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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슬블로어의 목소리: '나'를 찾아가는 용기의 여정

by 콩코드

​"여기 실린 이야기는 내가 더 어렸을 때 누군가가 내게 해주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너무 두려웠지만 그래도 스스로의 손으로 운명을 지어나가고자 하면서 불의에 맞서 목소리를 낸 젊은 여성의 이야기 말이다."

........ 《휘슬블로어》, 수전 파울러


​익명의 '휘슬블로어(Whistleblower)'였던 작가가 자신의 책 서문에 남긴 이 문장은 단순한 소개를 넘어, 고독한 투쟁을 이겨낸 자의 깊은 회한과 간절한 소망을 담고 있습니다. 이 글은 정작 피해자인 자신을 둘러싼 '온통 장막으로 가려진 혼돈의 시간'을 헤쳐 나온 뒤의 심경, 즉 '나'를 찾아가는 용기의 여정을 압축적으로 보여줍니다.


혼돈 속의 고립: 가려진 장막과 싸움

​휘슬블로어의 행위는 본질적으로 거대한 시스템이나 강력한 집단의 불의에 맞서는 지극히 외로운 투쟁입니다. 그녀가 겪었을 '혼돈의 시간'은 아마도 진실을 말하는 순간 닥쳐오는 주변의 침묵, 의심, 그리고 때로는 비난이었을 것입니다.


1. ​피해자의 역설

진실을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주변은 진실 대신 자신들의 기득권이나 안위를 지키기 위해 장막을 칩니다. 이 장막은 때로는 거짓된 소문, 조직적인 은폐, 또는 '조용히 덮으라'는 압력의 형태를 띨 것입니다.


2. ​고립된 '나'

이 혼돈 속에서 피해자인 '나'는 정작 가장 투명해야 할 세상으로부터 가장 불투명한 장막에 갇힙니다. 자신을 지키려 했던 목소리가 오히려 자신을 고립시키는 아이러니에 직면하게 되는 것입니다.



운명을 지어나가는 용기: 스스로의 손

​하지만 작가는 이 혼돈의 순간을 "스스로의 손으로 운명을 지어나가고자" 한 시간으로 정의합니다. 이는 단순한 폭로를 넘어선, 주체적인 삶의 선언입니다. 불의에 맞서 목소리를 내는 행위는 단순히 사실을 알리는 것을 넘어, 세상이 자신에게 부여한 '피해자'라는 수동적인 역할을 거부하고 '행위자(Agent)'로서 자신의 운명을 다시 쓰는 것을 의미합니다.


1. ​두려움과의 대면

작가는 자신의 행위가 "너무 두려웠지만" 시작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진정한 용기는 두려움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옳은 것을 위해 발을 내딛는 의지에서 나옵니다. 이 여성은 두려움을 연료 삼아 운명의 수레바퀴를 스스로 굴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2. ​새로운 서사의 창조

그녀가 쓴 이야기는 과거의 고통을 증언하는 것을 넘어, 미래의 누군가를 위한 가이드라인이 됩니다. "내가 더 어렸을 때 누군가가 내게 해주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소망은, 그녀의 경험이 이제 막 혼돈 속에 발을 디딜 젊은이들에게 어둠을 밝히는 등대가 되기를 바라는 깊은 공감에서 비롯됩니다.


치유와 연대의 희망: 서문의 메시지

​이 서문은 결국 치유와 연대의 메시지입니다. 작가는 자신의 고독했던 여정을 공개함으로써, 비슷한 고통을 겪거나 앞으로 겪을 이들에게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라는 힘을 실어줍니다.


​그녀의 이야기는 단지 불의를 고발하는 기록이 아닙니다. 그것은 '불의에 맞서 목소리를 낸 젊은 여성'의 초상이며, 자신의 진실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모든 것을 감수한 한 인간의 숭고한 용기에 대한 증언입니다. 그녀는 스스로를 감싸고 있던 장막을 찢고, 마침내 자신의 목소리가 세상을 밝힐 빛이 되도록 자신의 운명을 완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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