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을 이긴 생존의 뿌리: 감자와 옥수수

by 안녕 콩코드

​안데스의 독초에서 기적의 빵으로

​상상해 보세요. 16세기, 황금에 미친 스페인 정복자들이 안데스 산맥의 깎아지른 절벽을 오릅니다. 숨은 턱 끝까지 차오르고, 눈앞에는 번쩍이는 금괴 대신 진흙투성이의 못생긴 '뿌리 덩어리'가 굴러다닙니다. "이게 뭐야? 돼지나 먹는 거 아냐?"라며 발로 툭 찼을 그 덩어리. 하지만 여러분, 그들이 발로 걷어찬 건 단순한 작물이 아니라, 미래의 인류를 굶주림에서 구원할 '지구의 심장'이었습니다!


​죽음의 독을 생명의 정수로 바꾼 잉카의 마법

​여러분, 감자의 첫인상은 사실 '살인마'였다는 걸 아시나요? 야생의 감자는 자신을 먹으려는 동물들에게 '솔라닌'이라는 치명적인 독을 발사하는 무시무시한 녀석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독초를 누가, 어떻게 우리의 식탁으로 가져왔을까요? 바로 잉카인들의 미친 천재성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느린 요리, 추뇨(Chuño): 잉카인들은 밤에는 영하의 추위에 감자를 얼리고, 낮에는 뜨거운 태양 아래 말렸습니다. 그리고는 맨발로 꾹꾹 밟아 독기 섞인 즙을 짜냈죠. 이 과정을 반복하면? 돌덩이처럼 딱딱하지만 10년이 지나도 썩지 않는 '인류 최초의 전투 식량'이 탄생합니다.

​절벽 위에서 핀 꽃: 밀과 보리가 "추워서 못 살겠어!"라며 포기한 해발 4,000m의 고산지대. 감자는 그곳에서 "나만 믿어!"라며 꿋꿋이 자라났습니다. 잉카 제국이 그 험준한 산맥 위에서 대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던 비결? 황금이 아니라 바로 이 든든한 감자 형님 덕분이었습니다.


"저건 악마의 열매야!" 유럽의 황당한 결벽증

​하지만 대서양을 건너 유럽에 도착한 감자를 기다린 건 환영 인사가 아니라 차가운 멸시와 공포였습니다. 당시 유럽인들의 반응은 거의 '혐오'에 가까웠습니다.

​"성경에 감자 본 사람?" 유럽인들은 성경에 나오지 않는 식물은 일단 의심하고 봤습니다. 게다가 땅속에서 흉측하게 뒤틀린 채 나오는 모습이라니! 사람들은 속삭였습니다. "저걸 먹으면 나병(한센병)에 걸린대", "악마가 밤에 심고 간 열매야!"

​꽃은 예쁜데 뿌리는 좀... 프랑스의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조차 감자 꽃을 머리에 장식하며 "어머, 너무 우아해!"라고 감탄했지만, 정작 그 밑에 달린 뿌리를 먹으라고 하면 기겁하며 도망쳤습니다. 감자는 그저 '돼지 사료' 혹은 '관상용 꽃'일 뿐이었죠.


세상을 속인 세기의 '감자 쇼비즈니스'

​이 답답한 편견을 깬 건 배고픔, 그리고 한 남자의 기막힌 '심리전'이었습니다. 프랑스의 약제사 파르망티에는 깨달았습니다. "사람들은 금지된 것에 환장한다!"


​그는 왕에게 건의해 감자밭을 군대로 지키게 했습니다. 낮에는 삼엄하게 총을 들고 감시했죠. 농민들은 눈을 번쩍였습니다. "세상에, 군대가 지킬 정도면 얼마나 대단한 보물인 거야?" 밤이 되자 파르망티에는 일부러 경비병들을 퇴근시켰습니다. 결과는? 예상대로였습니다! 농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밭으로 뛰어들어 이 '보물'을 훔쳐 제 집 마당에 심기 시작했습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바이럴 마케팅'이었던 셈이죠!


​결국 감자는 전쟁으로 밀밭이 불타고 기근이 덮칠 때마다 유럽인들의 생명줄이 되었습니다. 땅 밑에 숨어 있어 군화발에도 짓밟히지 않았던 이 든든한 뿌리. 감자가 없었다면 과연 인구가 폭발하고 산업 혁명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요? 아마 불가능했을 겁니다.


​자, 안데스의 독초가 유럽의 구원자가 된 극적인 드라마, 어떠셨나요? 하지만 신대륙의 선물은 감자뿐만이 아닙니다. 다음 장에서는 황금빛 낱알로 전 세계의 식탁과 에너지를 장악한 '태양의 자식', 옥수수의 거대한 물결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태양의 아들, 황금의 낱알: 옥수수

​감자가 땅속에 숨겨진 보물이었다면, 이번에는 하늘을 향해 뻗어 나가는 ‘황금빛 물결’에 올라탈 시간입니다! 여러분, 영화관에서 팝콘 한 입 베어 물 때 생각해보셨나요? 이 작은 알갱이 하나에 고대 문명의 신화와 현대 지구의 운명이 통째로 담겨 있다는 사실을요!


