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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르무 Dec 09. 2021

집의 의미 2

독립, 나와 친해지는 시간



3. 독립은 달콤하지만 서울은 쓰다.


대학 졸업 후 서울로 상경하며 부모님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하게 되었다. 서울생활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집’은 내게 부모님과의 ‘분리’ 외에 더 큰 의미는 없었던 것 같다.

안정감이나 나만의 공간 같은 의미를 두기엔 너무나 좁았고 계약으로 묶인 공간이기에 정이 들 때쯤이면 다른 집으로 옮겨야 했다.

그리고 팍팍한 서울생활에 ‘집’은 ‘잠을 자는 곳’ 정도였다.

그렇게 정신없는 생활을 하던 중 우울증과 불면증이 심해지면서 혼자 있다가는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서울에 있는 형제들과 함께 지냈다.

혼자 지낼 때보다 불편하긴 했지만 억지로라도 밥 먹을 때 밥 먹고, 자야 할 때 불 끄고 눕게 만들어서 우울증 치료에는 효과가 있었다.

마음이 조금씩 튼튼해지던 중, 집 계약기간이 끝나 각자 직장과 학교 근처로 자취방을 잡고 흩어지게 되었다. 나도 혼자 살 곳을 찾아보던 중 마음에 쏙 드는 옥탑방을 발견하게 됐다.


옥탑방에서 나는 새로운 ‘집의 의미’를 경험하게 되었다.






4. 채워나가는 즐거움을 맛보다.

망치질 좀 하던 때

옥탑방은 옵션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좋았다. 내가 원하는 것들로 채울 수 있다는 생각에 신이 났다. 당장 필요한 것들을 다 사들일 형편이 아니었기에 있는 것들로 방을 꾸리고 일을 하며 하나씩 필요한 것들과 두고 싶은 것들을 사모았다.

직접 조립한 식탁

내 취향으로 채워나가며 조금씩 완성되는 집을 보니 그저 행복했다. 대부분 조립식 가구들이라 일일이 내 손으로 만든 것들이라 더욱 애착이 갔다.

아직도 나는 그때의 옥탑방을 생각하면 마음이 훈훈하다. 생각해보면 그곳이 여태 내가 거쳐온 집들 중 가장 오래되고 낡은 곳이었다. 그럼에도 가장 마음에 드는 집으로 꼽히는 이유는 내 색깔로 물들인 첫 공간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한끼를 먹어도 맛있게 먹기

어쩌면 이전의 자취방들은 부모님에게서 떨어져 나왔단 사실만으로 만족을 준 것일지도 모른다. 부모님으로부터의 ‘분리’에 익숙해졌을 땐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집이란 공간을 둘러볼 정신이 없었다.

사실 옥탑방으로 옮기고 나서 경제적으로는 가장 힘든 시기였다. 코로나19가 터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심적으로는 가장 여유로운 시기였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나를 돌볼 시간이 많아졌다. ‘나’와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집’에 대한 애정도 커진 것 같다. 그리고 확실히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니 자연스레 집이란 공간에 대한 애정도 커졌다.

그러면서 ‘집’의 컨디션이 좋아야 ‘나’의 컨디션도 좋다는 것을 깨달았다. 집안일은 해도 해도 끝이 없고 끊임없이 움직이다 보면 우울함이 틈탈 새가 없었기에 정신도 맑아졌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정말 기적처럼 우울증이 안개 걷히듯 사라진 것이다.

옥탑의 매력

자취를 처음 시작하고 처음 내 공간이 생겼던 때, 내가 집순이라는 것을 깨달았었다. 그런데 옥탑방에서 새로운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집순이 기질이 다분하긴 하지만 우울함이 걷히고 심적인 에너지가 넘쳐나니 자꾸 밖으로 나가고 싶어지는 것이었다. 예전 같으면 밥을 차려먹고 집안일을 하고 나면 뻗어버리기 일수였는데 체력이 남기 시작했다. 혼자서라도 집 근처를 산책해야 남은 에너지가 발산되어 마음이 편안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여태 연락 못하고 지내던 사람들과도 연락하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연락하는 사람들과 마음껏 만나고 싶었지만 코로나가 허락하지 않았다….

주체 못 할 에너지를 어떻게든 써야 했기에 집에서 혼자 놀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혼자 놀기의 달인이 되어갔다. 집 안에서는 블루투스 스피커로 노래를 틀어두고 콘서트 주최자이자 무대에 서는 아티스트이자 열광하는 관객으로 1인 3역을 하며 콘서트를 즐겼다. 집 밖으로 나가면 따릉이를 타고 안양천을 돌거나 집 앞 놀이터에서 신나게 그네를 탔다. 날이 풀리면서 옥상 공간을 활용하기 위해 캠핑의자와 테이블, 파라솔까지 사들였다. 햇빛 좋은 날 밖에서 브런치를 즐기거나 티타임을 가지곤 했다. 명절이나 연말, 친구들의 생일에는 영상통화로 원격 파티를 벌였다. 그렇게 나와의 시간을 보내며 몰랐던 '나'를 알아가게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고 싫어하는 것은 무엇인지. 나의 장점은 무엇인지 단점은 무엇인지. '집'은 나 자신과 깊은 대화를 나누는 공간이 되어갔다.

팬데믹으로 어쩔 수 없이 시작된 집콕 생활이었지만 그 시간들은 내게 많은 것들을 알려주었다. '집'을 가꿀 기회를 주었고, '나'와 친해질 시간을 제공해주었다. 그러면서 내게 '집'의 새로운 의미를 안겨준 것이다.

그래서 내게 옥탑방에서의 시간들은 참 소중하고 감사하다.


그런데,

갑작스레 옥탑방을 떠나게 되었다.

어느 날 새벽,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 찾아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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