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친한 동생의 남자 친구와 통화를 하던 중
"난 니가 처음이야~"
라는 말을 들었다.
맥락 없이 들으면 어떤 막장 스토리가 상상되겠지만~ 여기서 처음은 나 같은 유형이고, 나 같은 유형은
트로트를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을 뜻하는 것이다.
번번이 밝히는 말이지만 나는 트로트를 싫어한다.
여기서 트로트는 뽕필이 있는 노래정도가 될듯하다.
주현미의 신사동 그 사람이란 노래가 나오면 듣는다.
나름 이 노래에는 추억이 있기에, 그러나 그 외에 설운도, 태진아, 송대관 등의 트로트 가수가 나오거나 요즘 트로트 경연대회 모습이나 젊은 트로트 가수들이 나오면 무조건 채널을 돌린다.
노래방에 가서도 한 사람당 5곡 정도의 노래를 부르면서 5곡 모두 트로트를 부르는 사람이란 걸 알게 되면 다음부터 그가 노래방을 가자고 하면 안 간다고 거절한다.
거절하면서 이유를 정확하게 밝힌다.
"미안~ 너의 노래 성향이랑 나랑 안 맞아서 못 가"
물론 이건 트로트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노래방에서 BTS 노래만 부르는 아미 친구랑도 노래방 가는 것을 꺼려한다.
절친 중 한 명이 아미였고 같이 노래방을 갔는데 멤버들 이름도 다 몰랐던 시절 그 친구는 전 곡을 다 BTS 노래를 불렀고 결국 , 그 친구가 노래 부를 때는 내가 부를 곡을 찾거나 화장실을 가거나 할 정도로 딴짓을 하게 되었다.
음악은 아무리 좋아도 내가 모르고 공감하지 못하면 소음이 될 수도 있다.
곡이든 가사든 내가 공감이 가는 순간 그때부터 내가 즐길 수 있게 되더라는 거다.
얼마 전 광화문에서 열린 그들의 공연은 그 시간에 맞춰 티브이를 켜서 나는 눈으로 즐기며 열광하면서 보았다. 그래. 아이돌 음악은 아이돌이 부를 때 겨우 들을 수 있는 내게는 좀 다른 영역의 음악인 걸로 하자~
라고 결론지었다.
어제 동생의 남자 친구와의 대화는 꽤 깊고 진지했다.
"오빠! 나 같은 사람을 처음 보는 게 아니라 내가 그냥 솔직한 거 아닐까? 다른 사람들은 자신이 불편하면 그 불편한 지점을 감추고 다른 핑계를 대는데 나는 불편한 게 뭔지 말하는 거, 그래서 나 같은 유형을 처음 본다고 말하는 거지. 이런 유형이 꽤 많을 걸"
"아니야. 니가 별난 거야~"
나는 별나다는 말에 긁혔다.
그래서 결국 나도 그를 긁었다.
"오빠. 나는 트로트를 좋아하는 게 어느 정도 직업적인 환경과 연관이 있다고 생각하거든, 오빠는 그 일을 하면서 주변의 형동생들과 노래방을 다니니까 자연스럽게 어릴 때부터 트로트를 부르고 즐겨왔겠지. 그런데 나는 내 주변에 모든 사람들이 트로트만 부르는 사람들이 없어. 그냥 흥을 돋우기 위해 유행하는 빠른 템포의 트로트를 한 두곡 부르는 정도야. 나도 직업을 바꾸고 시골에 와서 주변에 아는 언니오빠들과 노래방을 가니 죄다 트로트만 불러서~ 아~ 이분들과는 노래방을 안 가야겠구나 생각하는 거야. 근데 오빠는 자주 보는 사람이니까 이야기를 하는 거야. 노래방을 안 가는 이유를, 그리고 정말로 내 주변에 열 살 많은 오빠 또래들도 트로트 안 불러. 포크송 부르거나 대학가요제 노래 정도 부르지. 난 오빠가 첨이야~ 가까운 주변인이 트로트만 부르는 게!"
오빠는 중장비 기사였다.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이다.
나의 직업은 작가이다. 주변에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뮤지컬 배우, 연극배우, 작가, 피디, 감독들이었다.
신곡까지는 아니지만 대중의 흐름을 조금은 이해하고 배워야 하는 사람들의 직업적 노래 성향과 그저 노래방 노래는 나의 육체적인 노동에게 쉼을 주는 휴식으로 즐기는 자들의 성향이 다를 수 있다.
그렇지만 노래는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이다.
아이돌의 노래가 힘든 나지만 그래도 나의 노동요 차트에 부석순의 음악이 있을 때도 있고, 장사익의 찔레꽃을 찾아 듣기도 한다.
친한 동생과 그의 남자 친구 그리고 나의 스피커 통화에서 나는 외쳤다.
"오빠! 내가 안타까운 것은 오빠의 세대에 맞는 노래, 즉 오빠가 트윈 폴리오의 웨딩케이크를 부르거나 김범룡의 그 순간을 불러도 나는 괜찮아~ 가버린 친구에게 바친다. 이것도 좋아. 조용필의 고추잠자리도 좋고, 김태화의 안녕도 좋고 다 좋아. 그냥 뽕필이 나는 트로트에는 공감이 안 되는 거야. 한 두곡 그럴 수는 있지만 계속 그런 노래만 부르면 내가 힘들다고. 오빠의 생각은 내가 잘 부르는 노래만 멋들어지게 부르고 싶은 거잖아. 근데 같이 가는 사람이 그걸 싫어하는 세대면 좀 맞춰줄 필요는 있는 거 아닌가! 오빠도 맞춰주기 싫듯이 나도 그것만 들어주기 싫은 거야. 왜 나만 별나고 이기적이다고 하는 거지? 오빠도 동행자에게 배려 없이 이기적인 거 아닌가!"
오늘은 이 오빠가 지방 아마추어 트로트 가수들과 함께 충주로 버스킹을 간다.
트로트 가수들의 버스킹 공연이 있다는 것도 내 나이 오십이 넘어 지방에 살면서 처음 알게 된 일이다.
우유빛깔 000 플래카드 하나 써서 들고 응원을 가 볼까 하는 생각도 잠시 했지만 바로 포기했다.
6명이 나와서 두곡씩 부르는 행사이면 12곡을 들어야 하는데 그건 내가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전화를 끊고 말은 매몰차게 했지만 스스로 생각해 봤다.
나 정말 별난 년인가?
나도 앞으로 나의 성향을 말로 사람들에게 각인시키기보다는 그냥 조용히 다른 핑계를 댈까?
2년 전 어느 날, 친구들과 노래방을 갔다가 누군가 조정현의 '슬픈 바다' 란 노래를 불러 그 자리에서 나는 울었다. 왜냐면 그렇게 메가 히트곡이 아닌 그 노래를 실로 30여 년 만에 처음 들어봤고, 그 곡이 반갑고 그 시절의 내가 기억나서 울었듯이, 그 오빠에게 수많은 트로트 안에 숨어있던 자신의 과거가 있듯이 그냥 이해해야 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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