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Confirmation bias, 확증 편향
왜 항상 다른 부서와 함께하는 회의는 화기애애할 수 없는 걸까.
‘다학제’라는 둥, ‘융합’이라는 둥 듣기에는 고도의 성숙화된 회의 문화가 정착된 것 같으나, 학과 부서 병원 회사를 막론하고 실제 회의실은 총들지 않은 전쟁터이다. 어렸을 때부터 화합과 협동을 중요하게 교육하는 이 사회에서 우리는 겉보이기엔 공동의 목표를 위해 서로에게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은 척하지만, 상대방의 자존심을 무너뜨리기 위해 된소리를 날린다.
몇 년 전, 인기리에 방영했던 의학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에피소드 중에 소아외과, 산부인과 등의 여러 과가 모여 환자의 치료 방법에 대해 회의를 하는 장면이 있었다. 서로 볼 꼴 못 볼 꼴 다 겪었다는 서사를 가진 주인공들이 회의의 주축이었기에, 날이 선듯해도 ‘아이, 해줘어~’, ‘안된다고!’, ‘그럼 나도 이건 양보 못해!’ 하는 식의 아웅다웅하는, 오히려 재미가 담긴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나도 그 장면에서 피식 웃었지만 실제 타 과와 진행하는 협의 진료 회의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서로의 떡진 머리가 아무렇지 않을 정도로 스스럼없는 사이라고 해도, 그날만큼은 고양이 세수라도 하고, 때가 탄 가운을 입고 서로 예를 갖춰 마주한다. 공과 사는 확실하게. 언쟁 때문에 열 올라 시뻘게진 얼굴로 회의 뒤에 근처 술집에서 회포를 풀지언정, 회의(라고 쓰고 경쟁이라 읽는다)가 아니라 과의 자존심을 건 싸움터이다.
우리는 어떤 결정을 내릴 때, 그것을 결정 내린 이유와 뒤바침할 만한 증거를 함께 제시한다. 이 과정은 나를 객관적이며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존재로 만든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쉽게 본능의 함정에 빠지곤 하는데, 내가 믿고 싶은 것을 재확인시키고 싶은 쾌락이 바로 그것이다. 증거가 쌓일수록 자신의 객관성과 이성에 대한 확신이 두터워진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확증 편향이라고 하는데, 확증 편향은 내가 믿고자 하는 것을 제외한 의견을 폄하하는 우월감의 시작이며, 회의의 주 목적인 융합을 무시하고, 융합하기 위한 방법인 열린 마음을 닫아버린다. 우월감에 도취된 우리는 자신이 편향되어 있음을 깨달아도, ‘내 주장에는 이만큼이나 객관적 증거가 있기 때문에 예외적으로 허용’ 해야 한다며 예외 또한 이성적이고 윤리적이라고 주장하기까지 한다.
이것이 환자를 위한 이타적 목적이 각자의 우월성을 경합하여 쾌락을 얻는 목적으로 변질되는 이유이며, 확증 편향에 사로잡혀 포용하지 못하는 의사는 융합될 수 없다.
응급실에서 응급이라고 하는 질병은, 질병의 발견과 치료까지 걸리는 시간에 결과가 판이하게 달라지는 경우를 포함하는 경우가 많다. 결과가 달라진다는 것은 환자의 생명이나 삶의 질과 직결됨을 뜻하며, 심정지, 심근경색, 뇌출혈 등의 질병을 예를 들 수 있다. 보통 이런 질병은 초분단위로 치료의 결과가 판가름 나는 경우가 왕왕 있기 때문에 이 시간을 골든 타임이라고 부르며, 의료진의 판단과 처치가 중요하다.
보통은 일반인들도 알 정도의 전형적인 증상이거나 의식 불명으로 119를 타고 바로 응급실로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나, 안타깝게도 증상이 경미하거나 특별하지 않아 알아채지 못하고 있다가 심각한 후유증을 초래하기도 한다. 따라서 응급실 근무자는 경미한 증상일지라도 응급 환자로 분류될 수 있는 아응급(sub acute)를 놓치지 않는 훈련 하는데, 일부 뇌경색이 경한 증상을 동반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에 훈련의 주요 타깃이 되는 질병이다.
“오른 팔이 힘이 빠져서 왔는데요.”
“언제부터요?”
“오늘 아침부터요.”
“언제까지 괜찮았는데요?”
“잘 모르겠는데요.”
“중요하니까 생각해 보세요. 잘 때는 괜찮으셨어요? 몇 시에 주무셨어요?”
“잠은 밤 10시쯤 잤고 그때는 괜찮았어요. 중간에 물 마시러 일어났을 때가 새벽 4시쯤인데 그때도 괜찮았고요.”
갑자기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환자였다. 기저 질환자도 아니고, 앞으로 손 나란히 들게 시켜보니 오른쪽 팔에 힘이 스멀스멀 아래로 쳐진다.
