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백석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순백의 이미지에 결부된 사랑과 순수에의 열망을 이처럼 서늘하게 녹여낸 시는 많지 않을 거라고 문득 생각했다. 다 읽기도 전에 가슴부터 녹아내렸다. 오늘도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 것이다.
연남동, <흰그루>에서
평일과 주말 할 것 없이 사람들로 붐비는 연남동엔 부러 찾아가지 않아도 좋다. 기왕이면 바람 부는 날에 누군가에게 등 떠밀려 가거나 이런저런 심사를 달래려고 문을 나서는데 문득 머릿속에 연남동이 떠올랐다면 두말할 나위 없이 그곳 연남동으로 가자. 연남동이 가장 가까운 그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