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 총각
옆총(옆집 총각)이라고 불리는 그를 처음 만난 건 2014년 11월 어느 날이었어요.
이 친구의 설명을 하기 전에 제가 중국에 가게 된 이야기를 해야겠네요.
저는 2013년 12월에 중국 제작사와 관계된 작가 에이전시로부터
드라마 대본 작업 의뢰를 받고.... 북경으로 가게 되었어요.
북경을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북경은 환으로 지역구를 나눕니다. 물론 행정 지역구는 아니고요.
북경 중심에서 원으로 1 환. 2 환. 3 환. 4 환. 5 환 6 환..... 나누는데 6 환까지 있습니다.
제가 6 환에 살고 있었고.... 즉 중심을 가장 많이 벗어난 개발지역인 거죠.
거기에는 현대 자동차 북경 공장이 있고. 논과 밭이 아파트 단지로 조성된.... 신개발 지역구인 거죠~
행정 지역구로는 북경시 순위 구에 해당하는데 거기에서 택시를 타고.. 북경 중심으로 들어가는 데는 두 시간 정도 걸리고.... 반대편 6 환까지 가는 데는 3.4시간 걸리고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모여산 다는 왕징이라는 곳에 가는 데는 택시로 한 시간이 걸립니다.
처음 에이전시에서 왕징이란 곳에 작가 작업실을 얻어줬더니
작가들이 글을 안 쓰고 맨날, 싼리툰(북경의 청담동)이나 시내로 놀러 가서 작업이 더디다며
멀리 시골로 유배를 보낸 거죠.
암튼 저는 처음 가는 중국을 그리고 북경을... 한적한 시골 동네의 아파트에 머물게 되었죠.
인근 30분 거리에 현대 자동차가 있다고 하지만..... 제가 살던 아파트에는 한국인을 볼 수 없었습니다.
처음, 북경 공항에 내렸더니 마치 가본 적 없는 북한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12월 9일. 겨울이었기에 공기는 마르고 차가웠으며 뭔가 매캐한 냄새가 났습니다.
어릴 때 맡은 쓰레기 소각장에서 나는 냄새와 프랜차이즈 음식점에서 나는 냄새.
매캐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마라와 같은 향신료 냄새인 거 같은데
당시에는 알 수 없는 역한 냄새에 미간을 찌푸렸었죠.
두 시간 비행을 마치고 처음 접하는 외국.
사실 그 당시 중국이 제가 처음으로 간 외국이었거든요.
그런데 사실, 전혀 외국 같지 않았습니다. 같은 동양인이라서 그런지 사람들은 비슷. 아니 어쩌면 시골 촌동네의 터미널 같은...... 공항을 빠져나와 준비된 차를 기다리기 위해 지상 주차장으로 나왔는데
출입문을 열고 나오자마자 저를 반기는 것은 담배 냄새였습니다.
공항 문 앞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고. 마치 그건 여름철 식당 앞 에어커튼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거센 바람처럼 강력했습니다. 반가운 담배 냄새에 당시 현지 매니저에게 말한 첫마디가
"담배 한 대 피고 가죠!" 였죠.
다행히 현지 한국인 매니저도 흡연자였기에 같이 담배를 피우면서 픽업차량을 기다렸죠.
픽업차량이 도착하고 차에 타고 공항을 빠져나올 때 느낌은 정말 북한 같았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뭐 공항이란 곳이 외지에 있다 보니 그럴 수 있겠지만 아무튼 저에게는 공산국가. 중국.이라는 것의 첫 느낌은 무서움, 삭막함, 건조함이었어요.
그렇게 일 년이 지났습니다.
1년 동안 중국의 일은 끝이 났지만. 저는 그곳에 더 있고 싶어 졌죠.
이유는 받아야 할 잔금도 있었고. 그리고 저는 제가 살던 북경 6 환 순위 구의 삶이 참 좋았거든요.
사실 3 달이면 끝날 일이 자꾸 연기가 되고 연기가 되어서 1년이 되었기에
전 중국어를 배울 생각을 하지 못했어요.
