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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보라 Feb 19. 2023

수술 후 첫 정밀 검진

수술 후 10개월만에 처음으로 정밀 검사를 받다

수술 후 첫 정밀 검사가 잡혔다. 10개월 만이다. 다른 환우들은 수술한 지 6개월 만에 정기 검진을 받는다던데. 생각보다 늦어진 정기 검진에 의아했지만, 주치의 선생님께 딱히 물어보진 않았다. (나중에 보니 나처럼 10개월 만에 검진받는 환우들도 있었다. 환자 상태에 따라 다른 것 같다)





오전 8시경, 암 센터에 도착했다. 이곳에 내리면 여전히 면접을 앞둔 수험생의 기분이 된다. 언제쯤 동사무소 가듯 무심히 이곳에 올 수 있을까.  



이맘때가 되니 작년에 처음 암 진단을 받고 정밀 검사 다니던 기억이 떠오른다.  신랑 손에 이끌려 눈물 슥슥 닦으며 여기는 어딘지 다음 검사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 정신없고 서러웠던 3월의 어느 날. 아직 냉기가 가시지 않은 바람을 맞으며 몸도 마음도 시리게 추웠었지.



But!!  이번엔 다르다. 혼자 운전하고 와서 여유롭게 커피도 마신다. 보호자도 필요 없다. 검사실 가는 길도 익숙하다. 이것이 경력자의 힘.





병원 안에 있는 카페. 환자들은 할인해 준다. 그것도 모르고 여태 병원 탈출 후 커피집 찾아다닌 나.




검사지를 확인한다. 수술 전 받았던 검사와 달라진 게 있다. 이번엔 유방 초음파 검사가 없다. 왜지? 모른다. 또 하나는 CT 검사에서 조영제가 빠졌다. 저번 검사 때는 CT 촬영 중간에 조영제가 들어갔었다. 이건 또 왜지? 알 수 없다. 다음 주에 만날 주치의 선생님께 물어봐야겠다. 아무튼 조영제가 없으니 금식할 필요가 없어서 좋다.





지난번과 달라진 검사 내용. 유방 초음파 생략. CT 검사에서 조영제가 빠짐





여전히 바쁜 채혈실. 오늘도 상큼하게 모닝피를 뽑으며 시작한다. 이젠 '팔'이 아닌 '발'에 찔림을 당하는 게 익숙하다. 채혈실 구석 침대에 올라가 옆에 있는 온장고에서 찜질팩을 꺼내 발등에 올린다. 따듯하면 혈관이 잘 보여서 바늘 꼽기가 좋다. 다행히 오늘도 한방에 성공했다. 혈관 잘 보이는 내 발 칭찬해.



다음은 유방 촬영실로 내려간다.


혹시나, 이번엔, 그래도, 덜 아프지 않을까...는 개뿔. 우와 C. 욕 나오게 아프다. 과장 하나도 안 하고 너무너무너무 아프다. 미치도록 아프다. 가뜩이나 소박한 가슴을 등부터 끌어모아 짓누르는데 이건 뭐. 아주 터트리겠다는 거냐? 5초니까 참았지 10초면 기절할 뻔했다.(실제 기절하는 환자도 있다)



유방 촬영은 언제까지 이렇게 고문처럼 받아야 하는 걸까. 안 아프게 검사받을 수 있는 유방 촬영 기계는 정녕 발명이 안 되는 것인가!!! 혹시 이쪽으로 연구하는 과학자들 없으신가요? 화성이나 우주 탐사는 그만 연구하시고요, 이 기계 먼저 만들어 주시면 안 될까요?? 그렇게만 해 주시면 평생 은인으로 모시며 사시는 곳 향해 절할게요.



다행히 왼쪽 가슴은 고통을 피했다. 전 절제를 하면 유방 촬영은 패스다.(누를 게 없으니) 처음으로 전 절제의 장점을 느껴본다.


