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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많은얼룩말 Nov 25. 2021

나의 새로운 여행을 위한 채비


6시가 되기 전인데도 벌써 하늘이 어둑한 것을 보니 아무래도 겨울이 가까이 온 모양이다. 매년 오는 겨울이고 옷장에는 오래된 스웨터가 여럿이지만, 한 해의 끝자락에 서서 맞는 추위는 왜 늘 낯설까.


 이번 여행은 10개월 하고도 25일이 되기까지 때론 순조롭기도 때론 무지막지하기도 했으나 뒤를 돌아보니 딱히 무겁거나 가볍게 느껴지기는 커녕 저울이 있다면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을 평형할 듯한 상태였다. 8, 9개월 즈음의 나에겐 뒤를 돌아볼 여력은 없었고, 그때의 시간을 저울에 달았더라면 분명 어느 한쪽으로 매우 기울어 있었을 텐데 말이다.


 제법 차가워진 공기와 앙상해져 가는 나무들은 이제 한 해를 마무리할 시간이 왔다고 내게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만 같다. 그래서 어쩌면 11월이 되었기 때문에 뒤를 돌아보게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년 1월 1일부로 새로운 여행을 시작했지만 지난해의 연속선상에 서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 때면, 그저 새로운 해를 가리키는 연도의 숫자가 어색할 뿐만 아니라 야속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1월에 담겨야 할 설렘과 힘찬 다짐보다는 13월에 서 있는 것만 같은 지루함과 지침의 연속 가운데 다음 해를 기대해보자고 일단 책장을 넘기는 기분이었달까.


 12월이 코 앞에 다가오자 이젠 더 이상 그러지는 말자고 다짐했다. 한 해의 여행 짐을 풀고 정리를 해야겠으며, 새 해를 위한 여행 짐을 새로 싸 보기로 결심을 했다고나 할까. 나는 나에게 주어질 새로운 한 해를 선물처럼 받을 수 있도록 신경을 좀 써야겠다 생각했다.





이를 위해 가장 먼저 한 일은 1년 간 써온 다이어리를 훑어보는 일이었다.


 나는 다이어리를 좋아한다. 계획하기를 좋아하는 성향상 다이어리는 나의 소중한 아이템이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해보자면, 종이로 된 다이어리에 내 손으로 직접 나의 일정과 계획을 쓰고 확인하는 일을 좋아한다. 휴대폰이나 아이패드로 일정 관리를 대체하고 싶은 마음은 1도 없다. 내가 중학생이던 시절, 교회 중등부 담당 목사님께서 선물해주신 프랭클린 다이어리가 나의 첫 다이어리였고, 그해부터 나는 매년 다이어리를 썼다. 우선순위 정립을 위해 시작했던 '다이어리 쓰기'는 20년 가까이 지속하고 있고, '해야 할 일'을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루틴 만들기에 아주 유용했다. 그래서 내가 선호하는 다이어리 양식은 늘 분명했다. 월간과 주간 계획을 세울 수 있도록 디자인된 내지는 단순했으면 했고, 다이어리는 항상 들고 다녀야 하기 때문에 너무 크지도 무겁지도 않아야 했다. 그래서 최근 몇 년간 써온 다이어리들은 커버만 다르지 늘 비슷한 양식이었다.



 어찌 되었든, 나의 여행일지와도 같은 올해의 다이어리를 살펴보니 '해야 할 일'은 잔뜩 적혀 있는 반면 내가 어떻게 느끼고 생각했는지에 관한 '기록'은 딱히 없었다(물론 완료 표시가 된 일정들을 보면 그날 어떤 일이 있었는지 떠올릴 수 있지만 말이다). 때론 오래된 일기장에 일기를 쓰기도 했고, 많지는 않지만 브런치에 내 생각이나 일상을 짧은 글로 남기곤 했다. 하지만 한 해의 기록들이 한 곳에 모여있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나의 1년이 흩어진 조각들과 같이 느껴졌다. 체크리스트 속에서 찾은 일상의 기록은 왠지 앙상한 뼈만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고.


 아직까진 생생하지만 시간이 더 지나고 나면 올해의 소중했던 나날,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은 순간과 영감들이 희미해질 것이란 생각에 아쉬움이 밀려왔다. 기억해야 할 일은 점점 더 많아지는데 일상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들까지 어떻게 다 붙잡고 있으랴! 그래서 플래닝(planning)과 더불어 저널링(journaling)을 함께 할 수 있는 다이어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물론 둘을 나눠서 해도 상관없지만 말이다.



'나에겐 새해 다이어리가 필요해!'


 플래닝(planning)은 월별, 주간별, 일별로 '계획을 세우는 일'이다. 저널링(journaling)은 그날그날 겪은 일이나 생각, 느낌을 적는 일로 쉽게 말하면 '일기 쓰기'이다. 이게 뭐 대단한 일이겠냐마는, 오래도록 해온 사람들은 절대 놓지 않는 습관이자 취미이며 숭고한 의식이라고나 할까(다이어리 세계에서 나는 중급에 미치기나 할까 싶은데, 비교는 하지 말자. 내가 쓰는 다이어리는 나만의 다이어리니까!).


 플래닝과 저널링을 연계하여 나의 1년을 조금 더 다채롭게 남기고 싶은 게 새해 소원이자 도전이고 다짐이다. 그래서 이번에 새해 다이어리를 사는 일은 '일처리' 위주의 다이어리를 쓰던 내게 '일상의 기록'이라는 유의미한 도전을 던지는 일이다. 다이어리 양식의 변화는 내겐 결코 작은 일이 아니기 때문에 새해 다이어리 구입을 앞두고 기대감이 날로 상승하고 있는 중이다.


 얼마 전엔 홀로 서점에 가서 진열대에 있는 2022년도 다이어리를 몽땅 살펴보기도 했는데, 딱히 내 마음을 사로잡는 다이어리는 발견할 수 없었다. 포기란 배추를 셀 때 쓰는 단위라고 했던가. 잠시 쉬어가기는 있어도 웬만해선 포기하지 않는 터라 인터넷으로 온갖 종류의 다이어리를 찾고 있다. 다행히 마음에 드는 두 개의 다이어리 브랜드를 발견했는데, 그중 어느 것을 선택할지 아직 결정하지는 못했다. 가끔 남편을 앞에 앉혀 두고는 두 다이어리 각각의 매력을 브리핑하는데, 결국 선택은 내 몫이기 때문에 남편은 적절히 한쪽씩 편을 들어준다. 연말이 되기까지 시간이 남아있으니 아무래도 남편 앞에서 조금 더 저울질을 해봐야겠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일에 있어 '다이어리'를 빼놓을 수 없어 다이어리에 대해 몇 자 적었을 뿐인데, 2022년이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올해의 여행을 잘 마무리하면서도 새해 여행 준비를 위한 일들을 또 찾아봐야겠다. 여느 해와는 다르게 조금 더 준비된 상태로 새해를 시작하고 싶으니까 말이다. 가장 가까운 여행 메이트인 남편과 아무래도 가족회의라도 해야겠다.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도 좋고 더불어 다른 여행 메이트들과 연말 모임을 갖는 것도 꽤 괜찮은 일이 되겠지.



"Some journeys lead us far from home. Some adventures lead us to our destiny."

-C.S. Lew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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