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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많은얼룩말 Oct 12. 2021

더 이상 우울하지 않습니다


 오늘은 화요일이다. 남편이 정해준 일과에 따르면 오늘은 '드로잉 수업'을 듣는 날이다. 그런데 어제 대체공휴일이라고 하지 못한(?) '글쓰기'를 아무래도 오늘 해야겠어서 이렇게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물론, 드로잉 수업도 들을 예정이고 말이다.




 8일만 더 있으면 부대 내 관사 생활로 6개월을 꽉 채우게 된다. 나는 이제야 타지에서의 삶이 적응된 것 같다. 외출 후 집에 돌아올 때면 '역시 집이 최고'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데, 그럼에도 아직까지 내가 내 삶의 터전을 '타지'라고 부르는 것을 보면 아직도 내 마음이 고향에 머무르고 있기 때문인가 보다. 그래서 이 모순적인 마음은 조금 더 관찰해보기로 하고.


 3주 전쯤, 텅 빈 시간에 홀로 있기가 너무 우울해 남편에게 SOS를 쳤던 그날이 생각난다. 그날 남편과 약속한 '하루에 한 가지 일 하기(One task a day)' 프로젝트는 나름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물론 남편이 나를 매섭게 지켜보는 것도 아니고, 나 또한 이를 강박적으로 이행하려고 애쓰지도 않는다. 그저 하루에 한 가지 일만 하면 된다는 이 약속이 얼마나 나를 자유롭게 구속하는지 매일 콧노래가 절로 나올 지경이다.


 나를 규칙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이 최소한의 설정 덕에 때론 일과 후 마음 편히 드라마를 보기도 하고, 일과에 없었던 독서나 운동을 하게 될 때면 부가적인 성취감을 얻기도 한다. 이렇게 3주의 시간을 보내다 보니 지금은 독서와 운동을 어떻게 하면 규칙적인 습관으로 만들 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실험하고 있다. 나는 이제야 학교도, 직장도 없이 나의 일상을 적절히 운영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된 것이다.


 지난날로 돌아갈 수도 없지만,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없다. 그건 나의 지난날들을 미워해서가 아니다. 몰아붙이듯 살았야 했던 나의 *청춘의 시기가 다했기 때문이다(청춘: 새싹이 파랗게 돋아나는 봄철이라는 뜻으로, 십 대 후반에서 이십 대에 걸치는 인생의 젊은 나이 또는 그런 시절을 이르는 말). 그래서 나는 이제 제대로 여름으로 들어가 보려고 한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그 시간 속으로 오늘도 나는 한걸음 한걸음 걸어가고 있다.


 앞선 글에도 이야기했듯, 나를 여기까지 몰고 와 준 나의 우울에게 고맙다 인사를 전한다. 그리고 인생의 계절이 변화되며 만났던 환절기를 조용히 떠나보낸다.


 "나는 더 이상 우울하지 않습니다."




*남편에게 SOS를 쳤던 그날의 기록

-당신에게 SOS를 칩니다 (brun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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