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보라 Nov 16. 2022

타목시펜, 부작용의 시작

항암제, 너 대단하구나.


오전 6시. 


한 손에 타목시펜을, 다른 한 손에는 항암제 복약 안내서를 손에 쥐고 경건하게 앉아 있다.


깊게 숨을 한 번 내뱉은 후, 항암제 부작용에 관한 내용을 훑어본다. 


항암제(타목시펜): 1정씩 1일 1회 일정한 시간에 복용하세요.


                   <부작용> 

얼굴 화끈거림, 안면홍조, 발한, 발진

월경불순이나 폐경

약한 메스꺼움, 구토

간 검사 수치 증가;간 기능에 영향을 주는 건강보조식품 삼가

질출혈(자궁내막 증식)

혈전 색전증(쉬고 있는데도 숨 찬 증상 혹은 한쪽 다리 심한 부종)


여기까지는 병원에서 ‘공식적으로’ 안내한 부작용이다. 



하지만 유방암 카페에 가면, 병원에서 알려준 증상 이외에 다양한 부작용을 겪는 환자들이 있다. 




“불면증 때문에 힘들어요.”


“관절통이 와요.”


“손발이 저려요.”


“뼈 마디마디가 아파요.”


“무릎에서 소리가 나요.” 


“질 건조증이 심해요.”


“살이 안 빠져요. 특히 뱃살...”


“너무 힘들고 우울증이 와서 의사 선생님께 상의도 없이 약을 끊었어요.”



이쯤 되면 타목시펜은 암 예방에 도움을 주는 약인지 환자를 고문하는 약인지 헷갈릴 정도다. 



지름 1cm도 안 되는 원판 모양의 알약이 이토록 대단한 힘을 발휘하다니. 



위에 열거한 증상들도 환자 입장에선 견디기 힘든 부작용이지만, 내가 본 가장 기가 막힌 부작용은 이것이었으니.



타목시펜은 유방암의 재발을 막는 데 도움을 주지만, 자궁내막암의 발병 위험을 높입니다.






유방암은 ‘예방’하고 자궁 내막암은 ‘유발’한다니. 고놈의 약, 성격 한번 대단하다. 신문 기사에 의하면 일반인에 비해 타목시펜을 복용하는 환자는 자궁내막암 위험이 18배 높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이 약을 복용하는 동안 정기적인 산부인과 검진이 필수다. 



이런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타목시펜이 호르몬성 유방암 환자에게 처방되는 이유는 ‘실’보다 ‘득’이 많다는 연구결과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모든 유방암 환자들이 이런 부작용을 겪는 건 아니다. 유방암 선배이신 우리 시어머니는 이 약을 드시는 동안 부작용을 거의 느끼지 못했다고 했다. 



유전학상으로 피 한 방울 섞였을 리 없지만, 나도 어머님과 같은 체질이었으면 하고 빌었다. 그래도 같이 지낸 세월이 있으니 닮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라는 말도 안 되는 바람과 기도를 담아서 꼴깍. 타목시펜을 삼켰다. 



유방암 항암제 타목시펜(하루 한 알 섭취. 복용 시간은 각자 사정에 맞게)


이제 짧으면 5년, 길면 10년 이상 이 약과 함께 가야 한다. 


복용 시간은 하루 중 언제라도 상관이 없다. 다만 ‘매일 일정한 시간’에 먹으라고 했다. 


첫날엔 오전 6시에 시도했다. 약 먹는 걸 잊어버릴까 봐 눈뜨자마자 먹었다. 잠깐 배가 아프긴 했지만 부작용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항암제를 먹었다는 긴장감 때문일 수 있으니. 


그런데 곧 두통이 부작용의 시작을 알리더니 아침부터 온종일 몽롱했다. 약에 취한다는 말이 뭔지 알 것 같았다. 피곤하고 노곤하고 속이 메슥거렸다. 사람들이 땅으로 꺼질 것 같은 느낌이라고 했는데 비슷했다. 하루에 두 번씩 낮잠을 잤다. 


낮 동안 내내 무기력했다. 소화 불량과 복부 팽만은 덤이었다. 일상생활이 너무 처지는 것 같아 복용 시간을 바꾸기로 했다. 저녁 9시. 타목시펜의 대표적 부작용이 ‘불면증’이라 밤 시간에 먹는 건 피하려고 했지만, 깨어있는 시간에 정상적으로 활동하려면 어쩔 수 없었다.


저녁에 먹은 첫날, 갱년기 같은 증상이 왔다. 잠이 드는 듯하다가 한 시간에 한 번씩 깼다. 얼굴에서 열감이 느껴지며 온몸이 화끈 달아올랐다. 타목시펜이 자기 몸을 녹여내 내 몸 혈관 구석구석에 불을 지피고 다녔다. 물파스처럼 퍼져가는 항암 약 때문에 온몸이 화했다. 


밤새도록 각성상태로 있다가 아침을 맞았다. 앞으로 이렇게 불면증으로 고통받으며 살 수도 있겠구나 생각하니 겁이 났다. 커피를 끊어야 할까... 신랑이 만들어 준 갓 끓여낸 커피 향을 맡으며 하루를 시작하고, 일과를 끝낸 저녁 시간에는 좋아하는 티브이 프로그램을 보며 한 잔의 커피를 마셨다. 일상의 작은 행복이었다. 


소소한 행복이 암이라는 파도를 맞으며 부식되어 간다. 이미 반신욕의 기쁨은 사라졌다. 언제 다시 가능할지 알 수 없다. 유방암 수술 후, 림프 부종의 위험이 있기 때문에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는 행위는 피하라고 했다. 향내 나는 소금을 풀고 따뜻한 욕조에 앉아 편백나무 덮개 위에 아이패드를 놓고 넷플릭스 드라마를 본 게 언제였더라. 주문했던 라벤더 향이 나는 이스라엘 사해 소금은 포장지도 벗지 못한 채 욕실 캐비닛 구석에 장식품처럼 서 있다. 



잘 지내왔다고 생각했는데 눈물이 방울방울 맺혔다. 






매거진의 이전글 항암약을 처방받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