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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많은얼룩말 Oct 15. 2021

굉음의 실체


상공을 누비는 공군 전투기의 굉음이 조금 더 가까이 들리자 왠지 모르게 소름 끼치는 위엄을 느꼈다. 소리에 위압감을 느끼게 되자, 부대 내에서 수도 없이 맞닥뜨렸던 '대한민국을 지키는 가장 높은 힘'이라는 문구가 이제야 실감이 난달까.




 10월 19일(화)부터 23일(토)까지 서울공항에서 '서울 ADEX 2021' 서울 국제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가 열린다. 내가 살고 있는 성남 공군부대 내 서울공항에서 개최가 되는 규모가 꽤 큰 전시회로 2년에 한 번씩 열린다.


 몇 년 전 사천에서 열린 에어쇼에 안내요원으로 참가했던 남편(그 당시 남자 친구)과 통화하던 날이 기억이 난다. 그날 남편은 내게 공군 특수비행팀, 블랙이글스의 에어쇼를 꼭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이번 아덱스에서 블랙이글스의 에어쇼를 직접 볼 수 있겠거니 기대하고 있었는데, 코로나라 군가족은 입장이 안된다고 한다. 세상에, 또 2년을 기다려야 한다니. 우리 집 베란다에서도 에어쇼가 잘 보이길 바라는 수밖에.


 이틀 전 수요일 오전 11시경, 버스정류장 주변을 울리는 굉음에 깜짝 놀라 하늘을 올려다보니 하늘을 분홍 빛깔로 만드는 전투기가 보였다. 그 멋진 광경을 조금 더 보고 싶었는데, 그때 마침 타야 하는 버스가 내 앞에 섰다. 버스 안에는 승객이 두 세 분 정도 있었던 것 같은데, 계속되는 굉음에 깜짝 놀라 주위를 두리번거리셨다. 별일 아니라고 설명을 드려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부대 옆을 지나고 있다 해도 일상에서 듣기 힘든 이런 큰 소리를 처음부터 태연하게 받아들일 사람이 누가 있을까. 전투기의 굉음은 '전쟁'을 연상시키니까 말이다.


 그 시각, 성남 어딘가에서 근무하고 있던 서기린 양에게 "언니, 오늘 부대에서 전투기 훈련해요?"라는 메세지가 왔고, 남편도 판교에서 근무하고 있는 친구에게 연락을 받았다고 하니 말 다했지. 버스를 타고 양재에 갔는데 소리가 거기까지 따라왔으니 얼마나 큰 소리였는지 가늠이 될까?


 아덱스에 대해 알아보려고 검색하다가 공군 홈페이지에 들어가게 되었다. 게시되어 있는 블랙이글스의 사전훈련 일정을 보며, 이틀 전 버스정류장에서 본 전투기와 오늘 오전 10시 50분경부터 계속해서 굉음을 내고 있는 전투기가 블랙이글스의 전투기구나 싶었다. 어찌나 소리가 큰지 내 머리속에서는 '전투기 굉음' 말고는 떠오르는 생각이 없었다. 도저히 다른 일을 생각할 수 없어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데, 에어쇼 준비를 위한 비행 소음은 30-40분 정도 지속되다 그쳤다. 그래, 우리 모두 점심식사를 해야지. 조종사도, 군인도, 군가족도, 민간인도.


 이렇게 전투기 비행 소리를 듣고 보니 이 부대에서 주로 듣던 수송기 소리가 그리 크지 않은 소리였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그래서 전투기가 있는 부대는 그렇게 외진 곳에 있다는 사실도 말이다. 아덱스가 종료되고 나면 더 이상 들을 수 없는 소리라 여기며 전투기의 비행 소음과 함께 한주 더 잘 지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들을 때마다 소름 끼치는 위압감을 선사하지만 그래도 우리 군의 전투기가 내는 소리라는 사실에 묘한 안도감이 드니까 말이다.


 내 글에 '전투기'라는 단어가 등장하게 될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다. 나의 일상에 전투기 굉음이 들어왔으니 어쩌겠는가. 아니지, 이 부대 관사에 내가 들어왔으니 어쩌겠는가. 전투기의 굉음을 소재 삼아 글을 쓰고 있으니 그 소리가 글쓰기에 방해되기는커녕 집중력을 높여주었다는 사실을 전하며, 굉음으로 깜짝 놀라셨을 인근에 계시는 모든 분들에게 심심한 위로를 보냅니다. 보이지 않던 국방력을 소리로 확인하게 되는 나날에, 군가족 1인이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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