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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많은얼룩말 Sep 28. 2021

소심한 모험가


나는 나의 일상을 사랑한다. 그것도 무지 많이. 그래서 그렇게도 깊은 골짜기에 수도 없이 발을 들여놓았던 것이다. 내게 찾아온 이 골짜기의 이름은 '모험'이다.




 나는 내가 딱히 모험을 즐기는 유형은 아니었다고 본다. 분명히 안정을 추구하는 성향이지만, 그럼에도 내 뇌리에 '반짝이는 순간'으로 박혀있는 몇몇 기억들은 오늘도 여전히 나를 '소심한 모험가'라고 부르고 있다.


 내가 모험을 감행하기까지 내 이성과 감정은 수도 없이 토론의 장을 만들곤 한다.

 

 "이번엔 이 일을 해야 할 것 같아."

 "그래, 그것을 해내게 된다면 어떻게 되는 건데?"

 

 맞닥뜨린 낯선 일을 회피할지 맞이할지 수도 없이 고민하게 되는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되면, 여간 골치 아픈 게 아니다. 물론 내가 소심한 모험가라, 저울질을 꽤나 많이 하는 편이다. 어떨 때에는 이성이 더 무겁고 또 어떨 때에는 감정의 무게가 더 나간다. 그런데 가끔은 이성과 감정이 나를 몰아붙이듯 동률을 선언한다.


 어쨌든 그 모든 고민의 과정을 마치고(모험을 하면서도 정말 내가 그 고민을 끝냈는지 의문이 들 때가 있지만) 결국 그 일을 '해야만 하는' 단순한 의무나 부담이 아닌 '해내고픈, 통과하고픈' 기회로 삼았을 때, 나의 모험은 반짝이는 별이 되었다.


 그렇다고 골짜기가 매번 나를 푸르른 평원으로 인도한 것은 아니었다. 내가 매사 성실하기만 하다거나 용기가 충만했던 것도 아니었고 말이다. 포효하는 늑대의 울음소리가 들렸던 적도, 무심히 쌓여있던 낙엽 사이에서 추운 밤을 보낸 적도 있었다. 때론 골짜기의 끝이 반짝이듯 보이기도 했지만, 보통은 안개나 구름으로 가려져 있기 일쑤였다. 하지만 설령 구름이 가득 껴 우중충한 날이라 할지라도, 매일 아침 해가 뜨는 것만은 확실했다. 나의 어떠함과 상관없이 해가 뜨고 나면 내가 가야 할 길이 내다보였다. 단 몇 걸음 정도밖에 안 될지라도 말이다.


 나는 무던히 걸었다. 걷고 또 걸었다. 햇빛이 비추는 그 길을 따라, 나를 인도하는 바람을 따라 취업을, 이직을, 퇴사를 했고 결혼을 결심할 수 있었으며 글쓰기에 도전하게 되었다. 그리고 난 아직도 눈앞에 펼쳐진 골짜기를 따라 걷고 있다. 이 골짜기가 끝나면 또 다른 골짜기가 기다리고 있겠지.


 어쨌든 오늘도 나는 모험 중이다. 글을 쓸 때마다 내가 걷는 이 시간이 너무 모험적인 것 같아서, 그래서 이렇게 글을 쓰며 골짜기 좌표를 확인해보는 중이다. '분명 이 글도 내게 보내진 기회겠지.'라고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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