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살아가는 날들에 대하여
한동안 나는 나를 쓰지 않았다.
아니, 쓸 수 없었다는 말이 더 정확할 것이다.
생의 어느 날, 나는 예고 없이 멈추었다.
그날 이후로 나의 왼쪽은 느리게 반응했고, 평범한 일상은 손에 잡히지 않았다.
걸음은 멈췄고, 감각은 흐릿해졌으며, 이전의 ‘나’는 희미한 과거형으로만 존재했다.
처음엔 믿지 않았다.
곧 나아질 거라고, 이건 잠시 쉬어가는 시간일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하지만 시간은 아무 일도 없었던 듯 흘러가지 않았고,
나는 병원이라는 작은 세계 안에 갇혀
‘회복’이라는 말을 머리로만 떠올리는 나날을 보냈다.
사람들은 말한다.
사고 이후의 삶이 또 다른 시작일 수 있다고.
하지만 현실은, 그 시작을 ‘받아들인다’는 것조차 하나의 싸움이었다.
혼자서 화장실을 가는 일이,
물 한 잔을 따르는 일이,
그리고 다시 펜을 잡는 일이
얼마나 거대한 용기와 인내를 요구하는지
겪지 않고는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아주 조금씩, 쓰기 시작했다.
의미 있는 시도는 아니었다.
그저 병실의 침묵 속에서, 창밖의 빛을 바라보다가
문득 떠오른 단어들을 손바닥에 남기듯 써두었을 뿐이다.
그 조각들은 문장이 되지 못했고, 때로는 기억조차 흐릿했다.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나는 아직 무언가를 남길 수 있다’는 미약한 확신이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글쓰기는
어느새 나의 감각을 다시 깨우고, 나를 일으켜 세우는 힘이 되었다.
왼손이 아닌 오른손으로,
빠르게 가 아닌 천천히,
말이 아닌 침묵으로
나는 다시 나를 표현하기 시작했다.
이 시집은,
그 시간들 속에서 조용히 적어 내린 단어들을 다시 꺼내어
하나씩 다듬고, 확장한 기록이다.
처음에는 누구에게 보여줄 생각도 없었다.
그저 나 자신에게,
그 시간들을 잊지 말자고,
그 절망 속에서도 내가 살아 있었다는 것을 남기고 싶었을 뿐이다.
하지만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 타인과 이어지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내가 적은 이 조각들이
어딘가에서 조용히 견디고 있는 누군가의 하루와 닿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시는 충분하다고 믿게 되었다.
나는 아직 회복 중이다.
육체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그러나 이제는, 회복이라는 말이
이전으로 되돌아가는 일이 아니라
지금 있는 자리에서 살아가는 일임을 알게 되었다.
이 시집은 바로 그런 ‘지금’의 기록이다.
멈춘 이후의 시간,
다시 살아가기 시작한 날들,
그리고 그 시간 속에서 발견한 조용한 아름다움에 대하여.
나는 더 이상 완벽을 추구하지 않는다.
그 대신, 진실하게 느끼고, 조용히 바라보고, 담담히 써 내려가고 싶다.
이 시집을 가장 먼저 건네고 싶은 사람은,
아직 말하지 못한 아픔을 품고 조용히 견디는 사람이다.
자신이 너무 느리다고 자책하는 사람,
더 이상 쓸 수 없을 것 같았던 사람,
그리고 다시 시작할 용기를 품고 싶은 사람에게
이 시집이 조용한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
어느 날처럼 쓰러지더라도,
우리는 또다시 살아갈 수 있다.
한 손으로 적어 내려간 이 시들이
당신의 손에도 닿기를,
그리고 당신 안의 이야기도 언젠가 시가 되어 피어나기를.
나는 지금도, 오른손 하나로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계속 쓰고 있다.
2025년 봄,
김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