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의 지나친 위험을 낮춰야 우리도 위드코로나로 갈 수 있다
이제 수많은 코로나포스팅도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스웨덴은 2월 9일부터 모든 제한을 해제합니다.
코로나19 증상을 보이는 경우 집에 머무르는 것이 권고되고, 검사나 자가격리의 의무는 없습니다.
다만 백신을 맞지 않은 성인은 거리를 두고 사람이 많은 공간을 피할 것이 권고됩니다.
국경통제의 경우 EU의 룰을 따르므로 여전히 백신 증명서(EU/EEA 역내) 또는 PCR 검사 음성(EU/EEA 외부)을 요구하며, 예외적으로 노르딕 국가 사이에서는 국경통제가 없습니다.
다만 카린 테그마르크 뷔셀 공중보건청장은 "이것은 전염병이 끝났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으며 여전히 아프면 쉬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카린 청장은 제한 해제의 배경으로 높은 백신 접종률과 감염 경험을 꼽습니다.
스웨덴의 접종완료율과 감염경험을 합치면 약 96%이고, 이는 우리나라의 87% 수준보다 높습니다.
백신 접종률은 우리나라보다 약간 낮지만, 감염경험이 매우 높아 전체적으로 항체 보유도는 우리나라와 유사하거나 조금 더 높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단, 스웨덴의 경우 무증상으로 지나가서 검사를 받지 않은 사람, 증상이 있더라도 검사 없이 7일간 집에 머무르는 사람 등은 확진자 통계에서 빠지는 등 우리나라보다 검사 요건이 느슨하므로 실제 감염경험률은 더 높을 것입니다.)
스웨덴 뿐만 아니라 덴마크도 거의 모든 제한을 해제했으며, 노르웨이와 핀란드도 제한이 상당히 완화되었습니다. 핀란드는 3월 1일부로 모든 제한을 해제하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북유럽은 이제 다시 코로나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분위기입니다.
하지만 한국은 우리는 자연면역자가 적어 상황이 다르다며 방역 해제의 계획이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정부의 말이 크게 틀린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코로나19는 여전히 존재하는 질병이고, 아무리 치명률이 낮아졌다고 하더라도 확진자의 모수가 커지면 중증자와 사망자 또한 증가합니다.
스웨덴에서 코로나19의 최근 치명률(확진치명률)은 독감과 유사한 수준까지 내려갔지만 확진자 수가 많기 때문에 우리나라보다 더 많은 수가 사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확진자의 모수는 통제하지 않는 이상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안데스 테그넬 수석 역학자는 "스웨덴에서 감염의 물결이 높은 수준에 머물러 있으며 이것이 단기간 내에 낮아질 것이라 보지 않는다"라고 말합니다.
현재 수준의 감염을 유지해서 사망자 수를 지금 수준으로 유지하려면 더 강한 봉쇄정책이 필요합니다.
더 강한 영업 규제와 사적모임 제한, 여행 제한 등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봉쇄는 풀수조차 없습니다. 오미크론의 강한 전염력 때문에 푸는 순간 다시 확산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한국은 "뉴 노멀" 또는 "위험의 감수"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시점이 온 것 같습니다.
이러한 조치들로 분명히 코로나19로부터 몇 명의 생명을 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 좋은 일일까요?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는 생존이 아닙니다.
자아를 실현하고 행복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때로는 감수해야 하는 위험도 있습니다.
규제를 해제하면 확진자 수가 늘어날 것이고 위중증과 사망자 수가 늘어날 것입니다. 이것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그동안 보지 못하고 있었던 "코로나를 제외한 다른 것"들을 생각해봐야 할 때입니다.
학교에 가지 못한 아이들은 어떻게 해야할까요?
면회금지로 가족들을 만나지 못하고 쓸쓸히 인생의 마지막을 보내는 요양원의 어르신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영업 제한으로 다른 의미로 생존을 걱정하고 있는 자영업자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금부터라도 정부는 코로나를 제외한 다른 것에 대해서 말을 해주기를 바랍니다.
언젠가는 위험을 감수하고 풀어야 한다면, 왜 풀어야 하는지에 대한 설득이 필요합니다.
지금까지 정부는 코로나를 가장 중요한 문제로 다뤄왔습니다.
물론 코로나19는 중요한 문제임이 틀림없습니다만 방역조치의 이익은 그 부작용보다 커야 합니다.
가래로 막을 것 호미로도 못 막는다라는 속담이 있는데요, 반대로 가래로 막을 수 있는 작은 틈새를 포크레인으로 막으면 시간과 자원 낭비일 수도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방역조치들로 우리 사회는 많은 목숨을 구했지만, 또 많은 것을 잃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사생활을 엿보며 혐오를 배웠고, 백신 접종 여부로 사회가 갈라졌습니다.
이제 우리 사회는 돌아와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 제한을 해제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물 안에서 나오고 싶지 않아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코로나19에 걸리지 않는 것을 지상과제로 삼고, 다른 모든 부작용을 외면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는 코로나19 숫자가 학생들의 미래, 자영업자의 생존, 어르신들의 존엄한 삶의 마무리보다 더 중요합니다.
방역당국의 커뮤니케이션 미스가 있었음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방역당국의 미스커뮤니케이션이 있었지만 결국 우리가 스스로 높게 쌓은 성벽입니다.
성밖에는 좀비떼가 득실거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갑자기 방역당국이 모든 규제를 해제하는 것은 좀비는 여전히 밖에 있는데 갑자기 성벽이 폭파되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들은 더 큰 혼란에 빠질 것입니다.
지금부터라도 위험성을 천천히 낮추는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합니다.
알고보니 바깥에 있는 게 좀비가 아니라 멧돼지였고, 멧돼지 정도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말해줘야 합니다.
건강하거나 백신을 맞았다면 혹시 코로나19에 걸리더라도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해줘야 합니다.
코로나19에 걸리면 비난하는 것 대신 쾌유를 빌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한 코로나19에 위험한 사람들은 최선을 다해 함께 지켜주겠다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스스로 높게 쌓아올린 성에서 나올 때 우리는 다시 행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용기를 가지고 그 성에서 나올 준비를 지금부터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