뇌경색이다! 게다가 라스트 노말(last normal, 가장 마지막까지 정상이었던 시간)이 별로 되지 않았다. 재빨리 신경과에 연락을 했다.
“30세 남환, 라이트 암 위크니스, 라스트 노말 4시간, 디텍션 1시간이요 (Rt arm weakness, last normal 4hr, detection time 1hr).”
급성 뇌경색은 신경과 응급 중에 최고봉으로, 시티나 엠알아이 촬영하여 진단한 뒤 금기 사항을 제외한 적응증에 혈전 용해제를 사용하는 시술을 한다. 이 시술과 수리 후 후유증 정도가 시간과 직결되어 있어 신경과 의사들은 급성 뇌경색이 의심되는 경우, 밤낮 상관없이 온 병동을 뛰어다니며 환자를 본다. 응급의학과에게 24시간 신경과 백업(back up)이 된다는 것은 매우 든든한 일이지만, 신경과 입장에서는 매일 응급 온콜(on call)을 받는 게 굉장히 성가신 일이다(의심 환자 중 뇌경색으로 진단되는 경우와 시술 적응증이 되는 경우가 생각보다 적기 때문이다).
“30세요? 가족력이나 환자 히스토리가 있나요?”
“아니요 없는데요.”
“뇌졸중 오기엔 좀 젊은데. 갑자기 그랬대요? 외상 없어요?”
“외상 없고, 지금 머리시티 찍으러 보냈어요. 젊다고 뇌졸중 안 오는 건 아니잖아요? 오른쪽 손 힘 빠지고 둔하다는 거 보니까 NIHSS(신경학적 이상정도를 수치화 한 시스템) 3점 정도 되는 거 같아요.”
“아닌 것 같은데…. 일단 내려갈게요.”
신경과 의사의 말처럼 30세 뇌경색이 흔하진 않다. 하지만 확실한 신경학적 이상 증상이 빨리 발견된 편이고, 이런 경우 혈전 용해제를 빨리 사용한다면 드라마틱하게 효과가 좋다. 더군다나 30세 뇌경색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니, 이 환자가 신경과 의사를 빨리 보지 않을 이유가 없다! 툴툴대는 신경과 의사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전화를 끊었다. 만성 인력 부족으로 바쁘게 뛰어다니는 과이지만, 그 부서 인력 부족까지 양해를 구하면서 뒤로 밀 환자가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나는 콧방귀를 뀌며 혹시 모를 혈전용해제 사용에 대비하여 준비 중인 간호사 선생님들을 바라보았다. 뇌경색 맞기만 해 봐. 그 코 내가 납작하게 해 주겠어. 하지만, 나는 그날 신경과 의사에게 속된 말로 발렸다.
“응급의학과 선생님, 저 좀 보시죠.”
지친 얼굴의 신경과 의사가 영상검사를 마친 환자와 함께 응급실로 돌아오며 조용히 나를 불렀다. 보통 때라면 전화로 얘기하거나 협진지에 답변을 달지, 이렇게 대면으로 이야기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계속 볼 상대에게 불만을 표현하는 것이 껄끄럽거니와 무엇보다 그럴 시간과 기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직접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은 지금 신경과 의사의 심기가 매우 불편하다는 의미였다.
“무슨 일이죠? 지금 좀 바쁜데. 여기서 얘기하시죠.”
“선생님 아까 30대 뇌졸중 의심환자 히스토리(History, 병력을 비롯하여 환자가 병원에 오게 된 경위 전반적인 내용을 포함) 제대로 하셨어요?”
히스토리는 응급실 진료에서 제일 중요한 것 중 하나이다. 히스토리 하나로 환자의 병명과 진료 방향이 손바닥 뒤집듯 뒤집히기에, 저걸 건드린다는 것은 제대로 싸워보자는 의미다. 수년간 다른 과와의 응대(라고 쓰고 기싸움이라고 한다)로 다져진 덕택에 이 정도 싸움과 시비는 흔한 일이기에 그때까지도 나는 혈전 용해제의 적응증이 아닌 뇌경색을 굳이 그렇게 급하게 전화걸 것은 없지 않냐고, 융통성을 좀 가지라는 핀잔을 들을 줄 알고 응급실에 융통성 발휘했다가 죽는 환자 못 봤냐고 받아칠 대사까지 준비한 상태였다.
“네. 왜요? 설마 NIHSS 낮아서 그래요? 그래도 뇌졸중 가능성이 높은 환자잖아요. 제가 선생님 바쁜데 일 더 드렸다고 이러시면 곤란해요.”
“선생님. 저 환자 페리페랄이잖아요(peripheral, 뇌신경계의 이상이 아니라 말초신경계의 이상이란 뜻).”
“그래서요? 뇌에 쩜팍(뇌경색이 영상검사 상에서 ‘점’처럼 콕 찍혀 그 부위에만 온 경우를 말한다) 오면 페리페랄에만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잖아요.”
