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홀로 떨어져 지낸 지 벌써 반년이 되었다. 이제 겨우 숙소를 구하기는 했지만 밥은 잘 먹고 다니는지 궁금했다. 당장이라도 날아가보고 싶었지만 남편 수술 예약이 잡혀서 미루고 있었다.
날짜 잡고 석 달을 기다렸는데 불과 수술 열흘 앞두고 다시 석 달이 연기되었다. 그나마 석 달 후에도 장담할 수 없다고 했다. 기분 전환을 할 겸 차라리 딸이 있는 로마를 먼저 다녀오기로 했다. 마침 바티칸 부활절 미사에 참석할 수 있는 티켓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촉박하지만 교황님이 집전하는 부활절 미사를 보고 싶어서 서둘러 비행기표를 예약하고 준비를 했다.
파도에 떠 밀리는 배처럼 비행기는 불안정한 기류에 출렁거렸다. 그래서 40분이나 도착이 지연되었고 난생처음 비행기 멀미까지 했다. 속이 울렁거리며 머리는 어지럽고 거울을 보니 누렇게 뜬 얼굴이 말이 아니다. 오랜만에 만나는 딸이 걱정할까 봐 신경이 쓰여 찬물로 얼굴을 적시고 립스틱을 빨갛게 바르며 밝은 표정을 지어 본다. 울렁거리던 속은 다행히 비행기가 착륙을 하고 발이 땅에 닿으며 찬바람을 쏘이니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했다. 입국장만 바라보고 기다리고 있을 딸을 생각하며 서둘러 걸음을 재촉해 본다. 다행히 한국은 미국, 호주와 함께 자동 출입국 심사가 가능한 국가라서 길게 줄을 서지 않고 빨리 입국할 수 있었다. 두리번거릴 필요도 없이 입국장 바로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표정과는 달리 딸의 얼굴이 왠지 해쓱해진 것 같아 마음이 짠해 왔다.
낯선 길과 미숙한 운전으로 불안해할 엄마, 아빠를 픽업하기 위해서 휴일에도 오가며 길을 익혔다고 했다.
처음 하는 밤 길 운전이 은근히 걱정이 된다. 초보 표시인 P자를 자동차 앞과 뒤에 커다랗게 붙이고 침착하게 운전하는 모습에 불안한 마음을 감춰 본다.
밝고 휘황찬란한 우리와는 달리 로마 시내의 밤거리는 마치 도심 외곽길처럼 어둡고 조용했다. 중앙선만 희미하게 보이는 도로를 달리는 무질서한 자동차가 신경 쓰였지만 문제없다는 듯이 미꾸라지처럼 빠지며 달린다.
드디어 도착한 집, 높고 묵직한 나무문을 열고 들어가니 정면에 쇠창살 문이 보였다. 영화에나 나오던 엘리베이터다. 트렁크를 태웠더니 한 사람이 겨우 탈 정도의 크기다. 짐이라도 옮길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쇠창살문과 안쪽 나무 문을 꽉 닫으니 덜커덩 소리와 함께 움직인다. 보기와는 달리 안전한 것 같아서 마음이 놓인다.
묵직한 열쇠로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니 높은 아파트 층고에 키가 갑자기 반으로 작아진 것 같다. 높은 집은 휑하기보다는 황색 전구 때문인지 아늑하고 시원해 보였다. 창문은 나무 블라인드로 모두 가려져 있었다. 창문을 살짝 열어 보았다. 골목 양 옆에 주차된 차량과 레스토랑 야외 테이블을 꽉 채운 사람들. 분명 주택가인데 어찌 된 일인지 시내보다 더 밝고 사람이 많다. 함께하고 싶은지 간간이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 테이블에 빙 둘러앉아 웃으며 알아듣지 못하는 말로 떠드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보니 로마라는 것이 실감이 간다.
이제 로마에서의 일상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