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 Class] 토니 모리슨, 사랑의 고고학

— 상처 입은 육체가 지피는 거룩한 불꽃

by 안녕 콩코드


마르케스의 그 찬란하고 소란스러운 환상의 축제가 끝난 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 열기를 식히면서도 동시에 인간의 가장 깊은 상처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거룩한 침묵'입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를 미국의 깊은 남부, 억압과 고통이 서린 그곳에서 피어난 가장 검은 숭고함으로 안내하려 합니다.
​네 번째 목적지는 토니 모리슨(Toni Morrison)입니다. 한강 작가가 가졌던 그 '신체적 통증'과 황정은의 '폐허'가 인종과 역사라는 거대한 강물과 만났을 때, 문학이 어떻게 한 민족의 영혼을 씻어내는 씻김굿이 되는지 목격하실 차례입니다.


노예의 낙인이 새겨진 성소(聖所)

​그녀의 서재는 도서관이라기보다 차라리 예배당에 가까웠다. 창으로 들어오는 빛은 먼지조차 경건하게 만들었고, 공기 중에는 오래된 성경책과 갓 구운 빵, 그리고 말린 꽃의 향기가 뒤섞여 있었다. 토니 모리슨. 그녀는 흑인 여성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라는 수식어보다, '언어로 인간의 찢긴 살점을 봉합하는 치유자'라는 이름이 더 어울리는 거장이었다.


​마르케스의 마술이 화려한 색채였다면, 모리슨의 마술은 어둠 속에서 빛나는 은밀한 뼛조각 같았다. 와크텔이 그녀를 만났다면 '역사가 삼켜버린 비명을 노래로 바꾸어 신에게 되돌려주는 사제'라고 기록했을 것이다. 나는 그녀에게 한강 작가가 천착했던 '신체의 고통'과 박완서 작가의 '역사적 부채감'을 넌지시 건네며, 왜 사랑이 때로는 죽음보다 잔인해야 했는지 묻기 위해 입을 열었다.


​빌러브드(Beloved): 죽음보다 깊은 모성, 그 공포스러운 사랑

그녀의 걸작 『빌러브드』에서 주인공 세스는 자식에게 노예라는 비참한 운명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 제 손으로 딸을 죽인다. 이것은 살인인가, 아니면 지독하게 숭고한 사랑의 행위인가. 모리슨은 이 극단적인 선택을 통해 독자에게 사랑의 정의를 다시 쓰게 만든다.


​질문: “작가님, 세스의 행위는 우리에게 엄청난 윤리적 충격을 줍니다. 당신은 이 끔찍한 사건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으셨나요? 사랑이 어떻게 파괴적인 형태로 발현될 수 있는지요?”


​모리슨은 깊게 패인 주름 사이로 고요한 미소를 지었다.

​“자유롭지 못한 인간에게 사랑은 위험한 것입니다. 노예에게 자식은 자신의 소유가 아니라 주인의 재산이었으니까요. 세스의 살인은 '나의 것은 누구도 빼앗을 수 없다'는 선언이자, 유일하게 자신이 결정할 수 있었던 자유의 행사였습니다. 그것은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문제입니다. 저는 그 피의 기록을 통해, 인간이 자신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상처가 어떻게 유령이 되어 우리를 따라다니는지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언어의 음악성: 흑인 영가(Spirituals)를 닮은 문장

모리슨의 문장은 읽는 것이 아니라 듣는 것에 가깝다. 재즈의 즉흥성과 흑인 영가의 애절한 리듬이 문장마다 배어 있다. 그녀는 백인의 언어인 영어를 가지고 흑인의 영혼을 담아내는 고통스러운 번역의 과정을 거친다.


​질문: “작가님의 문장에는 독특한 박동이 느껴집니다. 마치 누군가 옆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 같기도 하고, 통곡하는 것 같기도 하죠. 작가님에게 언어의 리듬은 어떤 의미를 가집니까?”