​“인간은 옥수수로 빚어졌다!” – 마야와 아즈텍의 창조 신화

​자,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고대 중남미로 가봅시다. 마야인들에게 옥수수는 그냥 음식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성전인 『포폴 부(Popol Vuh)』를 보면 소름 돋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신들이 진흙과 나무로 인간을 만들려다 실패한 뒤, 마지막에 ‘옥수수 반죽’으로 인간을 빚었더니 비로소 영혼이 깃들었다는 겁니다!

​진화의 미스터리, 테오신테: 사실 옥수수의 조상은 ‘테오신테’라는 볼품없는 잡초였습니다. 알갱이도 몇 개 없고 딱딱해서 도저히 먹을 수 없었죠. 그런데 고대 원주민들은 수천 년 동안 이 잡초를 개량해서 오늘날의 거대한 옥수수를 만들어냈습니다. 이건 단순한 농사가 아니라, 인류사상 가장 위대한 ‘유전공학의 기적’이었습니다!

​태양을 저장하는 배터리: 옥수수는 식물계의 ‘에너지 괴물’입니다. 햇빛을 받아 영양분으로 바꾸는 효율이 다른 작물보다 압도적으로 높죠. 옥수수 덕분에 마야와 아즈텍은 거대한 피라미드를 세울 수 있는 폭발적인 인구와 노동력을 얻었습니다. 말 그대로 태양 에너지를 낱알에 꽉꽉 눌러 담은 ‘황금 배터리’였던 셈입니다.


​콜럼버스의 가방에서 터져 나온 ‘노란 혁명’

​콜럼버스가 이 옥수수를 들고 유럽으로 돌아왔을 때, 세상은 뒤집어졌습니다. 밀이나 쌀과는 비교도 안 되는 엄청난 적응력 때문이었죠.

​“심기만 하면 자란다!”: 옥수수는 편식하지 않았습니다. 더운 곳, 추운 곳, 습한 곳 어디서든 머리를 내밀었습니다. 덕분에 유럽을 넘어 아프리카, 아시아까지 순식간에 퍼져나갔죠. 특히 중국 청나라 때는 산비탈까지 옥수수를 심으면서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짐승과 인간을 모두 먹이는 괴력: 옥수수는 버릴 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알갱이는 사람이 먹고, 줄기와 잎은 가축의 훌륭한 사료가 되었죠. 오늘날 우리가 먹는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가 사실은 ‘옥수수가 변신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유입니다.


​하지만, 공짜 점심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이 풍요로운 황금 낱알 뒤에는 무시무시한 그림자가 숨어 있었습니다. 유럽의 농민들이 옥수수만 편식하기 시작하자 기괴한 질병이 창궐하기 시작한 겁니다.

​펠라그라(Pellagra)의 저주: 온몸에 붉은 반점이 생기고 정신이 이상해지는 병이 돌았습니다. 사람들은 “신이 내린 형벌인가?”라며 공포에 떨었죠. 알고 보니 원인은 옥수수에 부족한 특정 영양소(비타민 B3) 때문이었습니다. 원래 중남미 원주민들은 석회수를 이용해 옥수수를 처리하며 이 문제를 해결했지만, 유럽인들은 겉모양만 따라 하다가 ‘풍요 속의 영양실조’라는 덫에 걸리고 만 것입니다.


​안데스의 감자와 멕시코의 옥수수. 신대륙에서 건너온 이 두 ‘슈퍼스타’는 인류를 기아의 공포에서 해방시켰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성공은 훗날 ‘아일랜드 대기근’이라는 인류사의 비극으로 이어지기도 하죠.


​다음 장에서는 이 축복이 어떻게 한순간에 저주로 변했는지, ‘단일 재배’가 불러온 처절한 역사적 대가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자, 역사의 롤러코스터는 이제 가장 아찔한 구간으로 진입합니다.



풍요가 불러온 비극: 단일 재배의 덫

​축배는 너무 일렀던 걸까요? 하늘이 내린 선물인 줄만 알았던 감자와 옥수수는, 인간의 '방심'과 '탐욕'이 더해지자 순식간에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우리 목을 겨누기 시작했습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풍요로웠던 시대에 찾아온 가장 처절한 굶주림, 그 비극의 현장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아일랜드의 눈물: 800만 명의 생명을 건 위험한 도박

​19세기 중반, 아일랜드는 전 국민이 감자에 목숨을 걸고 있었습니다. "땅이 좁아도 감자만 심으면 온 가족이 배불리 먹을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죠. 여러분, 그런데 혹시 '단일 재배'라는 말이 얼마나 무서운지 아시나요? 그건 마치 전 재산을 단 하나의 주식에 '몰빵'하는 것과 같은 위험천만한 도박이었습니다!

