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2
(2) 넥스트 코로나
코로나가 아직 끝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제 2, 3의 코로나가 나타날 것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치명률이 낮거나 한국이 운이 좋게 발병지역에 해당되지 않는다면 ‘걸어서 세계속으로’ 를 보는 정도로 넘어가겠지만 그것은 바람일 뿐이다.
또다른 전염병이 도래한다면, 최종 목표와 그에 따르는 정책을 제시해야 할 정부, 정부가 제시한 정책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할 국가 구성원, 실질적인 의료 시스템과 서비스를 제공하며 적절한 자원분배 및 정책의 방향성을 정할 수 있도록 조언하는 의료 공급자, 그리고 실질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임상을 통하여 최신 의료지견을 적극 도입 및 정보제공하는 전문가 집단으로 나뉘어 각자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특히 전문가 집단 혹은 병원, 의사협회에서 ‘응급의료센터 전염/감염병 대처 프로토콜’의 존재에 대해 인지하고 초반에 진료 체계를 세울 때 적극적으로 관여해야 한다. 메르스 때와 달리 코로나는 메르스의 경험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 지정 전염병으로 분류되고 난 이후에 다소 정책과 임상에서의 괴리가 있어 혼란이 있었다. A라는 정책이 내려와 그것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메르스 때 B처럼 했었고, 그걸 바탕으로 일단 B 처럼 진행해보자 하면, 그것을 바탕으로 나중에 B'로 하자고 정책이 뒤따라 오는 느낌이었다.
초반 응급의료센터는 모르는 감염병에 대해 방어적인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밖에 없다. 메르스는 치명률이 너무 높아서, 코로나의 경우는 전파 속도가 빨라서. 그리고 두 질병 다 '잘 모르는 질병들'이라 그럴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응급의료센터 진료에 축적된 임상 데이터를 통해 의료 정책을 결정하여 도입하는 게 현재의 시스템이며 이상적이긴 하지만, 조금 더 세련된 응급의료체계를 위해서라면 이 방어적 의료서비스에 조금더 유연함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즉 ‘응급의료센터’ 및 '초반 감염 진료 의료인'들을 위한 사전(Pre)-정책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사전 정책은 24시간 언제든지 유연하게 대처해야하며, 메인(main) 정책이 나오기까지는 각 응급의료센터에서 진행할 의료에 대한 큰 아웃라인, 적극 혹은 소극적 진료의 방향과 범위안에서 자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코로나 시기 초반에 '전체 의료인을 위한 가이드라인'이 있었다가 나중에 세세하게 구분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따라서 사전정책 안에서도 더 세밀한 구분이 필요하다. '응급의료센터 대처 프로토콜'을 대상 의료진 별 세분화하여 응급의료센터나 선별진료소와 같이 환자를 직면하는 ‘레드 존(가명)’의 정책은 빠르고 유연하고 24시간 대처할 수 있으며 현장 의료인의 의견이 적극 반영되도록 하고, '그레이 존(가명)'에 해당하는 병원은 감염병 환자 전담 병원으로, 레드 존 정책을 바탕으로 하되 단점을 보완하여 의료진들을 보호하며 체계적으로 진료할 수 있도록 한다. 마지막으로 일반 병원, 즉 감염 의심 환자 대상을 진료하지 않는 '그린 존(가명)'에 해당하는 병원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통해 필요 시 레드 혹은 그레이 존으로 환자 이송을 하도록 도우며 그렇지 않은 환자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치료하여 의료 시스템이 붕괴되지 않고 의료 자원의 효율적 배분이 되도록 하면 좋겠다.
우리나라는 전반적으로 굉장히 유연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정부의 정책에 큰 반향없이 받아드렸고, 2년 간 거의 봉쇄에 가까운 사회 격리 정책을 펼쳤는데도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지 않았다. 새로운 지식 습득에도 굉장히 관대한 편이라 이번 코로나를 통해 전염 및 감염병에 대한 국민의식 수준이 매우 높아졌다. 하지만 이러한 특성은 대다수라는 이름 아래 권리를 침해받는 소수가 생기는 것을 막지 못하고, 대중을 농락하며 이익을 취하는 얍쌉한 소수를 막아내지 못한다. 모든 사회가 그렇듯 이에 대해서 우리 모두 국민 소양의 증진을 위해 항상 노력해야한다.
마지막으로, 내가 속하고 있는 의료의 관점에서 보자면 병원 협회나 의사협회에서는 의료 서비스 및 인적 자원의 적절한 분배 및 조언을 통해 정부 정책과 의료진 사이의 조율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겠다. 사실 상 준 공공재나 다름없는 우리나라의 의료 시스템을 의료진의 봉사와 선민 의식만으로는 통제할 수 없다. 내가 근무하면서 가장 신물났던게 ‘덕분에 캠페인’이었다, 그런 의도가 있지는 않았겠지만 초반을 제외하고는 전장으로 애를 내보내면서 격려 한마디로 퉁치려는 느낌이 들었다. 적절한 보상과 대우를 바탕으로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내야지 그렇지 않으면 골만 깊어진다. 의사들이 똑똑해지고 법망을 본격적으로 피해가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다. ‘의료를 법대로’ 하기 시작한다면 의료 질에 대해서 절대로 보장할 수 없다는 의미다. 영악해지고자 맘을 먹은 사람이 제대로 준비하면 속수무책이기 때문에, 우리도 영악해지지 않길 바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