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과대망상의 법칙
“너 저거 할 수 있어?”
어린 나와 친구들이 입에 달고 살던 질문이었다. 말꼬리에 물음표가 존재하므로 질문이지만, ’ 나는 할 수 있는데, 당신은 할 수 있나요?‘라는 의중이 담긴, 자랑하고 싶은 욕구의 표현이었다. 진실로 상대보다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아이들의 능력은 대동소이했다.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순위가 훅훅 바뀌었고, 이것은 종종 ‘나 원래는 이렇게 까지 할 수 있어.’라고 나의 최고 능력치를 뽐내는 것으로 답변이 변질되었다. 예로 들은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는 능력은 철봉에서 건물 2층 난간으로, 옥상으로, 다 점프 실력이 매우 좋아서 건물과 건물을 넘나드는 현실감각 없는 허풍으로 번졌다. 다행히 자라나면서 상상 속 나와 실제 나의 능력 간의 괴리, 그리고 과학적 지식이 현실 객관화를 할 수준이 되자 비로소 허풍의 향연은 모습을 감추고 우리는 사회화되어 살아간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높이 평가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 지금은 아니지만 근 미래에 달성 가능한 정도의 적당한 욕구는 자존감과 삶의 원동력의 원천으로 사용되지만, 객관의 범주를 벗어나면 망상으로 바뀐다. 어떤 사람들은 몇 차례의 반복된 성공 경험을 통해(그것이 자신의 재능뿐만 아니라 주변 여러 요소의 합작이라 할지라도) 자신을 둘러싼 운과 주변의 도움마저 개인의 능력으로 치부하며 위험 수준의 과대망상에 다다른다. 이 경우, 자신에 대한 지나친 확신, 그에 대한 의문과 반대 의견의 존재만으로도 예민하게 반응하며 오히려 본인에 대한 평판을 깎아내리기도 한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피부 질환으로 응급실을 찾는다.
피부 질환에 무슨 응급이 있나, 싶겠지만 주변에서 흔하게 보이는 두드러기에서 시작되는 아나필락시스, 전신에 물집이 올라오는 수포창, 독성 물질의 반응이 피부에까지 보이는 독성쇼크증후군과 같은 질환들은 응급실에서 다루는 피부 질환이다. 그리고 그 이외에 응급실에 심심치 않게 보이는 피부 관련 질병들은 결핵, 홍역, 수두 등과 같이 격리를 필요로 하는 질환들이다.
"피부에 뭐가 자꾸 나요."
20대 초반의 여자 환자가 응급실에 방문하였다. 신체 징후도 정상이고, 얼핏 보았을 때 응급한 피부 질환은 아닌 거 것 같았다. 자꾸 간지럽다고 하길래, 접촉성 피부염 정도로 생각하고 초진을 보는데 자세히 본 환자의 피부가 심상치 않다. 온몸에 울긋불긋한 발진이 났는데 난생처음 보는 생김새였다. 구글이나 피부질환 앱에도 영 비슷한 모양은 찾아볼 수 없었다. 웬만하면 대증 치료 약제 처방 후 피부과 외래 진료를 권유하겠는데 뭔가 열도 났다고 하니 혹시 전염병은 아닌가, 의심이 들었다. 상급 의료진과 간단히 토론한 뒤 환자를 일단 격리실로 이동시키기로 했다. 지금이야 코로나라는 팬데믹 현상을 겪은 뒤라 의료진이나 환자들이나 격리에 익숙하지만, 이때만 해도 피를 토하는 결핵쯤이야 되어야 격리실을 썼기 때문에, 모두가 환자의 질병에 대해 궁금으로 흥분한 상태였다. 환자는 격리해야 한다는 말에 어안이 벙벙해했지만 일단 의료진이 하라는 대로 격리실로 이끌려갔고, 즉시 피부과와 감염내과 측에 연락하여 협진을 진행하였다.
