 먹을 준비가 돼 있는데. 너는 배가 부르면 딱 거기까지라고 말했다.

 현관문을 열면 있는 작은 미닫이 문 하나. 흰색이 하나도 벗겨지지 않은 순수한 문을 지나가서 대리석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노란색 프리지어를 지나가 설거지라도 하려고 싱크대에 가면 이미 성실한 네가 다 해놓아서 물기 하나 없는 싱크대를 바라보게 된다.  

 프라이팬에 방금 산 호밀식빵을 올리고 앞 뒤로 바삭하게 구운다. 거의 까맣게 되기 직전까지 뜨겁게 굽고. 한쪽은 딸기 잼을. 한쪽은 말 할 수 없음을 바른다. 아파트 방송음이 흘러나온다. 낮고 진하게 경비아저씨의 음성이 거실을 채운다. 아. 아. 오늘은. 단수 예정입니다. 미리 물을 콸콸 틀어놓으시길 바랍니다. 틀어 놓을 수 있을 때. 욕조에 콸콸. 본인이 마실 물도. 넣어 두시고요. 또 분리수거를. 제대로 안 하는 세대가. 늘고 있습니다. 음식물 쓰레기를 버릴 때. 냄새나는 마음도 같이. 버려주시길. 바랍니다.

 냄새나는 망.

 이요.   

 문 열리는 소리. 슬리퍼를 신는 소리. 이불을 개는 소리.

네가 안경을 쓰고. 계절성 비염에 시달리는 코를 훌쩍이고. 문을 열고. 누군가 있음을 느끼고. 테이블을 돌다가. 프리지어 한 송이가 시들어 슬퍼하고. 나를 보고 말한다. 배가 하나도 안 고파. 요즘 뭘 잘 못 먹어. 그러면 나는 또 말한다. 단 것 좀 먹으라고. 네가 그래서 몸이 허약하고. 계절성 비염을 달고 살고. 위장이 아프고. 밤이면 피곤해서 12시를 못 넘기고 잠드는 거라고. 비타민 좀 챙겨 먹으라고. 나랑 햇빛도 좀 보고 놀러 가자고. 비밀번호를 아는 사람이 나 말고 누가 있냐고. 내가 아니면 누가 너를 챙겨주냐고. 토스트 좀 먹어 보라고. 방금 구워서 따뜻하니까 우적우적 씹어서 없애달라고. 네가 밥을 못 먹으면 나는 달리다가 무릎이 깨진 아이를 보는 것 같다고. 우산 없이 비를 맞으며 가방 문이 다 열린 초등학생을 보는 것 같다고. 그러니까 제발 좀 입을 벌리고 먹으라고. 10. 9. 8. 7. 6. 5. 4. 3. 2. 1. 맛있네. 근데 나 이런 거 집에 두면 곰팡이 슬 때까지 안 먹거든. 그러니까 네가 가져가.

 너 그나저나 복숭아 알레르기가 있다고 했나?

 아니, 무화과 알레르기.

네가 가져가라고 한 식빵 봉지를 한 손에 든 채, 수리 중이라는 표시가 띄워진 엘리베이터 앞에 덩그러니 서니 무시무시한 생각이 들었다. 무화과 잼을 사서 먹였어야 했는데. 그러다가 또 마지막에 네가 한. 고마워라는 말이 생각나서 웃다가.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건가 싶어 시계를 보니 2시 7분이다. 시간은 금세 지나 2시 8분이 될 것이고, 3시 4분이 될 것이고, 어쩌면 6시 7분, 그러다가 10시 0분이 되어 내가 100살이 되면 너 같은 건 기억도 안 나겠지. 그렇게 10층에서 0층으로 내 망은 버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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