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몇 연예인이 부캐 활동으로 폭발적인 인기몰이를 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김신영은 ‘둘째 이모 김다비’라는 부캐를 만들어 거침없는 입담과 찰진 사투리로 대중의 아낌없는 사랑을 받았습니다. 최준은 7,80년대 디제이 억양을 살린 '커피 한 잔 하실래요?'로 레트로 감성에 갓 눈뜬 청년층을 사로잡았죠. 청년들은 그에게 '준며든다'는 신조어를 헌사하며 그의 등장에 열화와 같이 환호했습니다. 이후 김신영은 유명 티브이 프로그램의 사회를 맡았고 최준은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 모습을 드러내는 등 연예인으로 전기를 맞습니다. 사회 일각엔 때 아닌 부캐 열풍이 일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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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캐는 부캐릭터의 줄임말로 보통은 자기 안의 특정 캐릭터를 끌어내 과장하거나 대신 살아보고 싶은 타인의 캐릭터를 흉내 내는 방식으로 운영됩니다. 다른 내가 되어보는 것이라는 점에선 부캐는 페르소나와 비슷하죠. 바꿔 말하면 역할연기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잘만 활용하면 내 안에 잠재된 성격을 끌어낼 기회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내 안에 없는 성격이지만 따라 하고 싶은 타인의 캐릭터를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부캐를 빌려 살아보지 않은 인생을 경험한다는 점에서 흥미롭습니다. 예를 들어 평소 조용한 성격의 사람이 김신영의 둘째 이모 캐릭터를 가져와 연기하는 것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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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사람이 자유롭게 글을 올릴 목적의 익명 게시판을 만든 어떤 분이 하루는 무명으로만 글이 올라오니 누가 어떤 글을 썼는지 알 수 없다는 말로 운을 떼더군요. 짐작건대 작성자란에 천편일률적으로 무명이라고 쓰인 것이 안타까웠던 모양입니다. 그가 부케를만들어보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같은 닉네임으로 글을 쓰자는 것이었죠. 기왕이면 문장이나 글 내용도 닉네임에 맞추면 어떻겠느냐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독자 편에서도 글쓴이의 닉네임을 보면 기대감이 높아질 테니 일석이조가 아니겠냐는 생각을 했을 법도 합니다. 그날 전 재기 발랄한 문체로 리뷰를 작성해 게시판에 올렸습니다. 독자들의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이후 1주일에 두 편씩 초기 성석제를 본보기로 한 글을 쓰면서 흥미를 느꼈죠. 캐릭터를 잡으니 글을 쓰는 저도 덩달아 신이 나더군요. 나름 상큼 발랄한 닉네임은 비밀~. 개인정보 보호 차원.. (쿨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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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케와 페르소나는 '태도를 꾸미거나 얼굴이나 몸차림 따위를 알아보지 못하게 바꾼다'는 의미에서 가장(假裝)과 흡사합니다. 통칭해서 페르소나는 연극이나 영화 속에 등장합니다. 나아가 의미 측면에서 페르소나는 학교나 직장은 물론 정치인이나 마케팅에도 촉수를 뻗고 있습니다. 큰 틀에서 보면 사회적 페르소나도 존재합니다. 다중인격이 있듯이 다층적인 페르소나도 있을 수 있습니다. 양상을 보면 연극에서는 가면, 영화에선 주인공이 직면한 환경에서 드러내는 다양한 형태의 성격 변화로 페르소나가 그려집니다. 직장 상사나 동료 혹은 교우에 따라 태도와 얼굴이 바뀌는 것도 페르소나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겠죠. 또 사회가 당면한 현실이 바뀔 때마다 유효 적절하게 적응해야 하는 사회인으로서는 그때그때 어떤 태도를 보이느냐가 중요한 문제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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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커먼 속을 감추는 기제로 페르소나를 활용하지 않는다면, 페르소나는 무미건조한 일상의 탈출, 일종의 준거집단을 재연하는 데서 비롯한 만족감, 상대방의 우호적인 반응의 지속력에 비례한 쾌감 등에 효능감이 있습니다. 고객에게 아주 친절한 직원이 있었습니다. 통화를 얼마나 잘하는지 말끝마다 꿀이 떨어지는데, 멀리서 엄지손가락을올릴 뻔했습니다. 수화기를 내려놓자마자 태도가 돌변한 직원은 옆에서 듣든 말든 통화 상대를 비난하기 시작했습니다. 더는 들을 수 없었던 동료가 고개를 돌리자 이번에는 혼잣말로 한 10분가량을 떠벌리더군요. 주변에 울려 퍼지는 혼잣말이라니.... 이렇듯 신기에 가까운 즉석 페르소나는 적극 사양합니다.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장면이기도 하고요. 기왕이면 나뿐만 아니라 타인의 삶을 충만하게 하는 페르소나를 구비하는 게 여러모로 유익하겠죠. 오늘 저녁엔 어떤 캐릭터, 페르소나로 아이들을 놀래줄까? 생각만으로도 퇴근 시간이 즐겁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