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소나(persona) 내면의 그림자를 찾아서
페르소나(persona)란 라틴어로 원래 그리스 연극에서 배우가 사용하던 가면에서 기원한다. 현재 사용되는 분야가 워낙 방대하기 때문에 익히 귀에 들려오곤 한다. 배우가 사용하는 가면에서 의미적인 확대가 일어나 등장인물, 설정을 아울러 뜻하게 되었고 영화에서는 한 감독의 작품에 계속적으로 출연하여 뮤즈와 같은 의미로도 사용된다. 철학에서는 이성과 의지를 가진 주체를 나타내는 말로 사용되고, 심리학에서는 내면 반영 없이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가면이라는 뜻으로 심리학자 구스타프 융이 이를 정의했다.
그는 모든 사람은 공동체 속 사회의 구성원으로 행동양식과 규범에 따라 다르게 정의되기 때문에, 페르소나는 이와 같은 차이로 인해 여러 가지 존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A라는 30대 여성을 가정해 보면 남편을 둔 아내임과 동시에 직장을 다니는 평범한 회사원일 수 있다. 또한 부모님에게는 자랑스러운 딸이고, 아이들에게는 자상한 엄마이다. 다시 정리하자면 불특정 그녀는 아내, 회사원, 딸, 엄마 이렇게 4가지 페르소나를 갖는 것이다. 그러나 앞서 말한 인격 모두 장소, 위치, 역할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그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의 인간은 다양한 페르소나를 가지게 된다고 말한다.
"A 씨 이런 사람인 줄 몰랐어요."
"A 씨 이런 면이 있었어요?"
사회에서 누군가가 흘리는 듯이 말하는 따라서 한번쯤은 다수 들어보았을 법한 말들도 페르소나의 정의라면 한결 가볍게 여겨진다. 누군가 나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정의하려고 드는 무례함에 거북함이 먼저 느껴졌었는데 말이다. 구스타프 융은 개인이 원하면 얼마든지 새로운 인격체인 페르소나를 후천적으로 형성해 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여러 개의 페르소나로 인해 본질적 내면에 형성되어 있는 자신의 인격체와는 오히려 괴리감을 느끼고 낯설어하는 감정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그는 내면의 인격 가리켜 그림자라 정의하는데, 이 관계는 오히려 대립관계가 아닌 공존관계이며 따라서 중요한 것은 내면의 인격체와 더불어 다양한 페르소나의 적절한 균형을 이루는 것이라고 매듭짓는다.
글을 쓸 때면 순수함과 냉철함을 가지고 싶다.
일을 할 때는 조용한 카리스마를 가지고 싶다.
가족들과 함께할 때면 지혜롭고 싶다.
연인과 함께할 때면 마음이 어진 사람이 되고 싶다.
친구들과 함께할 때면 세월을 망각하고 싶다.
대개 누구나 '선'이라는 것이 생기게 되면 그것을 지키고자 자신의 내면을 감출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이다. 당연한 듯 느껴지는 부분도 있지만 어쩌면 이 많은 바람을 단순히 역할이라는 단어에 귀결시키려고 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본절적인 알맹이는 망각한 채 손쉽게 상점에 들러 살 수 있는 가면을 구매하듯이 말이다. 가면은 얼굴을 감추거나 달리 꾸미기 위하여 얼굴에 쓰는 물건을 뜻한다. 그러나 내면의 인격보다는 후천적으로 형성된 가면에 더욱 공을 들이고 있었다. 주객이 전도되면 결국 내면의 그림자는 더욱 드리워질 텐데 말이다.
그가 말한 적절한 균형이란 무엇일까? 내면의 인격 그리고 외부 요인에 의해 형성된 인격도 모두 '나'임을 인정하고 주어지는 상황에 따라 달리 착용하라는 것일까. 보듬는 것보다는 보듬지 않는 편이, 꺼내는 것보다는 묻어두는 편을 선택했던 그림자를 슬며시 드리워 꺼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