적어도 처음부터 일 년 정도 있을 계획이었다면 과외선생을 구해서라도 언어를 배웠겠지만
작업실에는 상주하는 통역사도 있었기에 전 그저 일상에서 배우는 100가지 단어로 돌려쓰고 있었거든요.
처음 배운 단어는 집 주소. 우회전 좌회전 유턴. 직진....
즉 나갔다가 집에 들어올 때 택시기사와 나눠야 할 기본적인 대화였고요.
그리고 식당 가서 주문하는 요령이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중국은 메뉴판이 사진첩과 같이 메뉴사진이 있기에 대충 그림 보고 지목을 해도
충분히 밥을 사 먹을 수 있거든요.
생수를 배달시키는 요령. 담배를 사는 법 등으로 간단한 거래 언어를 외웠죠.
대부분은 통역사랑 동행을 하기에 별다른 문제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1년이 지나고부터는 이제 회사와 계약관계가 끝나고 제 개인적으로 상주하는 것이기에
비싼 통역사도 내 보내고.... 저 혼자 살아야 할 때였고
사람과 말을 못 하게 되니 외롭기 그지없던 때였어요.
뭐 그래도 늘 전화로 친구들과 수다를 떨기도 하고..... 중국인 친구들이나
한국인 유학생 후배들, 혹은 사귀게 된 현지인들. 앞집 노부부 등과 교류하면서 나름은 즐겁게 지냈지만
외로움은 늘 있었죠.
그러던 어느 날.
오래간만에 지하철을 탔습니다.
사실, 늘 우버택시와 같은 중국 카풀 어플[滴滴出行]을 이용해서 택시를 타고 다녔는데 이제는 혼자 살고
이제는 로컬 생활에 적응을 해야겠다 싶어서 중국의 지하철을 탔죠.
중국은 지하철에도 검문대가 있어서 모든 소지품과 물과 같은걸 자동 검색대에 통과시켜야 하는 게 흥미롭습니다.
대부분의 중국인들은 대중교통 이용할 때 통화하는 것에 대한 매너가 없거든요.
그리고 그들은 위챗이라는 카톡과 같은 걸 사용하는데.... 보이스 기능을 이용합니다.
아무래도 한자다 보니 문자 치기보다는 음성으로 녹음해서 전달하는 게 편하니까요.
그래서 중국의 지하철은 정신이 산만합니다.
제가 살던 곳이 외각에 가까워서 꽤 한산할 때 탈 수는 있지만 몇 정거장만 지나가면 시끄럽게 되죠.... 그리고 우리가 흔히 공항에서 볼 수 있는 캐리어 이용을 시내에서도 엄청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첨에는 그 모든 게 신기했죠. 앉아서 중국인들 구경하는 맛으로 지하철을 탔는데...
그날도 어김없이 그렇게 지하철을 타고 왕징 시장으로 갔습니다.
왕징 시장에는 한국인들이 필요한 물건들이 있는 곳이기에 떡볶이 떡과 들깻가루. 스팸. 참치 떡국떡. 등.....
중국에서 구하기 힘든 한국 제품들이 많기에 한 달에 한번 정도는 꼭 나가서 장을 보는데 그날이 장보는 날이었어요.
갈 때는 지하철을 이용하고 올 때는 택시를 이용하기 위해 지하철을 탔는데
그곳에서 한국어가 들리는 겁니다.
헐~ 내가 중국 지하철에서 한국어를 듣다니
저는 고개를 들어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쳐다보니. 한 남자가 전화통화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냥 반사적으로 일어나서 그 젊은 청년 앞으로 다가갔죠.
그리고 그는 자신 앞으로 오는 아줌마가 이상했던지 서둘러 전화를 끊고 왜?라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습니다.
그가 무슨 일이냐고 중국어로 말하는데...
전 대뜸 말했죠
"한국인이세요?"
