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원주민의 날(Native American Day)’ 행사를 돕기 위해 아들이 다니는 학교에 갔다. 미국 학교는 행사 때마다 교실 문 앞에 ‘자원봉사 신청서’를 붙여 놓는데 나는 이 지원서에 늘 사인을 했다. 영어 한마디 못하는 아이를 미국 교실에 던져 버린 게 양심에 찔려서랄까.
이날 행사는 K학년 전체가 놀이터에서 하는 야외 수업이었다. 학부모들은 곳곳에 원주민 전통 체험 부스를 설치하고 코너마다 아이들이 방문하면 전통 음식 만들기, 놀이, 춤 등 다양한 활동을 안내했다.
나 역시 한 코너를 맡아 아이들을 지도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느닷없이 얼굴에 물세례가 날아왔다.
옆 반 남학생 J였다. J가 나를 향해 물총을 쏘는 게 아닌가.
나는 웃으며 멈추라고 했다. J는 해맑게 웃으며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내 반응에 신이 났는지 계속해서 물총 싸대기를 날렸다.
수업 시간에, 처음 보는 어른에게, 그것도 아이들을 지도하는 학부모 교사에게 거리낌 없이 물총을 쏘는 아이. J에 대한 첫인상이었다.
아들이 1학년에 올라가서 J와 한 반이 되었다. J의 엄마는 자주 학교에 불려왔다. 젖은 머리로 뛰어오는 날도 있었다. 어떤 날은 아빠가 대신 오기도 했다. 미국 학교는 수업 중 아이가 문제를 일으키면 즉시 가정으로 연락해 보호자에게 넘긴다. J가 수업을 마치지 못하고 집에 가는 날이 늘어났다. J를 데리러 오는 부모의 표정은 점점 굳어갔다.
J는 미국 아이치고 드물게 외동이었다. 같은 반인 데다 우리 아들도 외동이라 둘은 금방 친해졌다.
하루는 J의 집에 초대를 받았다. 두 아이는 신나게 위층으로 올라갔다. J 엄마와 나만 거실에 남은 상황. 마른침이 꼴딱 넘어갔다.
‘빈약한 영어 실력 때문에 가슴 졸이며 살고 있는데, 미쿡 아줌마랑 영어로 1:1 대화라니! 겨우 인사만 주고받던 엄마랑 무슨 얘기를 한 담 …’
토플 시험장에 온 것 같았다. 쓸만한 영어 문장 몇 개를 떠올리며 비장하게 영어 말하기를 준비했다. 가슴이 두근두근. 진심으로 아들 버리고 집에 가고 싶었다.
다행히 J 엄마는 할 말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저 듣기만 해도 오디오가 빌 틈이 없었다. 쉴 새 없이 말을 쏟아냈다. 그녀의 입술엔 학교와 교사에 대한 울분이 서려 있었다.
“학교는 비리투성이야. 맨날 돈 없다고 하지. 사실 그거 교사들이 다 떼먹어서 그래. 세미나 한답시고 비싼 호텔 묶으면서 예산 다 쓰는 거라고…’
다다다다 쏟아내는 그녀의 말을 놓치지 않으려고 듣기 시험 보듯 최대한 귀를 열어 집중했다.
“J가 어린이집 선생님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알아? 거기서는 늘 칭찬받는 아이였어. 어린이집 선생님들은 참 친절하고 좋았는데 초등학교 선생들은 형편없어. 하나같이 불 친절해…”
그녀의 대화 주제는 ‘학교와 교사에 대한 불만’. 내게 너무나 익숙한 레퍼토리였다. 내용도 한국에서 듣던 거랑 Ctrl+C, Ctrl+V 수준으로 흡사했다.
그러다 보니 리스닝 실력이 참으로 비루했는데도(지금도 취약합니다. 남의 말 안 듣는 성격이라 더 그런 듯) 그녀가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말이 100% 들렸다. 예상 문제를 다 알고 푸는 듣기 평가 같았다. 내 얼굴에 침 뱉는 얘기를 들으면서도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녀의 말에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영어가 들린다는 기쁨에 취해 교사 뒷담화에 동조한 셈.