응급의학과 적인 시각에서 알고 싶었던 것은 이것이 격리를 해야 하는 질병 유무였는데, 응급실 운영 방향이 매우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전에 본 적이 없는 모양이다 보니 별의별 질환이 후보대상으로 꼽혔다. 단순 두드러기의 일종일 것이라는 의견이 대세를 이루었으나, 케이스 논문에서나 보이던 각종 희귀 질환들이 조심스럽게 언급되었다. 감염내과 측에서는 일단 단순 피부 질환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입원을 해야 하는 감염에 의한 중증 피부 질환일 경우 기본 혈액 검사 등에서 나타날 것이었는데 피검사는 딱히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격리 가능성이 있는 질병의 경우 몇 가지 없으며, 지금까지의 임상 경험에 미뤄보아 해당 질병들의 가능성이 낮으므로 격리까진 안 해도 될 것 같다고 하여 두 과가 옥신각신하고 있었지만, 이 두 과의 의견보다는 피부과의 의견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에서는 일치를 이루었기에 피부과 전공의가 응급실에 내려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대학 병원의 피부과는 만성인력 부족인지라(어느 과가 그렇지 않겠느냐만) 실제로 협진이 이뤄지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고, 그 사이 단순 두드러기였던 질환은 열발진을 거쳐 옴, 매독 등 ‘피부로도 증상이 나타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질환으로 거론되고 있었으며 ‘의심되면 투약먼저’라는 논리 아래 가장 의심되는 질병에 대한 치료제(항생제 등)를 투약하려는 응급의학과와, 잘못된 항생제 투약은 독성질환일 경우 환자에게 오히려 해가 되므로 진단 전까지 투약하지 말자는 감염내과의 언쟁이 높아질 무렾, 드디어 응급실 구석에서 피부과 전공의의 모습이 보였다. 심드렁한 표정으로 몇 가지 질문과 신체진찰 후 피부과 전공의가 제시한 의심 질병은 뜻밖의 것이었다.
홍역입니다.
아니, 환자의 연령대, 기침 가래와 같은 상기도 감염 증상, 그리고 피부 증상까지 우리가 배운 홍역과 맞는 게 하나도 없다. 그런데도 피부과 전공의는 홍역이 가장 의심된다며, 관련 검사들에 대한 처방을 내기 시작했다. 아무리 저년차라도 그렇지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생각이 응급의학과와 감염내과 내에서 일치하였고, 몇몇 의료진이 피부과 전공의를 찾아가서 따져보았지만 피부과 전공의는 요지부동이었다.
응급의학과 : “저희가 보기엔 약물 발진 같은데요? 항생제도 먹었다고 하고요. 응급실에 이런 환자 많이 와요. “
감염내과 : “선생님이 대학병원 외래에 계셔서 홍역환자 많이 못 보셨나 본데, (인터넷에서 검색한 홍역 피부 발진을 보여주며) 홍역은 이런 모양입니다.”
피부과 : ”홍역이라니까요. “
피부과 전공의가 뜻을 굽히지 않자, 급기야 우리는 피부과 전공의가 아직 경험이 없어 모르는 것 같다며 상급자 진찰을 요구했고, 이러네 저러네 실랑이는 결국 피부과 상급자를 응급실로 소환하였다. 그 역시 홍역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하자, 참을 수 없었던 우리는 격앙된 목소리로 검색한 논문과 각종 자료들을 들먹이며 차례차례 따졌지만, 그의 한마디에 수그려졌다.
