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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많은얼룩말 Nov 05. 2021

글만 쓰려고 하면


글만 쓰려고 하면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해버린다. 분명 입을 열 때면 할 말이 잔뜩 쏟아져 나오는데, 막상 '글을 써야지' 마음을 먹기만 하면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이 말이다. 나 원 참.




 지난 한주는 잘 쉬었으니 이번 주에는 글을 한 편이라도 올려야 하지 않겠느냐며 남편이 내게 한 마디를 건넸다. 남편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이번 주는 반드시 글을 올리겠노라 약속을 했다. 변명을 해보자면 지난주부터 해야 할 일이 많아서 글쓰기가 뒤로 밀린 것이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럼에도 나는 매일 글을 쓰고 싶었다.


 그렇다면 나는 왜 글을 쓸 수 없었을까? 글만 쓰려고 하면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해버리는 게 문제였다. 분명 입을 열 때면 할 말이 잔뜩 쏟아져 나오는데, 막상 '글을 써야지' 하고 마음을 먹기만 하면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이었다. 머릿속에 새하얀 도화지가 펼쳐지는 기분이 들 때면 이도 저도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남편을 앞에 두고, 동생을 앞에 두고 말을 할 때면 나는 언제나 주저리주저리 떠들었다. 한참을 떠들고 나면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었다. 물론 나 혼자 그 시간을 다 채우는 건 아니다. 서로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이 고개를 넘고 또 저 고개를 넘어간다. 그렇담, 내가 말하고 싶은 상대가 앞에 있다 생각하며 글을 써야 하는 것일까? 하지만 결국 글을 쓸 땐 맞장구 쳐줄 사람이 없지 않은가!


 또 한 가지의 방법을 생각해보자면, 독자를 설정하되 맞장구를 바라지 못하도록 '편지 형식'으로 글을 쓰는 것이다. 사실 블로그에서 글을 쓰던 시절에는 이런 식으로 글을 종종 쓰곤 했다. 무명의 친구를 두고 편지를 쓰는 일은 참 재미있었다. 그런데 브런치를 시작하고선 내 글의 색을 바꿔버렸다. 나를 잘 모르거나 내 글을 처음 접하는 사람은 '이게 뭔가?' 싶은 글이겠다 싶어서 말이다. 물론 이러한 작업이 나의 글쓰기에 꽤 유의미한 도화선이 되어줬지만,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나의 색'에 대하여 혼란스러울 때가 많다. (아, 물론 혼란스럽다는 표현이 너무 과할 수도 있겠다 싶지만, 내 머릿속에서 여러 생각들이 엉켜버리는 현상을 '혼란스럽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다면 수정할 필요는 없는 것으로.)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나는 나의 색으로 글을 써야겠다. 내가 쓰고 싶은 방식대로 글을 써야겠다. 편지를 쓰든, 에세이를 쓰든, 소설을 쓰든, 글을 쓰는 그날의 내가 원하는 형식으로 말이다. 어쩌면 나는 스스로에게 이 말을 해주기를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편하게 써!"


 이 글을 쓰기 시작한 지 30분이 훌쩍 지났다. '무슨 글을 써야 할까?' 생각만 하기보다 그냥 자판을 두드려보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걸 나는 알고 있다. 하지만, 사실 이 글의 소재인 '왜 글만 쓰려고 하면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는가'라는 질문은 꽤 오래전부터 시작된 것이다. 본격적인 고민은 지난주부터였을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러니 나에게 고민하고 생각할 시간을 충분히 주되, 글을 써야겠다면 모니터 앞에 앉아 자판을 두드려보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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