그녀와의 관계가 오래가지는 못했다. J는 잘 울고 화를 내서 교실 분위기를 엉망으로 만들었는데, 놀이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친구들과 놀다가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 씩씩댔다. 그게 먹히지 않으면 울음을 터트렸다.
J가 얼굴이 빨개지도록 울면 J보다 더 시뻘건 얼굴을 한 그녀가 나타나 엄마들에게 항의했다. 사건의 진위 여부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무조건 J가 피해자고 다른 애들은 가해자였다. 대화가 통하지 않았다.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자 엄마들도 같은 반 친구들도 J 엄마와 J에게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3학년에 올라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친한 엄마로부터 J의 소식을 들었다.
“J 있잖아요. 결국 1년 정학당했어요. 이번엔 선생님한테 욕을 했대요.”
K학년부터 ‘문제 마일리지’를 차곡차곡 쌓은 J에게 학교는 ‘1년 정학’이라는 징계를 내렸다.
J는 이제 1년 동안 이 학교에 다닐 수 없다. J의 부모는 근처 다른 학교를 찾아야 한다. 하지만 거기서도 아들의 행동이 개선되지 않으면? 정학은 반복되고 또 학교를 옮겨야 할 것이다. 미국에서는 이런 식으로 이 학교 저 학교를 떠돌아다니는 학생들이 있다.
한국에서 근무할 때 일이다.
재하(가명)는 입학식 때부터 눈에 띄는 아이였다. 학교에 처음 들어오는 1학년 아이들은 대부분 긴장하기 마련인데, 이 아이는 첫날부터 제멋대로였다. 수업 중 아무 때나 일어나서 교실을 돌아다녔다. 담임교사가 무언가를 설명할 때는 경청을 해야 함에도 큰 목소리로 끼어들어 본인이 하고 싶은 얘기를 했다. 담임교사가 그때그때 타이르고 주의를 줘도 소용없었다.
아이들과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본인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으면 분노를 터트렸다. 조별 활동에서 하고 싶던 역할을 짝꿍이 맡게 되자, 짝꿍의 교과서를 북북 찢었다. 주먹을 휘두르기도 했다. 재하와 싸우는 아이들이 하나둘씩 늘어나고 교실은 점점 어수선해졌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교감 선생님까지 나서서 재하와 상담을 했다. 하지만, 재하는 본인이 제멋대로 행동해도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걸 기가 막히게 잘 알고 있었다. 교감 선생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선생님 수업 종 쳤는데요. 저 이만 가볼게요.” 하더니 교무실을 나갔다.
안타깝게도 재하의 부모는 이 문제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저 아이가 성장하며 겪는 실수쯤으로 여겼다. 그야말로 ‘방관’이었다. 오히려 나중엔 ‘왜 우리 아이만 가해자 취급하냐?’며 따졌다.
폭력을 당하는 아이가 늘어나면서 같은 반 학부모들의 불만도 쌓여갔다. 스트레스를 받은 담임 교사는 병가에 들어갔다. 대신 왔던 기간제 선생님도 한 달을 못 버티고 그만뒀다. 쉬는 시간마다 공익 요원이 재하의 뒤를 쫓아 다녔다. 아이들과의 마찰을 최소화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자기 뒤를 따라다니는 공익 요원을 보자 재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선생님 아니죠?"
겨울 방학을 앞두고 학폭 위원회가 열렸다. 재하는 일주일 등교 정지 처분을 받고 방학에 들어갔다. 반 아이들이 일 년 내내 상처받고 시달린 것에 비하면 가벼운 징계였다. 한국 학교는 이런 아이를 처벌할 명확하고 엄격한 규정이 존재하지 않았다.
교실이 붕괴되며 1학년이 끝났다.
규칙을 존중하고 따르는 보통의 아이들은 심각한 피해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