그리고 그 젊은 총각은 네! 하고 대답하고는 좀 의아해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중국에서 몇 년 산 사람들은 나름 재외 한국인들과의 만남도 있고 한국인 보는 게 그다지 신기하지 않은 일이었죠. 나만 신기했던 겁니다.
"와 신기해요. 저 여기 일 년살 았는데 순의에서 한국인 보는 게 첨이예요."
정말 아무런 의심도 경계도 없이 천진스럽게 묻는 내 질문에 그도 호응을 해주더라고요.
그리고 왕징 시장에서 내려 우리는 간단하게 서로의 전화번호와 아파트 이름을 주고받고 헤어졌어요
순간..... 나는 그 말이 생각났어요.
"외국 가면 외국인들이 아니라 한국인들을 조심해라"
전 그 총각이 나를 사기꾼 아줌마로 알까 봐 갑자기 걱정이 되었어요.
그래서 총각을 불러 세우고.... 핸드폰으로 초록창을 열어 내 이름을 치고 보여줬죠.
"저..... 혹시나 이상한 사람으로 오해할까 봐요....."
그런데 그 친구가 내 핸드폰을 뺏더라고요
그리고 자기 이름을 치고는 다시 보여주는 겁니다.
물론 인물정보란에는 없고....... 웹 정보란에... 그 젊은 총각의 이름이 적힌 논문이 나오더라고요
"그게 접니다.... 저도 이상한 사람은 아닙니다. 유명하지 않을 뿐이지"
귀엽더라고요.
그래서 전 그에게 말했습니다.
"나 오늘 떡볶이 떡 사러 나왔는데 저녁에 들리시면 제가 떡볶이 해드릴게요"
이 눔의 떡볶이 사랑... 중국 가서도 떡으로 남자를 꼬시다니...ㅜㅜ
그러자 그가 말했습니다.
"제가 내일 서울을 가요. 혹시나 밤에 시간 되면 가도 되나요. 좀 많이 늦을 거 같은데"
"네~~ 저 늦게 자니까 괜찮으니까 오세요. 마침 오늘 밤에는 번역팀들과 회의가 있어서 늦게 마칠 거 같으니까 부담 없이 오셔도 돼요"
그리고 헤어졌습니다.
그리고 전.... 그가 올 것이라는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원래 의례 인사말이라고 생각을 했거든요.
왕징 시내를 모처럼 나간 저는 김치거리와 각종 양념과 한국음식재료들을 사고
오래간만에 간 김에 커피숍에서 커피도 먹고.... 장을 봐서 집으로 왔죠.
당시 살던 집은 28평대의 오래된 아파트였어요.
중국은 특이하게도 주방의 공간이 굉장히 작아요. 주방에는 말 그대로 싱크대와 조리대만 있을 뿐
다 든 게 들어가기 힘들어요.
거실에다가 장 본 걸 풀어헤쳐놓고... 들이닥친 번역팀들과 회의를 하고 있는데
밤 11시가 넘어서 문을 두드리는 소 리가 나는 거예요.
중국은... 특이한 게 벨이 없어요 ㅋㅋㅋㅋ
문소리에 처음에는 놀랐지만 생각해보니까..... 그 젊은 청년이다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번역을 맡아주시는 선생님들은 조선적 여자분과 한족 남자분 인제 제가 나가려고 하니
한족 남자 선생님이 저를 말리고 직접 나가셔서 누군지를 물어보더라고요.
순간, 저는 그가 집을 잘못 찾아왔나 놀랄까 봐 소리를 쳤죠
"누구세요!" 그러자 그가 000입니다 라고 하더라고요.
한족 선생님은 한국말을 못 하시기에 한국어에 저를 쳐다보더라고요.
"펑요!"
제가 아는 백개의 단어 중에.. 쓸 수 있는 말.. 펑요(친구)
중국어 몰라도..... 대한민국 사람들도 다 아는 그 말을 했죠.
그렇게 그는.... 길거리에서 만나고 만난 첫날... 나의 집에 방문을 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