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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많은얼룩말 Oct 06. 2021

가을 냄새


 창문을 내리자 차 창 밖에서 불어 들어오는 바람이 내 코를 찔렀다. 바람에서 가을 냄새가 났다. 남편은 내게 이 냄새가 어떻냐고 물었다.





 지난주 일요일 저녁, 부대 근처 음식점에서 저녁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온몸에 밴 샤부샤부의 얼큰한 육수 향이 차 안 가득 진동하려던 찰나, 남편과 나는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차 창을 자연스럽게 내렸다. 창문을 내리자 창 밖에서 불어 들어오는 바람이 내 코를 찔렀다.


 "아, 가을 냄새."


 바람을 타고 와 내 후각을 자극한 건 가을 냄새였다. 어스름한 저녁이라 그런지, 아니면 주변에 농원이 많아서 그런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유난히 진한 가을의 향이었다. 남편은 대뜸 내게 가을 냄새가 어떻냐고 물었다. 사계절 중 가을을 제일 좋아하는 나는 두말할 나위 없이 좋다고 말했다. 질문을 받았으니 맞바꾸어 묻는 게 인지상정. 나는 남편에게 가을 냄새를 맡으면 어떻냐고 물었다.


 "나는, 그다지 좋지는 않아. 이런 가을 냄새를 맡으며 힘들게 훈련받았던 그 시절이 떠올라서 말이야."


 전혀 예상치 못한 답변이었다. 나는 그저 가을 내음이 좋은 것이었는데, 남편은 가을바람에 훈련받던 날들을 추억했다. 그래, 그랬지. 밤마다 전화를 붙잡고 훈련의 고됨을 토로했던 나의 남자 친구가 어느새 남편이 되었나. 어찌 되었든 남편은 가을 냄새가 얄궂게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우리가 결혼하고 처음 맞는 가을이야."

 "그래서, 어때?"

 "아직 낙엽이 떨어질 정도의 가을은 아니라서 말이야, 조금 더 있어봐야 알겠어. 내가 부대 안에서 처음 만나는 가을이니까, 조금 더 느껴보고 말해줄게."


 분명 내게도 가을의 추억은 있겠지만, 가을 냄새를 맡느라 그 순간에는 정말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먼 훗날 부대 안에서의 가을을 추억하고 있을 나를 상상해보기도 했는데, 그것마저도 잘 그려지진 않았다. 그래서 그냥 이번 가을을 잘 보내봐야겠다는 다짐 정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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