가장 고통스러웠던 유방 촬영이 끝났으니 큰 산은 넘은 셈. 다른 검사는 어려울 게 없다. 경험상 침대에 누워 적당히 숨만 쉬다 내려오면 끝.


하지만 MRI 실에서 예상에 없던 시나리오가 펼쳐질 줄이야.


들어가서 누울 때까지만 해도 아무 걱정 없었다. 이미 해 봤고 수월하게 끝냈던 검사였으니까. 당연히 별 탈 없이 지나갈 거라 생각했다. 침대에 엎드려 두 손을 올렸다. 곧이어 통 안으로 입성. 끝나고 뭐 먹을지 떠올리며 눈을 감았다. 중간중간 눈을 뜨기도 했지만 불편한 점은 없었다.



그런데 촬영 중간 헤드폰으로 들리는 엄중한 메시지.


"환자분, 몸을 너무 많이 움직이셔서 영상 상태가 안 좋아요. 호흡 가볍게 하세요!! 곧 조영제 들어갑니다."



엥? 생각 없이 누워 있다 갑작스러운 지시를 들으니 당혹스러웠다. 호흡을 가볍게 하라는 간호사님 말이 재차 들렸다. 이보다 더 가볍게 쉬라고? 최대한 얕게 쉬고 있는 건데 대체 어떻게..... 숨을 멈추란 말이요???



그 순간 조영제가 들어왔다. 호흡은 평온해지기는커녕 더더더 빨라졌다. 가슴까지 두근거린다. 아, 안돼!! 기도가 저절로 나왔다. 최대한 정신줄을 붙잡으며 숨쉬기에 집중했다. 가까스로 MRI 검사를 마치고 통 속을 빠져나왔다.


나중에 간호사님께 물어보니 조영제 들어갈 때 몸을 심하게 움직이는 환자들이 있어서 일부러 더 세게 말씀하신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곰곰이 짚어봤다. 지난번과 다르게 왜 지적을 받았을까. 


1.자세를 처음부터 제대로 안 잡고 누웠다.  

처음 MRI 검사를 받을 때는 최대한 편한 자세를 찾아 신경 써서 누웠는데, 이번엔 아~무 생각 없이 철퍼덕 누웠다. 자세가 편치 않으니 호흡이 흐트러졌을 수 있다.



2. 마스크를 제대로 벗지 않고 코에 걸쳤다.

나는 남들보다 마스크 쓰고 숨 쉬는 걸 힘들어한다. 지난번에는 마스크를 완전히 내렸다. 이번엔 코에 대충 걸쳤다. 아무래도 숨 쉬는 데 방해를 받았을 것이다.



3. '코'로만 숨을 쉬었다.

내 생각엔 이게 가장 큰 문제였지 싶다. 적당히 입으로 숨을 내뱉어야 하는데 검사 내내 코로만 숨을 쉬었으니. 몸통이 더 들썩이지 않았을까.



한 번 해 본 검사라고 너무 방심했다. 지난번에 너무 수월하게 받아서 그래. MRI 주의 사항을 꼼꼼히 읽어봤어야 하는 건데.



빠르게 진행된 검사 덕분에 점심시간 전에 모든 검진이 끝났다. 주차장으로 향하는데 아들에게 톡이 왔다. 본인이 만든 파스타 사진이었다. 병원 가느라 점심은 못 챙겨준다는 말에 알아서 먹겠다고 하더니 꽤 그럴싸한 파스타를 만들었다.





아들이 만든 크림 파스타(밀키트의 힘을 빌렸지만 스스로 끼니 챙기는 모습이 기특♥)







검사 결과는 다음 주 화요일, 주치의 선생님을 통해 듣게 될 예정이다. "이상 없습니다. 다음 진료 때 봐요." 이렇게 말씀하시면 얼마나 좋을까.

그때는 신랑과 함께 와야겠다. 검사는 혼자 받아도 괜찮았는데, 결과는 혼자 듣기가 조큼 두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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