“한국은 어렸을 때부터 수차례 백신을 맞기 때문에 피부 병변이 전형적이지 않더라고요. “
본인도 처음엔 몰랐다는 말을 덧붙이며 흥분한 우리를 진정시키려 했던 그 말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생각해 보면 교과서나 인터넷 검색에서 만나보는 질환자의 대부분은 서양인을 모델이다. 그들과 우리는 다른 환자군이며, 때문에 다른 특성을 나타낼 것이다. 한국의 어린아이의 경우야 백신 예방접종을 모두 마치지 않았으므로 교과서와 같은 전형적인 모습이 나타나는 경우를 관찰할 수 있지만, 백신 접종을 완료하지 않은 특정 연령대의 경우에는 항체 형성이 완벽하지 않아 전형적인 증상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피부과 의견이 가장 중요한다고 하면서도 임상 경험의 수와 자기 분야의 전문성을 앞세워 내가 결국엔 맞을 거라고 자만하고 있었다. 오히려 감염력 여부에 대해서 감별을 해달라고 협진한 피부과에게 의견이 아니라 동의를 종용하던 우리는 망상에 빠져있었다. 내가 더 환자를 잘 파악했으며, 더 정답에 가까운 진단을 내렸을 것이라는 상상. 응급실이라는 환경 안에서는 내가 뛰어날 거라는 확신 같은 신념. 실제로 몇몇 질환에 대해서는 해당 분과의 의사들보다 빠삭하게 꿰뚫고 있을 수도 있지만, 그것은 내가 그 분야를 잘해서가 아니라 해당 환자를 우연히 많이 만나며 얻은 행운과도 같은 지식 때문이다. 더 많은 수의 피부질환자를 대면하는 것이 피부과 전문이 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특정 분야에 대한 전문적 탐구, 학습 및 고찰에 더불어 임상 술기 및 경험이 쌓여야 비로소 전문가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임상 경험과 얕은 지식을 앞세워 다른 사람의 전문성을 무시했다. 부끄러움을 느낄 수 있었던 게 다행이지, 머리가 더 컸다면 되돌이킬 수 없을만한 오진을 내려 환자를 괴롭게 만들었을 것이다.
일정 수준 이상의 경력이 있는 사회의 구성원들은 착각에 빠지기 쉽다. 본인의 행동에 자신이 부족하고 실수가 두려워서 여러 차례 퇴고하는 초년생과 달리, 그들은 자신의 선택에 거침없고 자신 있다. 특히 전문 분야 종사자들은 그 분야에서만큼은 타인보다 특출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의사 또한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의료를 강하게 주장을 하고, 그에 대한 성공적인 결과를 축적하며 명의가 되어간다. 하지만 어느 분야에서 최고가 된다는 것은 스스로가 아니면 되돌아볼 기회를 가지기 어려움을 의미한다. 다짐하지 않으면 자신의 권위에 대한 도전에 공격적으로 반응하며 그동안 쌓아 올린 부와 명성으로 공격에 대해 반격한다. 하지만 이는 이론에 대한 반박이 아니라 명성에 대한 반박이기에, 실수를 눈치채지 못할 경우 크게 당할 수 있다. 가능성 높은 나무에서 떨어지는 게 작은 바위에서 뛰어내리는 것보다 더 치명적인 것처럼, 받아들이지 못한 지적에 한번 꺾이고 나면 회생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질병에 대해서 ‘이러하다’라고 생각했던 것이 ’ 사실은 저러하다 ‘라는 것을 알게 된 위의 일례처럼, 환자 진료에 있어서 정확한 질병의 진단은 어렵다. 의사의 관심사에 따라 진단이 달라지는 경우가 수두룩 하다. 전공의 사이에서도 옥신각신인데, 하물며 각 분야의 내로라하는 전문의 사이에서의 이견이 발생한다면 건설적인 토론보다는 과격한 비판이(표면적으로는 나긋해 보이지만)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항상 내가 중심이었던 사람들은 비판과 비난에 유연하지 못하다. 성숙한 토론 문화를 교육받거나 경험해 본 적도 미미하다. 수용의 자세가 어수룩하니,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는 게 편하고, 그것만이 성공적인 결과라 생각한다.
모두가 양보하고 수용하면 굉장히 이상적인 모습이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한 게 인간의 본능이다. 하지만 응급실은 본능적인 판단과 행동이 다른 의료기관보다 더 많이 수용되어야 하는 곳임을 잊지 말자. 내가 옳다, 하지만 너도 옳을 수 있다는 수용의 자세를 가지기까지 오래 걸리겠지만, 우리에게 꼭 필요한 과정이다.
[Reference : "인간 본성의 법칙", 로버트 그린, 위즈덤 하우스, 2019]
[사진 출처 : "원초적 본능", 감독 폴 버호벤, 19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