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나 법정 드라마 안 보는데, 너도?
“저 우영우 안 봐요. 그래도 지금까지 법정 드라마 중에선 고증이 잘된 편이죠. 그래도 이입이 안돼서….”
지난 여름, 법조계 사람과 이야기하다 들은 말이다. 한창 방영 중이었던 변호사 드라마 ‘우영우’로 친해질까 했는데, 자기는 법정 드라마 잘 안 본단다. 뻘쭘하기보단 오 너도? 야 나도! 를 외치며 뜻밖의 친밀감을 느꼈다.
나도 의학 드라마는 보지 않는다. 나의 일터를 각색한 정도가 아니라 새로운 세상으로 만든 ‘세트장’ 위에서 희로애락을 느끼는 배우들을 보면 괜히 심술이 난다. 내가 느끼는 희로애락과 너희가 상상하는 의료진의 희로애락은 너무 다르구나, 싶어서. 유일하게 본 의학드라마는 ‘그레이 아나토미’. 이것도 의학을 입힌 멜로/로맨스가 주 내용이며 내가 의학이란 걸 잘 모를 때였기 때문에 좋아했지만, 그 외 의학 드라마는 플롯부터 억지스러운 설정이 너무 많아 아무리 임상에서 사용하는 용어나 겉모습을 세세하게 고증하였다고 해도, 거부감이 든다.
예전에야 의학드라마가 ‘우리는 모르는 의료진들의 세계’라고 해서 큰 인기를 끌었다고 하지만, 요즘엔 그렇지 않다. 그나마 흥행했던 ‘슬기로운 의사생활’ 도 의학 얘기보다 등장인물 간의 관계에서 자아내는 재미가 다했다. 그렇다. 이제 의학이란 세상은 특별한 세계가 아니다. ‘환자를 위하는 의사, 진정한 의사’와 결국 선민사상 클리셰가 빠지지 않는 비슷한 플롯에 대중은 색다름을 느끼지 못하고 피로만 느끼며, 가짜라고 느끼기도 한다.
솔직히, 병원에서 일하는 것은 생각보다 고귀하지 않다.
환자가 잘 회복하여 의료진과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는 장면, 너만 믿을 테니 이 수술 진행하자며 협력하는 의료진들의 모습 보다 내가 낸 돈이 얼만데 이것도 못 고치냐고 컴플레인 거는 장면, 너네가 그래서 안된다고 서로 싸우는 의료진이 더 익숙하다. 미디어에 비치는 깨끗한 하얀 가운의 점잖은, 자기 일이 너무 좋아서 행복해하는 의료진은 적나라한 병원 내 모습을 대변하지 못한다. 응급실에서 일하며 하루에 많게는 100명 이상의 사람과 부딪히며 인간의 본성을 적나라하게 마주한다. 환자와 의료진 모두 압박이 가해지는 상황에 처하면, 학습에 의한 사회화된 인간의 탈을 벗고 본능과 본성에 집중하게 된다.
이제 우리는 이것에 집중해 보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