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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리 Jan 28. 2023

#03 양자리에 있을 너에게

3.21~4.19

프릭소스와 헬레 남매의 전설로 전해지는 양자리는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아다마스 왕에게는 프릭소스와 헬레라는 두 남매가 있었는데 어릴 적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계모의 시달림을 받으며 살고 있었다고 한다. 이것을 본 전령의 신 헤르메스는 남매를 가엾게 여겨 황금 가죽을 가진 숫양을 타고 내려와 아이들을 행복한 곳으로 보내기 위해 태우는데 하늘은 날던 중에 헬레가 아시아와 유럽 사이를 나누는 해협에 떨어지고 프릭소스는 흑해의 동쪽 연안에 위치한 콜키스에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었다. 제우스는 이 양의 공로를 치하하여 하늘의 별자리로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어제 자기 전 핸드폰을 여니 '12년 전 사진이 도착했습니다.'라는 메시지가 뜨더라고. 클릭하니 내가 네이버를 통해 옮겨놓았던 클라우드 파일들이 날짜에 맞춰 이전에 찍었던 사진들을 보여주는 거였어. 생각지도 않게 2011년 네 어린 시절의 사진을 보니 어찌나 귀엽던지. 어제는 하루 종일 문 앞에서 기다리는 너를 보는데 참 마음이 많이 쓰이더라. 내가 애써 시답잖은 말을 걸어, 네가 누군가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일에 시간을 쓰지 않도록 해보았는데도 좀처럼 너는 문 앞을 떠날 줄을 몰랐지.


너의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어린 시절에 내가 알던 너와 조금은 변한 것들이 있어. 너는 네 생각을 당당하게 요구할 줄 알고, 원하고자 하는 게 있으면 반드시 이루려고 한달까? 고구마를 씻어 찜기에 넣는 순간부터 부엌 앞에서 기다리는 너를 보면 말이야. 문득 어떤 생각이 드냐면, 뭘 해도 된다는 게 너를 보면서 하는 말인가 싶더라. 한 자리에서 망부석이 되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너를 볼 때면 웃음이 터져 나오다가도 존경스럽기까지 해. 나는 어느 정도 너의 감정을 잘 읽을 줄 알게 되었어. 여행 가서 네가 문 앞을 서성이면 배변이 급한 것도 이제는 알겠고, 나를 보며 혀를 날름하면 물을 달라는 의미인 줄도 알겠어. 산책 줄을 보고 슬금슬금 피하는 너를 보면 굳이 산책을 가고 싶지 않다는 의미도 알겠고, 방 안에 누워있는 나의 코 앞까지 달려와 입술을 핥을 때면 간식을 요구하는 것까지 모두 알겠어. 다만 참 쓰린 게, 제일 중요한 걸 모른다는 사실이야.


의사 선생님이 그런 말씀을 해 주신 적이 있어. 너의 시간은 사람에게 주어진 시간보다 더욱 빨리 간다고. 사람에게 한 달이 너에게는 약 몇 개월이라고 말이야. 나는 네가 건강했으면 좋겠어. 내가 힘이 닿는 데까지 열심히 너의 건강을 책임질 테니 그저 옆에서 별 탈 없이 함께 했으면 좋겠어. 어떤 사람은 있잖아. 매일 사랑하는 친구를 위해 기도했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도 좋으니 편안하게, 꼭 자기 옆에서 마지막을 맞을 수 있게 해달라고 말이야. 내가 기도하면 바라는 것들이 이뤄질까? 그렇다면 오늘부터 조금씩 마음을 담아 소망해보려고 해.


문득 내가 살아가는 일이 힘에 부쳐, 너와 나의 시간이 영원할 것만 같다는 착각에 빠지기도 해. 혹은 동일하거나. 그러나 불현듯 너의 달라진 모습으로 체감되어 오는 세월의 흔적을 덜컥 맞고 있노라면, 갑자기 무방비 상태로 추운 빙판길 위에 떨어진 마음이 들곤 하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아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곳에 말이야. 네가 어린 시절에는 굳이 펫로스 증후군을 대비하지 않아도 되는 날들이었는데 말이야. 어느 순간 나는 알고리즘에 뜨는 사랑하는 친구와의 이별의 순간을 보고 하염없이 오열하기도 하고, 문득 푸른 하늘과 넘실대는 파도를 보며 울컥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 글을 주제로 글을 쓰는 일이 참 아프기도 하고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일지도 모르지. 그래도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적어 내려가자니 너를 빼놓을 수가 없더라고.




제우스도 참 대단해. 양의 공로를 치하하기 위해 양의 모습을 따 별자리를 만들었다고 하니까 말이야. 먼 훗날 너와 내가 떠 있는 별자리에는 어떤 그림이 그려질까? 꼭 너를 닮은 귀여운 모습이었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너는 늘 그대로 있어도 돼. 네가 원하는 모습으로 말이야. 그 어떤 모습이든 넌 이 세상에서 최고로 귀여울 거야. 그러니 그런 너를 보러 내가 놀러 가면, 마중 나와있지 말고 쿨쿨 자다가 어슬렁대며 나와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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