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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리 Jul 04. 2023

커플링을 빼며

슬픔이라는 감정이 온전히 잠식당하다

난 그와 연애할 때 늘 무슨 선물을 받고 싶냐는 그의 말에 한치의 망설임 없이 커플링이라고 대답하곤 했다.

그 역시 어느 정도 나라는 사람에 대해 확신이 생기면 선물을 해 주겠다는 말을 했는데 그날이 바로 내 생일이었다. 


우리는 종로로 함께 커플링을 맞추러 갔다. 서로 원하는 디자인을 조율해 가며 몇 군데 상점을 돌아다녔다. 그리고는 내 눈에 들어오는 반지를 선택해 호수를 쟀다. 그렇게 우리의 첫 커플링이 맞춰졌다. 




그와 연애를 하면서 찐 살을 빼기 위해 급격한 다이어트를 결심했는데 문득 6개월 정도가 지나니 반지가 조금은 커질 대로 커져 네 번째 손가락에서 춤을 추며 돌아다녔다. 나는 그 여백을 세 번째 손가락으로 대신했다. 그러나 무언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아 집 앞 금은방에 가 네 번째 손가락 크기에 딱 맞게 제작을 부탁드렸다. 


일주일이 지나 반지를 찾으러 와도 된다는 문자에 부리나케 달려갔지만 내 커플링이 아니었다. 호수를 재는 곳에서 일어난 해프닝을 끝으로 일주일 뒤 다시 재방문해달라는 답변을 받았다. 





친절하게 커플링을 찾으러 방문해도 된다는 문자를 받고도 며칠간 그곳을 방문하지 못했다. 왈칵 터져 나오는 감정을 스스로 추스르는 일은 마치 지금 당장 세상이 무너져도 큰 공허함으로 인해 두려움 없이 맞설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꼭 맞는 반지를 재빨리 빼 가방 속에 넣고 출근하는 길은 마치 내 마음을 누군가 조각들로 나누어 중요한 부분을 도려내 가지고 간 것만 같았다. 텅 비어버린 공간을 미처 채우지 못하고 지나가는 사람들 속에서 슬픔이라는 파도를 온전히 맞았다. 그날은 유난히 익숙했던 거리가 매섭게만 느껴졌다. 



"불안감은 자신이 만들어내는 것이며 그 근원지를 찾아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 정신과 의사는 말한다. 내향적인 나는 불안을 봇물처럼 꼬리를 물고 만들어내는 편이라 그 고리를 끊지 않으면 쉽게 일상을 회복하기 어렵다. 그래서 나에겐 그 근원지를 찾아내는 일이 중요하다. 그가 없어진 내 삶을 처음으로 마주하는 날은 온몸이 떨릴 정도로 몹시 불안했다. '내가 이렇게까지 나약하고 허상 같은 사람이었나.' 이별을 직면한 후 내가 나에게 가장 먼저 던졌던 물음이었다. 다시 회복될 수 없는 관계를 끝으로 난 속히 불안감의 근원을 찾아내야만 했다. 


가장 먼저 울리지 않는 핸드폰을 이제는 손에서 놓아주어야 한다는 사실이 무척 막막했다. 그와 나는 사랑에 있어서는 무척이나 열정적인 사람들이었다. 혼자 보내는 시간보다 함께 하는 시간을 좋아했고, 그 순간이 주는 소중한 온도도 잘 알고 있었다. 우리는 하루의 일상을 서로 공유했고 이러한 익숙함은 어느샌가 묻지 않아도, 훤히 서로의 삶을 알고 있는 사랑의 형태로 찾아왔다. 우리는 아니 적어도 그는 나의 일상 어딘가에 자연스럽게 물에 젖어 번지는 수채화처럼 스며들어 갔음이 분명했다. 이 모든 일상이 하루아침에 갑자기 텅 비어버렸다는 사실은 내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처럼만 느껴졌다. 내가 정성스레 쌓아 올렸던 탑이 한순간 파도에 와르르 무너져버리는 것처럼 내 존재도 그리고 인생도 실패한 것처럼 느껴졌다. 




시간이 조금 지난 후 문득 친구가 나에게 한 말이 떠올랐다. 

"너는 정말 사랑에 열정적인 것 같아. 나라면 그렇게 헤어짐을 고하지도 못했을 거야."


내가 그에게 헤어짐을 고한 이유는 권태도 바람도 아니다. 그저 미래를 위한 나의 물음에 돌아오는 그의 답은 거절이었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당장엔 그가 없으면 안 되지만, 정말 좋지만 미래를 위해서는 함께 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영원을 약속했던 애틋한 마음이 그의 대답 하나로 날카로운 유리처럼 차갑게 변모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난 오늘도 변함없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조금은 수동적인 자세로 하루를 살아내고 있다. 그저 주어진 일들을 묵묵하게 해 내는데 의의를 두고 있다. '사랑'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 이를 주제로 연재하는 이 글의 끝에는 '사랑'이라는 단어에 대한 해답이 조금이라도 내 삶에 찾아들었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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