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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많은얼룩말 Jul 07. 2021

얼 레스토랑 오픈

다시 돌아온 일상, Earl's Restuarant in Savanna


아주 오래간만에 사바나로 돌아왔더니 무성해진 나무 잎사귀들이며 훌쩍 자라 버린 풀들이 내가 자리를 비웠던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친절히 알려주었네. 


자네, 그동안 잘 지내고 있었는가?


자네의 그 고마운 기다림 덕분에 나는 드디어 내 이름으로 레스토랑을 오픈하게 되었다네. 

하하하. 고맙네. 자네의 축하 소리가 벌써 여기까지 들리는군.



마마 레스토랑에서 마마 셰프와 함께 했던 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네. 이렇게 시작하기까지 사실 기대되는 마음도 컸지만 홀로서기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지. 그리고 나는 아직 새로운 상황과 환경에 적응하고 있는 중이고 말이야. 열심히 적응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내 마음 상태가 어떤지 자네, 짐작할 수 있겠는가?


내 마음은 말이지, 마치 마취가 풀려갈 즈음의 얼떨떨한 상태 같기도 하고 피아노 콩쿠르 무대 위에 서서 보이지 않는 심사위원들을 향해 인사하려고 하는 이의 마음과 비슷하기도 하다네. 아, 물론 다 내가 경험해본 것들이라 이렇게 비유를 드는 걸세.



자, 이쯤 되니 얼 레스토랑의 주 메뉴가 무엇일지 궁금해할 자네의 표정이 그려진다네. 그런데 이를 어쩐담! 마마 레스토랑의 뒤를 잇는 것이니 당연히 고정 메뉴란 없는 걸세.


결정 장애가 있는 나로선 매우 슬프고도 어려운 일이지만, 어쩌면 내가 선택한 이 길이 나의 결정 속도를 향상시켜 줄지도 몰라. 나의 이러한 용감한 도전에 깜짝 놀랐겠지만,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차차 이야기하도록 하지.



지금까지 얼 레스토랑에서 선보인 주메뉴는 김치찌개였다네. 김치찌개와 더불어 김칫국을 성공적으로 만들기도 했어.



그리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위주로 식단을 구성해왔지. 최근 여러 레스토랑에서 먹어봤던 메뉴들이 큰 도움이 되기도 했고 말이야.


모닝빵 위에 버터를 바르고 그 위에 딸기잼을 얹을 때면 난 소소한 행복감을 느끼곤 한다네.



테이블은 음식의 색이 더 돋보일 수 있도록 화이트로 골랐다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마마 레스토랑 테이블 색을 따라 한 것일세. 아니, 마마 레스토랑과 비슷한 결을 만들고자 했다기보단 내 눈이 익숙한 것을 선택했다는 것을 알아주게나.


이런, 편지를 마무리해야겠군. 

Mr. 밤이 곧 올 시간이야. 


Mr. 밤이 누구인지 궁금하다면 설명을 해주어야겠지. 그는 얼 레스토랑(Earl's Restaurant)의 주 고객이자 레스토랑 소유주인 밤송이 씨라네.


그럼 나는 뭐냐고? 나는 얼 레스토랑의 셰프지. 얼 셰프(Chef Earl)라 불러주게나.


얼 레스토랑의 소유주가 Mr. 밤이지만, 내 이름을 딴 레스토랑이니 내가 문을 닫겠다고 하면 닫는 걸세. 나는 오늘 저녁 메뉴를 이미 생각해놨다네. 그래서 오늘은 오픈이야.


그럼 이만.



Sincerely,

Ea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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