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심이 필요한 순간들》과 《내 안에서 나를 만드는 것들》의 저자이자 경제학자인 러셀 로버츠가 템플스테이에 참가하게 됐는데. 사찰에서 몇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1. 참가자들은 말을 해서는 안 된다. 2. 표정을 주고받아서도 안 된다. 3. 혹 아픈 사람을 보더라도 관심을 보이거나 다가가서는 안 된다. 금기 사항에 따르면 템플스테이 내내 ‘군중 속 고독’과도 같은 상황이 펼쳐질 게 뻔했다.사태를 깨닫고 로버츠가 신청을 거두려 했다. 단 하루라도 견디기 힘들 판에 여러 날을 말 한마디 없이 보내야 한다는 사실에 목이 조여왔던 것이다. 인생에서 딱 한 번 뿐이라면 못 할 것 없다고 마음을 고쳐먹고 사찰에 발을 들여놓은 첫날, 예상은 비껴가지 않았다. 그 뒤로 이틀이 더 흘렀다. 당혹감과 뼛속까지 스미는 고독에 이어 고립감이 로버츠를 덮쳤다. 어느 정도 그곳 생활에익숙해지자 보이기 시작했다.
익숙해서, 그새 천석고황처럼 몸에 들러붙은 것을 인위적으로라도 떨쳐내지 않으면 과연 그런지에 관해 알 기회를 영영 잃게 된다. 핸드폰을 손에서 떼어내면 당장이라도 인간관계가 끊어질 것 같지만, 어디 그러랴! 디지털 세상의 가상현실 기반이란 비유하면 컬러 콘택트렌즈와 눈동자의 관계와 같다. 렌즈를 벗겨내면 눈동자는 본래의 색을 되찾는다. 수월하게 떼어냈든 힘겹게 떨쳐냈든 기어코 분리해 내야 우리 바깥에 들러붙은 것들의 실체를 알 수 있다. 컬러렌즈를 벗어야 본래의 눈동자가 드러나는 것처럼 말이다.
이때의 컬러렌즈는 호감도를 높이는 장식품일 뿐이지만 오래 끼고 있으면 이물감을 느끼지 못한다. 최악의 경우엔 장기간 착용으로 눈에 무리를 줄 수 있다. 벗겨내도 상관없는것에 매달려 살 이유가 없다는 자각은 그래서 필요하다. 애착하거나 집착하던 것, 하다못해 별생각 없이 쥐고 있던 것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자기에게 집중할 시간이 수 배로 증가하는 깨달음은 장복해도 과하지 않다. 로버츠는 침묵만큼 쉬운 게 없다고 되뇌었다. 침묵의 시간 동안 로버츠는 오롯이 자기 안으로 침잠할 수 있었다. 평소와 달리 깊이 사고했다. 현실을 진단하고 장래 전망을 하는 데도 침묵은 탁월하게 기능했다.
본의 아니게 자발적 침묵에 들어간 지 그새 2년이 다 돼간다. 그 기간 동안 논문 2편을 썼고 쟁점과 현안에 관한 수 백 페이지짜리 보고서를 냈다. 특정 분야 강의안을 완성했다. 6개월 내에 몸담은 분야의 책을 내기로 하는 등의 장래 계획에도 진전을 이루었다. 그 외 결과물들이 더 있다. 다 침묵으로 얻은 덤 같은 것들이다. 이런 물리적 성과는 침묵에 뒤따르는 유익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말을 아끼는 동안 몇 배의 시간을 얻었다. 말을 적게 하자 에너지 고갈이 멈췄다. 그 시간과 에너지가 생산적인 일과 사고에 활발히 활용되었다. 집중력과 몰입도가 전보다 향상된 것은 물론이다. 시간이 없다는 말을 달고 산다면 침묵이 적절한 처방이 될 수 있다. 말을 적게 하면 시간을 번다. 에너지를 축적할 수 있다. 제일 큰 유익은 깊은 성찰과 든든한 도약의 기반이 침묵에서 비롯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