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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많은얼룩말 Jul 14. 2021

운동 메이트

다시 시작한 운동


1월 5일

H.T.



자네, 이게 무슨 뜻인지 짐작할 수 있겠나?

내가 인사말 자리에 암호 따위나 던져 놓는 그런 허무맹랑한 사람은 아니라네. 그러니 암호해독반을 부를 생각이었다면 접어두게나.


저건 바로 내 다이어리에 마지막으로 적혀 있는 홈트 기록 날짜라네.

(*HT = Home Training)


내가 작년에 습관 만들기 프로젝트를 진행했단 걸 자네가 기억하고 있을는지 모르겠지만 말이야. 아주 바쁜 시기가 다 지나갔으니 이제 다시 그 프로젝트를 시작해볼까 한다네.


자네에게 사실대로 말하자면, 내 의지로 다시 시작한 건 아니야. Mr. 밤, 그가 내게 제안했지. 음, 제안이라기보다는 권유, 아니 꼬드김에 가까웠다네.


얼 레스토랑에서 저녁식사를 마친 후였을 걸세. 그곳에 나밖에 없는데 Mr. 밤이 같이 운동할 사람을 구한다고 하지 않겠나. 


뭐 어쩌겠나! 내가 손을 들었지.



얼 레스토랑 문을 닫고 오랜만에 운동복을 입었다네.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고 오래간만에 근육들을 깨워줬지. 힘들었어, 아주 힘들었지.


힘들어하는 내 모습을 보고 Mr. 밤이 걱정이 됐는지 현란한 발놀림과 입놀림으로 내가 운동을 멈출 생각조차 하지 못하게 하더군. 고단수였어.


하지만 내가 누구겠나! 한때 사바나의 홈트 러버였던 내가 그 정도로 멈출 수 있겠느냐 이 말이야.


나는 중심을 바로잡고 호흡을 가다듬으며 동작에 집중했지. Mr. 밤이 나의 자세에 놀라더군. 생각보다 자세가 아주 좋다면서 말일세.


자네는 이미 알고 있겠지만, 나의 완벽주의 성향은 운동할 때도 어김없이 나온다네. 동작이 정확히 파악되지 않고선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다는 거야. 그렇게 익힌 자세들이 시간이 지나서도 나온다는 건 그리 신기한 일도, 자랑할만한 일도 아니라네.


하지만 완벽주의자가 완벽한 사람이라는 의미가 절대 아니라는 걸 자네도 알고 있겠지?




내가 체력이 아직 약하다네. 바닥에 붙어서 해야 하는 동작을 하고선 도통 일어날 수가 없는 걸세. 어쩌겠나! Mr. 밤이 애를 썼지. 내 배를 휘감아서 일으켜 세우는 꼴이 마치 인형 뽑기 같았다고나 할까.


어쨌든 운동을 다시 시작했다는 소식을 전하기 위해 이렇게 펜을 잡은 걸세. 흐물거리는 인형을 상상하지는 말게나. 자세는 정확했으나 아직 오뚝이가 아닌 걸세.



Sincerely,

Ea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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