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 갇힌 성(城)에는 출구가 없다
이제 우리는 세계 문학의 가장 기괴하고도 매혹적인 종착지, 현대인의 불안을 예언한 성자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를 만납니다. 박완서에서 시작해 이승우와 배수아를 거쳐, 쿤데라와 모리슨까지 당도했던 우리의 긴 여정이 왜 결국 이 '불안의 설계자' 앞에서 멈춰 서야 하는지, 그 마지막 장을 엽니다.
변신이 시작되는 새벽의 서재
프라하의 낡은 골목, 안개가 자욱한 새벽에 마주한 카프카의 서재는 예상보다 훨씬 비좁고 서늘했다. 그곳은 문학의 집이라기보다 감옥에 가까웠고, 집이라기보다 사무실에 가까웠다. 프란츠 카프카. 그는 낮에는 보험공사의 성실한 관리로 일하며 서류의 산에 파묻혔고, 밤에는 자신의 영혼을 갉아먹는 불안을 문장으로 옮긴 이중생활자였다.
와크텔이 그를 만났다면 '자신이 지은 미로 속에 스스로를 가둔 채 출구를 찾는 대신 벽의 질감을 기록하는 수인(囚人)'이라 적었을 것이다. 나는 그에게 배수아가 가졌던 '언어의 낯섦'과 이승우의 '근원적 죄의식'을 투영하며, 왜 인간은 어느 날 아침 갑자기 벌레로 변해야만 했는지 묻기 위해 입을 뗐다.
변신(The Metamorphosis): 쓸모없음이 불러온 실존적 재앙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어나 보니 거대한 벌레로 변해 있었다. 카프카는 이 기괴한 설정을 통해 인간의 가치가 '기능'과 '쓸모'에 의해 결정되는 자본주의적 비극을 선언한다.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거부의 몸짓으로 식물이 되었다면, 카프카의 인물은 타의에 의해 벌레가 된다.
질문: “작가님, 왜 하필 벌레입니까? 가족을 부양하던 성실한 청년이 단지 일을 나가지 못한다는 이유로 인간 이하의 존재가 되어 버리는 이 비정한 서사는 오늘날 우리에게 더 아프게 다가옵니다.”
카프카는 마른 손을 꼼지락거리며 시선을 바닥으로 떨구었다.
“벌레는 상징이 아닙니다. 그것은 '진실'입니다. 사회가 요구하는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는 순간, 인간은 즉시 타자화됩니다. 그레고르는 벌레로 변해서 불행해진 것이 아니라, 벌레로 변하고 나서야 자신이 도구로만 존재했음을 깨달은 것이죠. 가족의 눈에 비친 그는 사랑하는 아들이 아니라 '돈을 벌어오는 기계'였고, 기계가 고장 나자 폐기 처분된 것입니다. 현대인의 불안은 바로 여기서 시작됩니다. 내가 언제든 '벌레'가 될 수 있다는 그 공포 말입니다.”
성(The Castle): 닿을 수 없는 절대 권력의 미로
주인공 K는 성에 부름을 받고 도착하지만, 결코 성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관료주의의 벽은 높고, 명령은 모호하며, 길은 끝없이 이어진다. 이것은 이승우가 탐구했던 '신의 침묵'이 행정적인 악몽으로 변주된 형태다.
질문: “작가님의 작품 속 주인공들은 늘 거대한 체제나 성 안으로 들어가려 애쓰지만 끝내 실패합니다. 우리를 가로막는 그 보이지 않는 장벽의 정체는 무엇입니까?”
“그 장벽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무언가에 소속되기를 갈망하고 인정받기를 원하지만, 그 '성'은 애초에 우리를 받아들일 생각이 없습니다. 권력은 명확하지 않기에 강력합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법과 규칙들이 우리를 지배할 때, 인간은 영원한 이방인이 됩니다. 우리는 출구를 찾는 것이 아니라, 출구가 없다는 사실을 견디는 연습을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소송(The Trial): 이유 없는 죄, 재판받는 삶
요제프 K는 어느 날 갑자기 체포된다. 그는 자신이 무슨 죄를 지었는지 알지 못하지만, 재판은 계속된다. 이것은 실존주의 문학의 정수다. 인간은 태어났다는 사실만으로 이미 '유죄' 판결을 받은 수감자와 같다.
질문: “죄명을 알 수 없는 재판이라니, 이보다 더 절망적인 상황이 있을까요? 작가님에게 삶이란 끊임없이 결백을 증명해야 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인 것인가요?”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 세상이라는 법정에 세워집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 내가 선량한지 증명하려 애쓰죠. 하지만 판사는 보이지 않고 법전은 읽을 수 없습니다. 죄의 유무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심판받고 있다'는 느낌 그 자체입니다. 그 불안이 우리를 움직이게 하고, 동시에 우리를 파괴합니다. 저는 그 부조리한 재판의 과정을 기록함으로써 인간이라는 존재의 민낯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 거인에게 짓눌린 작은 영혼
카프카의 문학 밑바닥에는 실존 인물인 그의 아버지, 헤르만 카프카라는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압도적인 부성(父性) 앞에서 작아지기만 했던 아들의 공포는, 모든 권위와 권력에 대한 문학적 저항으로 승화된다.
질문: “작가님에게 아버지는 신이자 폭군이었고, 동시에 닮고 싶은 거울이었습니다. 그 개인적인 고통이 어떻게 이토록 보편적인 '권력에 대한 공포'로 확장될 수 있었나요?”
“아버지는 저에게 첫 번째 '성'이었고, 첫 번째 '법'이었습니다. 아버지의 눈길 한 번에 저는 죄인이 되기도 하고 의인이 되기도 했죠. 그 개인적인 억압을 관찰하다 보니, 세상의 모든 권력이 아버지의 얼굴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국가, 신, 도덕... 이 모든 거인 앞에서 우리는 작은 아이일 뿐입니다. 제 글쓰기는 그 거대한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한 유일한 발버둥이었습니다.”
미로의 끝에서 발견한 펜 한 자루
인터뷰를 마치고 성벽을 내려올 때, 프라하의 성은 여전히 높고 견고해 보였다. 하지만 내 손에는 카프카가 남긴 '불안의 기록'이 들려 있었다.
만약 배수아가 카프카를 만났다면, 두 사람은 아마 아무 말 없이 서로의 문장이 가진 '낯선 공포'를 공유하며 길을 잃었을 것이다. 토니 모리슨이 상처를 숭고함으로 씻어냈다면, 카프카는 그 상처를 그대로 방치한 채 그 진물이 만드는 무늬를 응시한다. 그는 우리에게 구원을 약속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미로 속에 있다는 사실을 일깨움으로써, 비로소 정직한 절망에 이르게 한다.
우리는 이제 박완서에서 카프카까지 이르는 장대한 영혼의 지도를 완성했다. 이 미로의 끝에서 우리는 다시 질문을 던진다. 이 모든 문장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