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은 내일도 오늘과 같으리라는 믿음 하나로 하루를 계획하고, 자신이 쌓아 올린 일상의 담벼락이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며 산다.
그러나 삶은 인간의 계획대로 고분고분하게 흘러간 적이 없다.
가장 편안하다고 믿었던 거실 소파 위에서, 혹은 새로운 희망을 품고 맞이한 새해 첫날부터, 시련은 예고도 없이 대문을 거칠게 부수고 들어온다. 그것은 불청객처럼 찾아와 우리 삶의 한복판에 털썩 주저앉는다.
시련이 찾아와 내 삶을 헤집어 놓으면 인간은 본능적으로 ‘왜 하필 나인가’라는 질문에 빠져든다. 억울함은 독처럼 퍼져나가 눈앞의 현실을 뒤틀어버리고, 어제까지 당연하게 누리던 맑은 공기와 따스한 햇살까지도 나를 괴롭히는 것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그러나 냉정하게 고개를 들어 세상을 보라.
시련의 그림자가 비껴간 자리는 단 한 곳도 없다. 화려해 보이는 겉모습 뒤에는 저마다의 시련이 끓어오르고 있으며, 누구나 감당하기 버거운 바위 하나쯤은 가슴속에 품고 산다.
처한 상황과 여건이 다를 뿐, 고통의 총량은 세상 모든 존재에게 공평하게 나누어져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비로소 ‘나만 불행하다’는 착각에서 벗어날 수 있다.
피할 수 없는 거친 비바람을 마주하는 첫 번째 지혜는 그것을 없애야 할 적이 아니라, 언젠가는 지나가야 할 계절로 인정하는 태도다.
겨울이 왔다고 해서 봄이 영영 사라진 것이 아니듯, 지금의 혹독한 추위 또한 삶의 커다란 흐름 속에 포함된 과정임을 받아들여야 한다.
밀어내려고 버틸수록 상처는 더 깊어지지만,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순간 비로소 어둠 속에서 빠져나갈 작은 틈이 보이기 시작한다.
내 앞에 닥친 상황을 있는 그대로 똑바로 바라보는 힘, 거기서부터 진짜 ‘통과’가 시작된다.
시련이 닥치면 삶의 반경은 급격히 좁아진다. 어제까지 거침없이 누비던 광활한 세상은 간데없고, 당장 내 몸 하나 누일 공간조차 무겁게 느껴진다.
환경이 무너지고 여건이 뒤틀리면 인간의 시야는 자연스럽게 발밑으로 떨어진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시련은 바로 그 낮은 곳에서 시작된다.
앞만 보고 질주할 때는 절대 보이지 않던 내 발바닥의 굳은살과 신발 밑창의 해진 구멍들이 그제야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것은 내가 지금까지 얼마나 무리하게 스스로를 몰아붙였는지, 무엇을 놓치며 달려왔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흔적들이다.
많은 이들이 고통의 터널을 지날 때 너무 서두르는 실수를 저지른다.
빨리 이 어둠을 벗어나고 싶어 무작정 뛰다 보면, 정작 터널 끝에서 마주할 빛을 제대로 보지 못할 수도 있다.
지혜로운 뱃사공은 폭풍우가 몰아칠 때 억지로 배를 몰지 않는다.
대신 배 밑바닥에 고인 물을 퍼내고, 헐거워진 밧줄을 다시 조이며 안을 다진다.
시련의 시간은 우리를 멈춰 서게 만들지만, 사실 그 멈춤은 그동안 돌보지 못했던 내 마음의 상처를 고치고, 삶의 진짜 알맹이를 챙길 수 있는 유일한 기회가 된다.
현실적인 고통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가짜’와 ‘진짜’를 구별하게 된다.
잘 나갈 때 곁을 지키던 화려한 수식어들은 시련의 바람 앞에 힘없이 날아가 버린다.
남은 것은 오직 벌거벗은 나 자신과, 이 척박한 환경에서도 여전히 곁을 지키는 소수의 진심뿐이다.