​“언어는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도구가 아닙니다. 언어는 기억을 저장하는 육체죠. 우리 조상들은 글을 배우는 것이 금지되었을 때 노래와 구전으로 역사를 이어왔습니다. 제 문장은 그 목소리들의 잔향입니다. 저는 백인의 문법이 가두지 못한 그 활기차고 슬픈 리듬을 복원하고 싶었습니다. 독자가 제 글을 읽을 때 뇌가 아니라 심장이 먼저 반응한다면, 그것은 우리 조상들의 영혼이 언어라는 매개체를 통해 당신에게 닿았다는 뜻일 겁니다.”


기억의 재건(Rememory): 과거를 다시 살아내는 법

​모리슨은 'Memory' 앞에 'Re'를 붙여 'Rememory'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기억은 머릿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장소와 사물에 박혀 있어 우리가 그곳을 지날 때마다 다시 살아난다는 개념이다.


​질문: “작가님은 과거가 결코 지나가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망각을 거부하고 끊임없이 과거를 현재로 불러내어 '다시 기억하는 것'이 우리에게 왜 그토록 중요합니까?”


​“망각은 가해자의 권리이고, 기억은 피해자의 의무입니다. 우리가 겪은 고통의 장소에 가면, 그 고통은 여전히 그곳에 머물며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것이 '리메모리'입니다. 과거를 직시하지 않고는 미래로 나갈 수 없습니다. 상처를 가리는 것이 아니라, 그 흉터를 어루만지고 이름을 불러주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제 소설은 그 잊힌 이름들을 불러내어 안식하게 만드는 영혼의 묘비명입니다.”


가장 푸른 눈: 미(美)의 기준이라는 거대한 폭력

​『가장 푸른 눈』에서 흑인 소녀 피콜라는 백인의 상징인 '푸른 눈'을 갖기를 갈망하다 파멸한다. 은희경 작가가 사회적 시선에 갇힌 자아를 해부했다면, 모리슨은 인종적 미학이 어떻게 한 인간의 영혼을 짓밟는 무기가 되는지 고발한다.


​질문: “어린 소녀가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며 타자의 미적 기준을 선망하는 모습은 너무나 가슴 아픕니다. 이 폭력적인 아름다움의 숭배에서 우리는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요?”


​“아름다움은 종종 권력의 다른 이름입니다. 누군가를 추하다고 규정하는 것은 그를 지배하겠다는 뜻이죠. 피콜라의 비극은 그녀가 거울 속의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세상이 그녀에게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고 세뇌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독자들이 이 책을 읽으며 '불쌍하다'고 느끼기보다, 우리 사회가 만든 그 보이지 않는 시선의 감옥을 부숴야 한다고 느끼길 바랍니다. 진짜 아름다움은 타인의 눈 색깔을 탐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검은 피부 아래 흐르는 뜨거운 역사를 긍정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어둠 속에서 피어오른 숭고한 빛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며 나는 내 손바닥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그곳엔 보이지 않는 수많은 사람의 지문이 겹쳐져 있는 듯했다.


​만약 한강이 토니 모리슨을 만났다면, 두 사람은 말없이 서로의 흉터를 바라보며 긴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마르케스가 우리를 환상의 구름 위로 띄웠다면, 모리슨은 우리를 가장 낮고 어두운 진흙탕 속으로 데려가 그곳에서 보석처럼 빛나는 인간의 존엄을 건져 올린다. 그녀는 우리에게 말한다. 가장 깊은 상처를 가진 자만이 가장 높은 숭고함에 닿을 수 있다고.


​우리는 이제 세계편의 네 번째 정거장을 통과했다. 모리슨이 남긴 '사랑의 흉터'는 우리가 마주할 거장, 실존의 미로 속에 갇힌 프란츠 카프카를 만나기 전, 우리의 영혼을 가장 경건하게 정화해 줄 것이다.



화, 토,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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