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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많은얼룩말 Dec 07. 2021

커피 마시는 사람


주로 나와 저녁 시간대에 만났던 사람들은 나를 '커피 마시지 않는 사람'이나 '커피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으로 알고 있었다. 그들의 그런 오해나 편견은 보통 내가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할 때 깨지곤 했다. 내 입으로 "커피를 좋아하지 않아"라고 말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번번이 민트 티나 민트 티, 혹은 민트 티를 주문했던 내게 오해의 소지가 있음을 나는 분명히 인정하는 바이다.


  커피나무 종에 따라 각기 다른 커피 열매(커피 체리 coffee cherry)가 맺힌다. 커피 열매에서 외피, 과육, 내과피, 은피를 벗겨 내면 씨앗이 나오는데, 이 씨앗이 바로 커피콩(coffee bean), 생두(green bean)이다. 씨앗을 콩이라고 부르는 것이 이상하지만 커피가 흔한 음료가 되어버린 이상 커피콩은 그저 관용어, 즉 커피 열매의 씨앗을 부르는 애칭이 된 것이나 다름없다. 어쨌든 이 생두를 가공하여 볶은(로스팅) 후 갈아서 물에 우려내 만든 음료가 바로 ‘커피’이다. 원두가루에 뜨거운 물을 고압으로 통과시켜 뽑아낸 것이 에스프레소이고, 에스프레소에 물을 넣어 희석시키면 아메리카노가 된다. 오늘 이 글에서 언급하는 커피는 ‘아메리카노’로 세팅하고 시작하는 걸로.



 

 <그래도 나는 당신의 숙면을 응원합니다>에서 언급했듯, 나는 카페인에 매우 민감한 사람이다. 그럼에도 나는 커피를 좋아한다. 산미가 강한 커피는 그리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묵직한 바디감을 선호한다곤 하지만, 다양한 커피를 맛본 경험이 적기 때문에 언제든 선호도가 바뀔 수 있다고 본다. 그래서 다양한 원두를 사용하는 커피 전문점에 갈 때면 메뉴판 속 설명을 찬찬히 읽으며 원두의 뉘앙스를 파악하곤 하는데, 메뉴판에 별다른 설명 없이 멋들어진 원두의 이름만 쓰여 있을 경우엔 직원분에게 설명을 요청하는 편이다(그렇지 않으면 민트 티를 주문하면 되니까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커피를 좋아한다는 건 어떤 것일까? 보통 새로운 정보나 지식을 습득하는 데 있어 기억력을 십분 활용하지만 원두에 따라 달라지는 커피의 이름을 굳이 암기하지 않는 건 커피를 그만큼 좋아하지 않기 때문일까? 스스로에게 질문해봤지만, 원두를 잘 몰라도 나는 커피를 좋아한다고 대답했다. 내가 좋아하는 맛을 내는 원두의 이름을 모르면서도 나는 커피를 좋아한다. 그렇다면 내가 좋아하는 커피란 대체 어떤 커피냔 말인가!


 20대에 들어선 나는 세상의 모든 아메리카노가 같은 맛인 줄 알고 커피에 입문했더랬다. 그 시절 내겐 아메리카노가 시크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메리카노보다 온갖 달달한 종류의 라테를 더 즐겨 마셨다. 학원 강사로 일했던 20대 중후반에는 바닐라 라테에 흠뻑 빠져 있었다. 바닐라 시럽이나 바닐라 파우더로 달달함을 한껏 끌어올린 라테는 빡빡한 강의 스케줄 속에 놓인 내게 늘 각성 상태와 더불어 당 충전을 선사했다.


 2년 반 만에 학원 강사를 그만둔 후에는 커피 입맛이 바뀌었다. (나보다 앞서 퇴사한) 라쿤 선생님을 따라 회사 생활을 시작했고, 과장님이 된 라쿤 선생님(이하 라 과장님)의 전도로 마시게 된 (No 시럽) 카페라테는 어느 순간 내 최애 커피 메뉴로 선정되었다. 처음엔 단맛 없이 라테를 무슨 맛으로 마시냐 했던 나였다. 하지만 라테를 마시는 횟수가 점점 늘자 '담백한 라테야말로 내 입맛에 꼭 맞는 커피'라 말했다. 커피 입장에서 생각해본다면, 나의 회사생활 4년 7개월의 기간은 그야말로 라테 전성기였다.


 요즘엔 커피를 마실 때면 그날 마시고 싶은 커피를 마신다. 주로 아메리카노와 카페라테 사이에서 고민하지만 말이다. 그렇다. 나는 보통의 커피, 눈에 띈 카페에 들어가면 마실 수 있는 그 보통의 아메리카노와 라테면 충분하다. 집에서 편하게 마실 수 있는 드립 커피나 더치커피를 선물 받을 때면 늘 기분이 좋고 말이다. 매일 마시지는 않지만 마시기만 하면 기분이 좋아지는 건 커피가 맛있기 때문이었다. 그래, 커피가 맛있어서 나는 커피를 좋아하는 것이었다. 이 글을 쓰면서 이제야 커피 원두에 대해 찾아보고 있는 나는 어쩌면 커피를 단순하게 좋아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게 아니라면, 지금까지 커피 원두에 대해 그 누구도 자세히 설명해주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고.


케냐 키암부 AA - 카카오 향, 깔끔한 시트러스류 산미에 가득한 바디감이 특징


 날이 매우 쌀쌀했던 지난주 어느 아침이었다. 추위를 느끼자 문득 커피를 마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을 출근시킨 후 더치커피액이 든 병을 냉장고에서 꺼냈다. 전기포트로 물을 끓인 후 아메리카노 한 잔을 만들었다. 그리고 커피가 든 머그잔을 들고 베란다에 있는 캠핑의자에 앉아 담요를 덮었다. 아침식사로 이미 든든한 배, 차가운 공기, 뜨거운 커피 한잔이 주는 즐거움이란. 아무래도 뜨거운 커피의 계절이 왔다 싶었다. 역시 뜨거우니 커피의 향이 더 진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서 좋았고. 그런데 그렇게 커피를 즐기고 있는 나를 발견하니 아무래도 ‘나는 커피를 마시는 사람입니다’ 혹은 ‘나는 커피를 좋아합니다’하고 밝혀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이렇게 글을 쓰고 나니 커피에 대한 마음가짐(?)이 조금은 달라진 듯하다. 단순하게 '커피'라 부르던 갈색의 음료를 보며 '너는 어느 원두로 만들어졌니?'와 같은 질문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내가 들어선 카페에선 어떤 원두를 쓰는지 눈여겨볼 수도 있고, 원두마다 어떻게 맛이 다른지, 추출방법과 로스팅 시간이 정말 원두의 맛을 다르게 만드는지 느껴보고자 이전과 사뭇 다르게 '커피'를 시키고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나의 카페인 허용 시간이 지나면 민트 티를 주문하겠지만. 어쨌든 나는 커피 마시는 사람인 걸로.


 “저는 오후 3시 이후에는 커피를 마시지 않습니다. 카페인에 민감한 편이라 오후 3시 이후에 카페인이 든 음료를 마실 경우 밤을 꼴딱 새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괴로운 경험이 몇 번 있는지라 오후에 카페에 갈 경우엔 대개 민트 티를 시키곤 합니다. 물론 민트 티가 맛있기도 하고요. 어쨌든, 저는 커피를 좋아합니다.”





카페인 때문에 밤을 꼴딱 새웠던 그날의 글,

<그래도 나는 당신의 숙면을 응원합니다> 

https://brunch.co.kr/@thinking-zebra/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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