“환자랑 대화해 보니 팔에 힘이 빠지는 게 아니라 저려서 못 드는 거라던데.”
뭔가 이상했다.
저린 감(numbness)은 운동이상이 아니라 감각이상이다. 내 살이 둔하게 여겨지고 흔히 남의 살같이 느껴지는 걸 뜻한다. 운동기능에 문제가 없지만, 사람들은 감각 저하가 운동 기능 저하와 동일하다 생각하고 그렇게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신경과는 나의 히스토리가 잘못된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대화로 풀려는 시도였던 것 같다. 이때 뭔가 잘못 방향 잡았음을 시인했더라면 괜찮았을 걸, 하지만 나는 말싸움에서 질 것 같은 상황이 오자 재빨리 머리를 굴려 내 의견을 뒷받침 할 만한 증거를 찾기 시작했다.
“저린 감 발생도 신경학적 이상에 해당하는 건 달라지지 않아요. 감각신경만 저하되는 뇌경색도 있잖아요.”
“그렇죠. 그런데 이분 좀 이상하지 않아요? 팔 한쪽만 저린다, 그것도 아침에….”
“…?”
“응급의학과 선생님. 저분 팔 베고 책상에 엎드려서 잤대요.”
“…!!”
“주물러 줬더니 다 피시던데요.”
“아….”
“선생님 말대로 말초성 뇌졸중, 감각신경만 먹는 뇌졸중 다 있을 수 있죠. 영상검사 했고 당연히 괜찮아서 협진 완료 해놨어요. 뇌졸중 의심환자니까 저희에게 바로 연락하고 그런 것은 이해하는데, 히스토리 조금만 더 했으면 저도 선생님도 환자에게도 좋았을 것 같아서요. 부탁드릴게요.”
여러 의미가 함축된 게 분명한 부탁드린다는 말을 힘주어 말하는 신경과 의사에게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얼굴만 시뻘게져서 미안하다는 말이 목구멍으로 가늘게 흘러나왔다.
세상의 모든 질병에는 예외가 존재한다.
그 예외가 나에게는 여러 증례 중 하나이겠지만, 당사자에게는 유일한 증례다. 때문에 특히 응급실에서는 ‘환자를 놓치면 안 된다’라는 생각으로 예외에 꽂혀 다른 사람의 의견을 무시하거나, 나의 의견이 무시받는다고 느끼면 날을 세우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환자에 도움이 되면 다행이지만, 목표가 환자에게 맞는 진단과 치료가 아니라 병명에 대한 판단 우위에서 얻는 희열로 바뀐다면, 알맞은 증례를 찾아내는 확증편향에 집착하게 되고, 결국 올바른 진료를 제공하지도 못한다.
프로토콜 대로 진행한 나의 진료가 틀린 것은 아니지만, 협진이란 것의 목표답게(또한 협진에 의존해야하는 응급실이므로) 신경과 의사와 잘 얘기했더라면, 막무가내로 영상 검사를 진행하지 않고 좀 더 환자에게 맞는 진료 방향을 제시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정형화된 뇌영상 검사말고 뇌질환 배제를 위한 간이검사를 진행할 수도 있었을 테고, 혈전용해제를 사용할 가능성이 적으니 혈액검사를 천천히 할 수도 있었다. 그랬더라면 오히려 더 빠르게 환자의 질병에 다가갈 수 있지 않았을까.
협의라는 게 그렇다. 환자를 위한다는 표면적 목표 뒤로 각 과가 자신 둘의 경험이나 증례에 빗대어 주장하며 우위를 차지하는 희열을 느끼고 싶어 한다. 최초의 목표가 ‘환자에게 올바른 진료’ 였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언쟁이 일어날 수가 없을테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여기저기에서 서로를 뜯고 씹는 게 익숙해져 버렸다. 우위에서 오는 쾌락이 더 빠르고 쉽게 얻을 수 있는 목적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매일을 각기 다른 과와 진행한 여러 협진들을 조율해야 하는 응급실 의료진은 열린 마음으로 교류하여 궁극적인 목표가 변하지 않도록 주시하고 또 앞장서야 하건만, 오히려 감정적으로 대응하고 편협적인 사고에 빠지는 경우가 흔하다. 인간의 본능이란 게 참 그렇다.
아이러니하게도, 감정을 배제한 것은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따라서 감정을 가진 인간은 필연적으로 비이성적인 성향을 가지게 된다. 편협된 사고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내가 언제라도 비이상적인 사람이 될 수 있음을 인지하는 습관이 들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거기에 더해, 사람 대 사람 간의 관계뿐만 아니라 개인 내부의 이성과 감성의 교류를 할 때도 편협되지 않도록 노력하자. 올바른 협의 진료의 목표를 위해 중심을 잃지 않도록 하면서 모르고 지나갈 수 있는 질병을 잡아내어 목소리를 내는 것, 참 어려운 일이다.
[Reference : "인간 본성의 법칙", 로버트 그린, 위즈덤 하우스,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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