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의 도시, 기억의 구조

『보이지 않는 도시들』과『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를 통해 본 공간의 사유

by 안녕 콩코드



Ⅰ. 서론: 도시는 누구의 얼굴을 하고 있는가

우리는 도시에서 태어나고, 걷고, 일하고, 사랑하고, 잊힌다. 그러는 사이, 도시라는 공간은 단지 건축물이나 도로의 집합이 아니라, 삶을 조직하고 의미를 생성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하지만 도시는 늘 눈에 보이는 방식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도시를 구성하는 가장 본질적인 요소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감각, 기억, 시간, 이야기이다. 도시란 인간의 내면이 외화된 장면이자, 동시에 인간의 정체성을 구조화하는 외부 조건이다. 이 글은 이탈로 칼비노의 『보이지 않는 도시들』과 유현준의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를 나란히 놓고, 도시와 인간의 상호 구조적 관계를 탐색한다. 전자는 문학적 상상력으로, 후자는 현실적 분석으로 도시를 사유하지만, 그 근저에는 공통된 질문이 흐른다: 도시는 인간에게 무엇인가? 인간은 도시를 어떻게 살아내며, 도시는 인간을 어떻게 '짓는가'?


Ⅱ. 『보이지 않는 도시들』: 존재하지 않는 도시가 말하는 것들


이탈로 칼비노의 『보이지 않는 도시들』은 여행자 마르코 폴로가 대제 쿠빌라이 칸에게 들려주는 수십 개의 도시 이야기로 구성된 일종의 우화이자 메타픽션이다. 칼비노가 묘사하는 도시들은 실제 지리적 공간이 아니라, 인간의 감정, 기억, 욕망, 두려움이 구조화된 상징적 공간들이다. 도시 '조베'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기억의 도시이고, '이사우라'는 우물 위에 세워진 도시로, 생존 본능과 정신적 욕망이 중첩된 구조를 드러낸다. 이런 도시들은 모두 인간의 내면 상태를 외부화한 형상들이다. 그 도시는 존재하지 않지만, 인간이 느끼는 감정과 사고는 분명히 존재한다. 칼비노는 도시를 통해 인간 존재의 파편화, 정체성의 불안, 그리고 관계의 흔들림을 드러낸다.


도시란 무엇인가? 칼비노의 대답은 명확하다. 도시는 물리적 실체보다 더 깊이, 인간의 경험과 기억의 형식으로 존재한다. 도시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를 묻는 칸에게 마르코 폴로는 거리나 성곽이 아니라, 그 속을 걷는 사람들의 발걸음, 그들이 하는 말, 그들이 잊는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대답한다. 즉, 도시는 인간의 행위와 감각, 그리고 결여로 이루어진다. 이런 맥락에서 『보이지 않는 도시들』은 일종의 감각 지도이자, 인간 존재에 대한 존재론적 은유로 읽힌다.


Ⅲ.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도시가 인간을 어떻게 '짓는가'


반면 유현준의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는 도시 공간의 물리적, 기술적 구조가 인간의 삶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건축적·사회적 시각에서 분석한다. 유현준은 도시가 단지 건물의 집합이 아니라, 정치·경제·기술의 논리가 응축된 결과물이며, 이 구조가 인간의 감정과 사회적 관계를 규정한다고 본다. 예컨대, 골목이 사라진 도시는 아이들의 놀이 공간을 없애고, 이로 인해 아이들의 사회적 경험이 제한된다. 아파트 단지는 개인을 분리된 섬처럼 고립시키고, 건물의 입지와 교통망은 인간의 일상적 동선을 결정짓는다. 이는 인간이 도시를 만들었지만, 역으로 도시가 인간의 삶의 방식을 결정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특히 유현준은 도시 구조가 인간의 ‘감각 구조’를 어떻게 조형하는지를 강조한다. 예컨대, 창이 나 있는 방향, 복도의 길이, 층수는 단지 기능이 아니라, 인간의 시선, 관계, 심리 상태에 영향을 미치는 설계이다. 이러한 물리적 조건은 인간의 감정과 사회적 태도마저 형성한다. 그는 도시를 '읽는' 능력, 즉 공간 감각이 부족할수록 우리는 더 쉽게 자본과 권력에 의해 설계된 삶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게 된다고 지적한다.



