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봄부터 여름이 지날 때까지 학원을 다녔다.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 모니터 앞에 앉아 안경너머로 텍스트들을 팔자 주름 안으로 불러 모았다.
마흔이 넘어 사회에 나와보니 막상 할 수 있는 일들이 없었다. 하고 싶은 일은 많았지만 능력의 한계를 느꼈고 늦었지만 나도 사회구성원으로서 그들과 나란히 걷고 싶어 찾아 나선 학원이었다. 집에서 1시간 반 정도의 거리라 아침 7시 즈음 나서서 오후 7시 즈음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 생활을 5개월 동안 했다. 다행히 학원이 있는 화명동은 생태공원이 잘 조성되어 있어 꽃과 나무, 새와 나비를 가까이서 볼 수 있어 먼 길도 설레었다. 조금 멀지만 생태공원 내 무료 주차장에주차하고 1km 가까이를 걸어서 등원을 했고 그 길은 학원이 끝남과동시에 나의 주로가 되었다.
생태공원의 꽃들도 봄에서 여름을 향해 달렸다. 주홍빛 트로피칼 능소화는 피고 지기를 게을리하지 않았고,
여름빛에 맞서는 백일홍의 야무진 꽃잎을 매만지며 달렸다. 쭉 뻗은 메타세쿼이아길은 나를 주인공으로 만들기에 충분히 아름다운 주로가 된다.
학원을 다니며 좋은 기회가 닿아 능력에 넘치는 일거리도 받았고, '다리너머영도' 시민 기자로 2년 넘게 활동하며 글 쓰는 어려움도 뼈저리게 느꼈다. 글 쓰는 게 어려울 때면 주섬주섬 옷을 바꿔 입고 주로로 나왔다. 한발 한발 내딛으며 나를 위한 응원을 아끼지 않는다.
나는 나를 위로하며 곧잘 눈물을 흘린다. 여름이라 좋은 건 그 수분이 눈물인지 땀인지 타인은 잘 구분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평소 남을 위해서는 응원의 '파이팅'을 큰소리로 외친다. 그런데 정작 나에게는 능력밖의 일들을 산더미처럼 던져놓고 끊임없이 채찍을 가한다. 쉼 없이 일하라 그러고 힘든 마음에는 한숨을 쉰다. 그러다 포기하면 '내 그럴 줄 알았다, 네까짓게 뭐~' 나의 한계를 한 단계 낮춰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버린다.
나 또한 그랬고, 해서 나는 늘 제자리였다. 한 단계 한 단계 올라서는 이들에게 얼룩진 응원을 아랫입술 앙 깨물며 보냈다. 나는 늘 생각만 하다 시간을 보내고, 조금만 힘들면 투정을 부리다 포기하고 다른 길을 모색하며 변명만 헤매며 살았다.
그런 내가 무더웠던 2024년 여름을 달렸다.
달리는 건 아무것도 아닌 동시에 대단한 일이 된다. 일단 나오기까지가 힘들지만 나와서 달리다 보면 나는 대단한 사람이 되어있다. 이불속의 편안함을 하이킥으로 날려버리고, 걸어버릴 수 있는 거리를 그래도 끝까지 달리면서 나는 해내는 사람이 된다. 조금만 더를 외치고 '할 수 있다'를 무한 반복하다 보면 나는 어느새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있는 것이다.
마음은 행동을 변화시킨다.
새로운 일을 제안하는 크루의 전화에 나는 단 한 번도 '아니요, 저는 그 일을 할 수 없을 것 같아요.'라고 한 적이 없다. 예전 같으면 머뭇거리다 혹은 시작과 동시에 포기해 버렸을지도 모른다. 달리게 되면서부터 나는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일정이 겹치지 않는 한 '해보지 않은 일이지만 한번 해보겠습니다. 그 일에 저를 추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고 결국은 해 낸다.
일단 시작하고 나아가는 일.
그것이야말로 내가 내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가는 일의 첫걸음이 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5개월의 경험과 내 두발의 힘을 믿는다.
할 수 없는 일은 애초에 나에게 오지 않는다. 나에게 일어난 일은 내가 지나온 행동을 따라 자연스럽게 내 앞에 나타난다. 일단 해보겠다고 나는 마음만 먹으면 된다.
'할 수 있다'를 꼭꼭 씹어 삼키며 소화할 것이다.
그 믿음은 살아가는데 필요한 필수영양소가 되어 내 삶을 윤택하게 살 찌우고 앞으로 나아가는 동력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