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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코드 Dec 12. 2024

고통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

사피엔스의 몸



때론 고통도 쓸 만하다는 것. 피할 수 없다면 단호히 맞서고 깨질지언정 아주 부서지지는 않기로 작심한 뒤에도 고통은 소리 소문 없이 지나가기를 바라는 양가감정에 있어 대표 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단단한 쇠망치에 단련되고 나서야 정금이 나는 줄 모르지 않지만 그건 고통이 저 멀리 있는 거 같을 때 드는 생각일 뿐입니다. 막상 고통이 닥치면 지레 삭신이 쑤시고 뇌는 뇌대로 바짝 쪼그라들고 맙니다.



고통으로 치러야 할 대가는 분명히 있습니다. 고통은 몸과 정신에 심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거기서 그친다면 아마도 우린 고통을 견뎌내지 못할 겁니다. 그래서는 한 치도 자라지 못하겠지요. 흔한 말로 인생이라는 강에서 보면 고통은 개울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때론 흔하디 흔한 말에 눈이 번쩍 뜨이는 법이기도 합니다. 고통이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는 말은 위로이자 약속입니다.




김성규의 《사피엔스의 몸》에서


21세기 영화 가운데 최고의 오프닝과 엔딩을 보여준 작품으로 자주 언급되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다크 나이트)는 제가 매우 사랑하는 작품입니다. 특히 오프닝 장면에서 작품의 메인 빌런인 조커가 등장하는 시퀀스는 그야말로 흠잡을 곳이 하나도 없죠. 혹시 은행을 털러 온 조커가 다른 공범을 하나씩 제거하고 자신에게 총구를 겨누던 은행장을 쓰러뜨린 후 가면을 벗으며 한  뭔지 기억하시나요?



조커는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을 죽이지 못하는 건 그게 무엇이든, 당신을 더욱 미치광이로 만들어버리지."(Whatever doesn't kill you simply makes you stranger)라고요. 그런데 이 이 독일이 낳은 유명한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가 우상의 황혼》이라는 책에서 한 말 가운데 몇 개의 단어만 바뀌 조커답게 변형한 말이란 건 잘 모르셨을 니다. 원래 니체가 한 말은 "나를 파괴하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what doesnt destroy me makes me stronger)입니다. 이렇게 두 문구를 함께 두고 보면, 조커의 대사는 니체의 말 중에서 'destroy' (파괴하다)를 'kill'(죽이다)로, 'stronger'(강하게 만들다)를 'stranger'(미치게 만들다)로 바꾼 재치 있는 패러디이자 멋진 오마주라는  알 수 있죠. 



우리는 '비 온 뒤에 땅이 는다'라는 속담처럼 나를 완전히 파괴하고 쓰러뜨리지 못하는 고통은 정신적으로든 신체적으로든 나를 더욱 단단하고 강하게 만들어줄 것이라 믿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정신과 몸을 수양하기 위해 스스로를 '단련'이라 부르는 고통스러운 과정에 밀어 넣기도 하죠. 인간은 이렇게 단련하는 과정에서 몸이 지닌 욕망이 무절제하게 분출되는 것을 막고 인내하는 법을 배우며 숭고하고 강인한 자아정체성을 획득하는 존재입니다.



사실 인간이 성숙하고 강인한 존재가 되는 거의 모든 과정에는 각종 고통이 동반되기 마련입니다. 근육은

근섬유가 파괴되었다가 더 많이 복원되고 단단해지는 과정을 거쳐야 강해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근력 운동 후의 고통을 견디고 또 즐기는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인간을 태어나면서 죽을 매까지 고통바닷속에서 살아가는 존재라고까지 니다. 인간의 삶은 생로병사'의 네 가지 고통으로 가득 찬 '고해'라는 것이죠.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의 몸이 필연적으로 갖고 태어는 이 네 가지 고통을 이해하고 이겨내려는 노력이 지금의 문화와 과학, 문학 등 모는 인간 활동의 원동력이 됐습니다. 인간이 우주에 태어난 목적을 탐구하기 위해 문명과 문화, 종교를 일으켰고, 늙음과 죽음을 유보하고 병들어 겪는 고통을 줄이기 위해 의학과 과학을 발전시켰죠. 어쩌면 인간이 일군 모든 업적은 몸이 겪는 고통을 이해하고 극복하려는 과정에서 발현된 힘과 의지에서 시작됐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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