​운명의 1845년, 썩은 냄새가 온 섬을 뒤덮다: 어느 날 갑자기, 바람을 타고 정체불명의 곰팡이균이 상륙했습니다. 결과는? 상상 초월이었습니다! 유전자가 똑같았던 아일랜드의 감자들은 저항 한 번 못 해보고 하룻밤 사이에 시커먼 숯덩이처럼 썩어 문드러졌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싱싱했던 밭이 오늘 아침 '지옥의 입구'로 변해버린 겁니다.

​"먹을 게 있는데 굶어 죽는다고?": 이게 정말 기가 막힌 노릇입니다. 밭의 감자는 썩었지만, 옆 동네 밀밭과 목장의 소들은 멀쩡했거든요. 그런데 왜 사람들이 굶어 죽었냐고요? 당시 아일랜드를 지배하던 영국이 "자유 무역!"을 외치며 멀쩡한 곡물과 고기를 몽땅 영국 본토로 실어 날랐기 때문입니다. 먹을 것이 눈앞에서 배에 실려 떠나가는 것을 보며 굶어 죽어야 했던 잔혹한 역설이었습니다.

​눈물의 엑소더스: 결국 100만 명이 굶어 죽고, 또 다른 100만 명은 살기 위해 미국행 배에 몸을 실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아는 '케네디 대통령' 같은 아일랜드계 미국인들의 역사는 바로 이 썩은 감자 냄새 진동하던 비극에서 시작된 셈입니다.


​옥수수의 역습: 아프리카와 유럽을 덮친 '붉은 저주'

​옥수수 역시 공짜로 배를 채워주지 않았습니다. 신대륙에서 건너온 이 황금 알갱이는 전 세계 가난한 이들의 유일한 주식이 되었지만, 곧 기괴한 질병이 창궐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름하여 '펠라그라(Pellagra)'!

​좀비가 된 사람들?: 이 병에 걸리면 온몸에 붉은 반점이 생기고, 설사를 하다가 나중에는 정신이 이상해져 비참하게 죽어갔습니다. 사람들은 "신이 내린 형벌인가?"라며 공포에 떨었죠.

​원인은 뜻밖의 '오만함': 사실 멕시코 원주민들은 옥수수를 석회수에 담가 먹는 지혜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해야 옥수수 속의 비타민(나이아신)이 우리 몸에 흡수되거든요. 하지만 유럽인들은 "미개한 원주민의 요리법을 우리가 왜 따라 해?"라며 무시했습니다. 그 결과는? 자연의 지혜를 우습게 여긴 인간이 치른 '풍요 속의 영양실조'라는 혹독한 수업료였습니다.


​축복이 저주로 변하는 순간은 이처럼 한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거대한 시련은 인류에게 '다양성'의 중요성이라는 잊지 못할 교훈을 남겼습니다.


보이지 않는 뿌리가 지탱하는 현대 문명

​자, 여러분. 안데스의 독초에서 시작해 전 세계를 휩쓴 대기근의 절규까지, 감자와 옥수수의 드라마틱한 일대기 어떻게 보셨나요? 이 울퉁불퉁하고 노란 알갱이들은 단순한 식재료가 아니라, 현대 문명을 떠받치고 있는 '보이지 않는 거인'입니다.


​현대판 '단일 재배'의 덫은 사라졌을까?

​"아일랜드 대기근은 옛날이야기 아니야?"라고 생각하신다면 오산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마트에서 사는 감자와 옥수수는 과거보다 훨씬 더 소수의 '슈퍼 품종'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만약 내일 당장 이 품종들만 공격하는 새로운 바이러스가 나타난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하죠. 아일랜드의 비극은 우리에게 "다양성이 곧 생존이다"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종자 은행을 만들고 토종 품종을 보존하려는 이유는, 바로 제2의 대기근을 막기 위한 인류의 처절한 방어선인 셈입니다.


​당신의 몸은 '옥수수'로 이루어져 있다

​여러분, 놀라지 마세요. 현대인의 몸을 화학적으로 분석하면 '걸어 다니는 옥수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가 먹는 고기는 옥수수 사료를 먹고 자란 것이고,

​마시는 탄산음료에는 옥수수 시럽(액상과당)이 들어있으며,

​심지어 우리가 타는 자동차의 연료(바이오 에탄올)까지 옥수수에서 나옵니다.


​과거 잉카인들이 "인간은 옥수수로 빚어졌다"고 믿었던 신화가, 현대 과학의 힘으로 현실이 된 것이죠!


식탁 위의 위대한 유산

​감자는 유럽의 인구를 폭발시켜 산업 혁명을 가동했고, 옥수수는 전 지구적 에너지 공급원이 되어 현대 축산업을 완성했습니다. 비록 그 과정에서 대기근과 질병이라는 혹독한 대가를 치르기도 했지만, 이 두 작물은 인류라는 종이 멸망의 위기에서 벗어나 번영의 길로 들어서게 한 가장 위대한 조력자였습니다.


​오늘 저녁 식탁에 올라온 감자 한 알, 혹은 간식으로 먹는 옥수수를 보며 한 번쯤 말을 걸어보는 건 어떨까요? "너희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겠구나!" 하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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