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젠더 고정관념의 법칙
인간은 다양한 성질을 지니고 있다.
주어진 선천적 성질을 기반으로, 성장함에 발생한 후천적인 성질이 불완전했던 인간을 구성한다. 이 성질들은 본질적으로 동일하여 배로 깊은 성숙함을 동반하기도, 때로는 상반되어 인간의 다양성을 표현한다. 우리는 그것을 개성이라고 부르며 모든 개성은 존중받아야 한다.
젠더의 관점에서 개성을 바라보자면, 기성 사회에서는 선청적 성질에 반대하는 성을 닮거나 일부는 투영하는 것조차 터부시 했다. ‘다름’을 옳지 않음으로 바라보는 시선들이 주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대에 들어 젠더의 역할 구분이 많이 와해되면서, 자연스럽게 우리들은 성장 과정에서 부모, 친척, 선생님 등 가까운 주변인을 통해 자신이 가진 선천적인 성의 반대성을 스스럼없게 투영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단일 개체가 풍부한 다양성을 갖고 성숙할 수 있도록 하며, 종래에는 구분 없는 사회로 나아가도록 한다.
하지만 비판적인 시각에서 바라보자면, 이는 섣부른 판단이자 바람이다. 혹자는 현대와 과거의 차이점이 단지 사회적으로 성의 다양한 표현 가능 범위가 넓어졌고, 다른 성에 대한 배척이 줄어들었을 뿐, 선천적인 성에 대한 구분은 본능이며 그렇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한다. 즉,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신에게 내재된 성의 성질에 지배되길 갈망한다.
응급실에서 근무하면 종종 책임자로 남자 의료진을 찾아 헤매시는 분들을 만난다. 아무래도 응급실이란 공간이 강하고 선이 굵은 느낌이 많이 보다 보니, 남성 의료진이 떠오르는 것일 테다. 이와 같은 착각은 다른 개성이 강한 다른 분과 - 남자 산부인과, 여자 비뇨의학과 - 에서도 종종 보인다.
비뇨기학과 인턴시절, 나의 주 업버리는 환자를 모시고 수술방에 들어가 준비를 마친 뒤, 레지던트 선생님에게 연락을 드리는 것이었다. 수술은 쇄석술이 불가능한 요로결석을 비롯한 다른 여러 이유로 요관 폐색이 의심되는 환자들의 요관으로 내시경이 진입하여 진찰 및 치료하는 것이 주된 행용이었다. 수술은 전신마취가 아니다 보니,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하반신이 나체인 상태로 시술이 진행된다. 이 모든 과정은 어디까지나 의학적인 행위이기 때문에 문제 될 일이 없지만, 반대성의 의료진이 들어올 때마다 거부감을 보이는 환자들이 종종 있었다. 특히 우리 병원의 비뇨의학과 레지던트 선생님 중 여자 선생님이 계셨는데, 뛰어난 실력에도 상관없이 종종 남자 환자분들께서 수술대에서 떨어질 정도로 깜짝 놀라곤 한다.
이런 젠더의 차이는 술자리에서 가볍게 언급될 정도의 에피소드로 끝나는 게 다수지만, 생각보다 깊은 젠더의 차이에 대한 인식은 병원 곳곳에서 관찰된다. 의사는 남자, 간호사는 여자라는 고전적인 인식에서부터 사회에 고착된 성적 차이점은 차별로 이어진다. 가장 저명한 예시로는 전공과를 선택할 때를 언급할 수 있다. 인턴을 마치고 원하는 전공과에 지원을 할 때가 되면, 우리는 성적과 적성으로 지원할 과를 고민하기 이전에 이미 주어진 성별로 지원 가능한, 혹은 불가능한 전공을 사전에 거를 수 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대기를 걸어도, 성별능 초월하여 접수조차 매우 어려웠다. 병원마다 그렇지 않은 곳들도 있다고 하지만, 대부분의 남(여) 초과는 반대성을 가진 지원자를 반기지 않는게 국룰이다.
‘여자라서 힘이 없으니까, 남자라서 꼼꼼하지 못하니까, 의국원 대다수인 남(여) 자들과 공감을 못할 테니 근무 및 수련 효율이 떨어지게 될 것이다.’
으레 짐작한 차이점을 이유로 다른 성별을 배척하며 자신들만의 변하지 않는 공동체를 구축한다. 최근에 들어서야 젠더 고정이 편견이며 위법의 가능성이 있음을 깨닫고 이런 관습이 바뀌는 추세이지만, 여전히 그 속도는 느리며, 눈 가리고 아웅인 식이다. 의료라는 특수 상황에서 변화라는 것은 충분히 부담스럽지만, 편견과 차별을 유지해야 할 근거가 될 수 없다. 그리고, 상대성을 허용한 분과들이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는 것은, 반대성이 가진 장점이 공동체 차원에서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긍정의 부담이라는 증거이다. ‘꼼꼼하고 섬세한 수부 수술 전문 여의사’, ‘과감하고 빠른 수술전문 산부인과 남의사‘. 오히려 최근 들어 많이 보이는 병원의 광고 문구들을 보고 있자면, 고착화된 성의 관념에서 벗어난 것이 오히려 기회가 되음을 시사한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 사회에서 정해준 성의 고정관념을 따른다.
성적 차별을 지양하고 다양성을 존중한다고 소리 내 말하면서, 정작 자신이 가지고 있는 남성성과 여성성에 대해서 심도 있게 고민해 본 적이 있을까. 남자는 남성성, 여자는 여성성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은 생물학적 성적 기능을 우선시하는 소수의 의견일 것이다.
사회에는 본능적으로 강인함, 거칠음, 에너지를 타고난 사람이 있고, 유연함, 섬세함을 타고난 사람이 있다. 이것을 단순한 생물학적 본성으로 구분하여 평가하고, 추구하고, 또 배척하는 일련의 행위는 오히려 나를 작고 단조롭게 만든다. 우리 모두, 젠더라는 단어를 에서 벗어나 순수한 나의 본성이 무엇인지, 무엇을 추구하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또한 현대 사회의 젠더 프레셔를 기인으로, 사회에서 요구하는 성향으로 보이기 위해 스스로를 억압하고 있지는 않는지 고민해 보자. 우리가 탈피해야 할 것은 나 자신을 포함하여 성의 역할에 대해 경직된 마음가짐이다. 본래 ‘젠더’의 ‘특징적 성향‘의 구분은 우리가 만들어낸 규칙일 뿐이다.
[Reference : "인간 본성의 법칙", 로버트 그린, 위즈덤 하우스, 2019]
[그림 출처 : “상춘야흥”, 신윤복, 1700년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