시련은 삶의 불순물을 걸러내는 가장 혹독한 필터다.
다 타버리고 남은 재 속에서 비로소 타지 않는 진실을 발견하는 순간, 우리는 이전보다 훨씬 단단한 인간으로 거듭난다.
결국 이겨내는 힘은 거창한 다짐이 아니라 아주 사소한 일상을 다시 시작하는 데서 나온다.
무너진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흐트러진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정해진 시간에 맑은 물 한 잔을 마시는 것과 같은 작은 규칙을 다시 세우는 것이다.
거대한 파도에 맞서려고 온몸에 힘을 주기보다는, 물 위로 코끝을 내밀고 차분하게 숨을 쉬는 데 집중해야 한다.
이러한 작은 성공들이 쌓여 단단한 근육이 되고,
그 근육은 어떤 풍파에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 삶의 버팀목이 되어준다.
오늘 하루를 무사히 넘기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비루한 생존처럼 보일지 모르나, 시련의 한복판을 걷는 이에게는 그것이 곧 숭고한 승리다.
밥 한 술을 넘기기 위해 목구멍을 옥죄는 슬픔을 참아내고, 무거운 몸을 이끌고 다시 신발 끈을 묶는 행위 하나하나가 시련을 통과하는 위대한 발걸음이다.
거창한 극복을 꿈꾸지 마라.
그저 지금 딛고 서 있는 그 한 뼘의 땅을 지켜내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충분히 잘하고 있다.
시련은 우리를 멈춰 세우지만, 결코 영원히 가둘 수는 없다.
바닥을 치고 나서야 비로소 뛰어오를 탄력을 얻듯, 지금 당신의 시선이 바닥에 머물고 있는 것은 다음 도약을 위해 땅의 기운을 모으는 중이기 때문이다. 세상이 당신을 잊은 것 같아 서글퍼질 때, 당신의 발밑을 가만히 내려다보라.
거기엔 여전히 당신을 지탱하고 있는 단단한 대지가 있고, 비바람 속에서도 꺾이지 않은 당신의 의지가 촛불처럼 타고 있다.
시련은 우리를 망가뜨리러 온 도둑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안에 숨겨진 진짜 보석을 깎아내기 위해 찾아온 조각가와 같다.
깎여 나가는 아픔은 살을 에는 듯 날카롭지만, 그 과정이 끝나면 쓸데없는 욕심과 허세는 사라지고 오직 나라는 사람의 진실한 모습만이 남는다. 고난의 한복판을 걸어본 사람은 남의 아픔에 함부로 조언하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옆을 지켜주는 침묵의 무게가 얼마나 큰지 알기 때문이다.
그 깊어진 눈빛과 단단해진 마음이야말로 삶이 시련이라는 비싼 값을 치르고 우리에게 건네는 가장 값진 선물이다.
시련 없는 인생은 향기 없는 꽃과 같다.
비바람에 꺾이고 멍들면서도 끝내 꽃을 피워낸 생명만이 땅을 적시는 진한 향기를 내뿜을 수 있다. 흉터 없는 인생은 이야기가 없는 책과 같다.
당신의 삶에 새겨진 이 깊은 시련의 흔적들은 훗날 당신이라는 존재를 증명하는 가장 강력한 문장이 될 것이다.
지금 당신의 발등 위에 떨어진 뜨거운 불덩이가 당장은 살을 파고드는 아픔일지라도, 훗날 그것은 당신의 길을 밝히는 등불이 될 것이다.
오늘 하루, 그저 버텨낼 , 버텨낸 당신의 투박한 손마디에 깊은 존경을 보낸다.
당신은 지금 인생에서 가장 어둡지만, 동시에 가장 진실한 구간을 통과하고 있다.
시련 없는 인생은 없다.
그러나 그것을 잘 통과해내지 못할 인생 또한 없다.
당신이 그것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묵묵히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내딛는 한, 시련은 결국 당신을 더 높은 곳으로 밀어 올리는 파도가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