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공공재화와 정치적 동력
현대 사회에서 '불쾌감'은 단순한 개인적인 감정을 넘어, 강력한 정치적 동력이자 공공재처럼 소비됩니다. 소셜 미디어를 통해 불쾌감은 즉각적으로 확산되고, 그 확산력 자체가 곧 권력이 되는 현상이 발생합니다.
즉각적인 결집: 누군가의 발언이나 행동에 대한 불쾌감은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사람들을 가장 빠르고 강력하게 결집시킵니다. 이 불쾌감의 공유는 거대한 디지털 연대를 형성하며, 집단의 분노는 특정 개인이나 정책을 순식간에 심판하고 철회하게 만드는 압도적인 힘을 갖습니다.
'감정 포식자'의 등장: 정치인이나 미디어는 대중의 불쾌감을 자극하고 증폭시켜 자신들의 의제를 관철시키는 '감정 포식자' 역할을 합니다. 분노, 혐오 같은 부정적인 감정은 긍정적인 감정보다 훨씬 강렬한 파급력을 가지므로, 이를 활용하여 손쉽게 대중의 관심(Attention)을 확보하고 정치적 이득을 취합니다.
숙고 없는 분노: 맥락의 거세
'불쾌의 정치'가 가진 가장 큰 문제점은 숙고와 맥락적 이해를 생략한다는 점입니다. 불쾌감은 지극히 주관적이고 즉각적인 감정이므로, 이 감정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판단은 논리나 객관적 사실보다는 감정적 동의를 우선시합니다.
선(善)의 독점과 양극화: 불쾌감을 느끼고 분노하는 집단은 스스로를 '윤리적 우위에 있는 선한 세력'으로 규정하기 쉽습니다. 자신들의 감정을 정당한 분노로 포장하며,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악하거나 덜 깨어 있는 존재'로 단정하고 비난합니다. 이는 곧 사회의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주된 원인이 됩니다.
맥락의 거세: 불쾌감을 유발하는 특정 발언이나 사건은 전체 맥락에서 분리되어, 오직 가장 자극적인 부분만 확대 재생산됩니다. 사람들은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깊이 이해하려 하기보다, '이것이 나를 불쾌하게 했는지' 여부만을 기준으로 삼아 빠르게 재판하고 단죄합니다.
감정이 정책을 이끌 때: 비합리성의 위험
감정, 특히 불쾌감이 권력이 될 때, 사회 시스템과 정책 결정은 비합리적인 방향으로 흐를 위험이 커집니다.
즉각적인 처방 강요: 불쾌감은 즉각적인 해소를 요구합니다. 이로 인해 정책 결정 과정에서 장기적인 숙고, 비용-효과 분석, 다각적인 이해관계 조정 등 합리적 절차가 생략되기 쉽습니다. 대신 당장의 여론을 잠재울 수 있는 징벌적이거나 전시적인 정책이 성급하게 추진되어 사회적 비용을 키웁니다.
효율성 상실: 복잡한 사회 문제는 단 하나의 감정이나 분노로 해결될 수 없습니다. 감정의 과잉은 문제 해결의 본질적인 노력 대신, 상대를 비난하고 처벌하는 데 집중하게 만듭니다. 결국 막대한 사회적 에너지가 소모되지만, 근본적인 구조는 변화되지 않은 채 감정적 소진만 남게 됩니다.
'불쾌의 정치' 시대에 건강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는, 우리의 감정을 정치적 무기로 사용하기 전에 '이 감정이 과연 공감과 이성적 숙고를 거친 것인가'를 끊임없이 질문하는 윤리적 성찰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감정의 파도를 타기보다, 이성의 닻을 내리고 맥락을 파악하려는 노력을 멈춰서는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