Ⅳ. 존재와 공간: 칼비노와 유현준의 교차점


칼비노와 유현준은 각기 다른 길에서 출발하지만, 도시에 대한 그들의 사유는 여러 지점에서 교차한다. 첫째, 두 사람 모두 도시는 '구조'이자 '언어'라고 본다. 칼비노에게 도시란 인간의 내면이 투영된 상징적 언어이고, 유현준에게 도시는 권력과 기술이 배치된 설계 언어다. 둘째, 도시를 구성하는 본질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다. 칼비노는 기억, 욕망, 상실, 꿈을 이야기하고, 유현준은 동선, 시선, 불편, 공기의 흐름 같은 비가시적 요소들을 통해 도시를 읽는다. 셋째, 인간은 도시 속에서 단순한 '이용자'가 아니라, 도시의 구조에 의해 감각되고 구성되는 존재라는 점이다.


칼비노가 창조한 도시들은 비현실적이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더 현실적이다. 왜냐하면 인간이 도시에서 겪는 실존적 감정—고독, 불안, 망각, 반복—이 오히려 더 날것의 언어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유현준이 지적한 도시의 설계적 조건들—동선, 밀도, 창문의 방향—역시 인간의 내면 구조와 직결된다. 두 사람 모두 도시를 '보는' 것이 아니라 '사는' 감각을 회복하라고 말한다.


Ⅴ. 도시와 권력: 설계된 질서의 감각 구조


도시는 중립적이지 않다. 칼비노의 도시 '모리스'는 감시와 통제의 상징이다. 그곳에서는 모든 움직임이 기록되고, 시민들은 누가 감시하는지도 모른 채 삶을 살아간다. 이는 미셸 푸코가 말한 파놉티콘의 도시적 재현이자, 정보화 시대를 앞서 그린 은유다. 유현준 또한 현대 도시의 건축과 인프라가 특정한 계층에게는 편리하지만, 다른 계층에게는 배제적 구조가 될 수 있음을 지적한다. 서울의 강남과 강북, 도심과 외곽은 물리적 거리 이상으로 사회적 격차를 드러낸다. 도시 설계는 결국 권력의 배치이며, 이를 읽지 못하는 인간은 도시 속에서 익명화되고 소외된다.


칼비노는 도시의 비가시적 감옥을 말했고, 유현준은 그것을 설계의 언어로 분석했다. 두 시선은 도시를 비판적으로 사유할 수 있게 하며, 우리가 단순히 도시를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그 구조를 ‘살아내는’ 존재임을 자각하게 한다.


Ⅵ. 결론: 감각의 도시에서, 인간을 다시 보다


『보이지 않는 도시들』과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도시를 탐색하지만, 둘 다 인간과 도시가 서로를 어떻게 형성하는지를 말하고 있다. 칼비노는 인간의 감정과 기억이 투영된 상징의 도시를 통해 인간 내면을 사유하게 만들고, 유현준은 도시 설계라는 물리적 언어를 통해 인간 감각과 사회 구조의 조형을 분석한다. 문학과 건축이라는 경계를 넘어, 이 두 저작은 도시라는 총체적 삶의 양식을 비판적으로 읽어낼 수 있는 통로를 제공한다.


『감각의 도시, 기억의 구조』라는 이 글의 제목처럼, 도시는 인간의 삶을 단지 담는 그릇이 아니라, 감각을 훈련하고 기억을 조직하며, 인간 존재를 만들어내는 구조다. 도시를 사유한다는 것은 결국 자신을 성찰하는 일이며, 공간을 새롭게 읽는 일은, 곧 인간 존재를 새롭게 묻는 일이다. 보이지 않는 도시를 이해하는 일은, 보이지 않던 나 자신을 발견하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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